몽골자료

몽골선교현장 이야기(펌글)

시골농군 2009. 5. 22. 18:28

몽골 선교현장 이야기(펌글)

이수정 선교사 / 몽골

 

 과거 몽골에는 한때 기독교가 자리를 잡았으나 역사에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오늘날 서양 선교사들과 한국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이 활발하나 현재 성장에 너무 도취되지 아니하고 몽골 선교에 성경적인 교회를 세우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아직까지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은 거의 없으나, 복음을 듣고도 몽골 종교가 아니라 유럽 종교라고 멀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에도 서양 종교라고 배척했던 때가 있는 것처럼. 그러나 한국 사람은 몽골인과 닮아서인지 한국인이 복음을 전하면 좀 더 쉽게 받아들입니다. 이 점은 한국 선교사들이나 현지인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입니다. 특히 시골의 유목민들을 상대로 한 복음 전도의 어려움은 그들이 계속해서 이동을 하기 때문인데,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지 주님의 지혜를 구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주로 청년들이 가장 많으며, 나이들어 주님을 영접하는 자들은 지극히 적은 숫자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몽골 선교 10년이 지난 지금, 150여 개의 교회와 15,000여명의 믿는 자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성장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은 누구신가?' 보다 '언어나 배우자! 외국인과 만나보자?' 라는 호기심에서 선교사를 가까이 했다가 주님께 붙잡힌 바 되니 그보다 더 귀한 예수님을 만나 그들이 변화되고, 이제는 지도자로 열심히 복음전도 사역에 쓰임받고 있습니다. 몽골은 특히 어린이 사역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인구증가 정책에 의해 어린이가 많으며, 어린이들은 순수하여 복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세속적이고 전통적 도덕으로 돌아가려고 애쓰나 그 결과 사회는 더욱 문란해지고, 몽골인들은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는 공허함 속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이 희어져 추수할 때라고 믿습니다. 지금도 일터로 가기 전에 "어버"(돌무더기)를 한 번, 두 번... 몇 번이고 돌면서 위로를 얻고자 하며, 병과 재난을 막아 주기를 바라고, 장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며, 가축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몽골인의 신앙관을 보게 됩니다. 역사에서 사라졌던 몽골교회가 다시 소생하는 이 중요한 시기에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몽골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저는 때로 가슴이 벅차고 두근거리기까지 합니다. 주께서 이 땅에 성경적인 건강한 교회들을 허락하시어 그 이루신 역사를 통해 더 큰 비전을 바라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그리고 지난 단기 사역을 통해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교회를 개척하게 되기까지 오래 참음과 기다림의 훈련이 있었습니다. 1999년 9월 8일 몽골 장기 사역을 위해 들어온 지 열흘만에 왼쪽 다리에 이상이 생겨 힘줄이 당기듯 심한 통증으로 인해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심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과 아픔으로 잠이 오지 않던 밤, 다리를 부둥켜안고 흐느끼며 주님의 긍휼하심을 간절히 구하던 그 때에 주님은 여전히 저와 함께 계셨고,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계심에 감사했습니다. 끝내는 10개월 만에 놀라우신 주님의 치료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또한 54번 몽골 학교에서 중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초청장을 받고 들어왔지만, 비자에 문제가 생겨 2년 5개월 만에 비자가 해결되는 등 어려움 중에 주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경험했습니다.

들어와서 1년 동안은 단기 사역동안 섬겼던 "뭉힘암드랄(현지인) 교회"주일 학교를 섬겼고, 2000년 1월 1일부터 "다레흐"지역의 땅밟기를 하며, 앞으로의 교회개척을 위해 기도로 준비했습니다.

 그 해 9월 10일부터 교회명을 "샬롬 교회"라 하고 가정교회로 모였습니다. 몇몇 형제 자매들과 모이면 기도하고, 말씀보고 찬양하며 먼저 지도자 훈련에 전력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다레흐"지역에 가서 땅밟기를 계속하며 그 곳에 교회를 허락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2001년 6월에 예배처소를 구입하려 했는데 집주인이 마지막에 일을 틀어버렸기에 성령께서 막으시는 줄로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비자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여서 저를 증명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우리는 1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것이 결코 헛된 기간이 아니었음을 확신합니다. 주님의 시간에 주님이 허락해 주신 예배 처소는 은혜의 장소입니다. 물론 환경적인 요소(버스정류장이 가깝고, 우물이 가까움)도 있지만, 2002년 4월 7일 "다레흐"에서의 첫 예배는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다레흐"지역을 위해 2년 4개월을 기도로 준비하는 가운데 주님은 우리 앞서 쉬지 않고 일하셨고, 가장 최상의 것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한달 전에 세 자매가 우리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샬롬 교회"를 소개했습니다. 한 자매는 옆집 자매였고, 두 자매는 그녀의 친척이었습니다. 친척인 한 자매가 말했습니다.

『 이 곳에 전 주인이 살기 전 우리가 살았어요. 그 때에 우리 가족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어요. 당시 다레흐에 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매일 같이 기도했어요, 하나님! 이 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해 주세요. 저는 쉬지 않고 기도했어요. 얼마 후 우리는 시골로 이사갔어요. 이사가지 않았다면 저희 집에서 예배드리기로 했을 거예요. 저는 울란바토르에 부흥집회가 있다고 해서 올라왔어요.

그런데 우리 친척 자매가 내가 살던 집, 눈물 흘리며 기도하던 집에 교회가 세워지고 예배가 드려지고 있다고 해서 들어왔어요. 저는 정말 기뻐요. 』

그 자매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는 얼싸안고 함께 울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그 날처럼 감격적이고 기쁜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없습니다. 주님의 계획하심, 인도하심, 선하심, 은혜와 사랑, 능력이 가슴깊이 새겨지는 그리고 힘이 나는 한날이었습니다. 그 날의 감동을 지금도 기억하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보다 앞서 하나님의 집이 세워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눈물로 기도했던 한 사람이 있었기에 그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해 주신 하나님, 정확하게 그 장소를 선택해 주신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무엇이든지 주님께 맡기고 의지하면 가장 좋은 것으로 갚아주시는 하나님께서 비록 3×6자의 작은 장소일지라도 주님이 허락해 주셨기에 감사함으로 주 앞에 나아갑니다.

 

 현재 주일학교는 30여명, 중학생 이상은 15명이 모여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다레흐"지역 주민 모두가 우리"샬롬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만나고 영생을 얻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적으로는 현재 출석하는 형제 자매들 모두가 더욱 말씀 위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견고한 믿음을 소유하여, 가정과 사회와 민족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양육되어지기를 기도하며 가르치는 일을 힘써 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듣고 배운 바를 실천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제 우리 "샬롬 교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교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회, 성도들의 교제가 깊어가며 자립하는 교회로 성장해 나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13세기에 징기스칸이 전쟁으로 세계를 정복했다면 21세기 몽골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할 것을 믿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주님의 땅이 될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