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자료

몽골선교의 미래전망

시골농군 2009. 5. 22. 18:27

몽골선교의 미래 전망
- 김봉춘, 안경갑, 한영훈 선교사

임일규 기자




김봉춘 선교사  _  “혼혈아 교회 아닌 몽골 토착교회 만들어야”

“90년대 개방된 몽골은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개척정신’을 충족 시켜줄만한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세계 선교계가 칭찬하는 한국선교의 최대 장점은 역시 죽음도 불사하고 선교현장에 뛰어드는 강한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이다. 도전정신이라는 것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더욱 강한 동기부여를 받는다고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몽골은 70년이 넘게 공산권의 장벽 아래 ‘감춰진’ 나라였고 그렇기 때문에 남미와 아프리 카 등 서구선교사들의 손길이 상대적으로 드문 나라였다. 그런 나라의 선교의 문이 넓게 열리자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몽골에 한국교회가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그로부터 2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김봉춘 선교사는 이제 우리의 달음박질의 속도를 늦추고 지나온 행적을 반성하며 앞으로의 시간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공동의 사역, 연합의 사역보다는 각자가 개별적 사역에 열정을 쏟게 되고 결국은 구멍가게식 사역이 난립하는 양상을 가져오게 되었다. 단일국가의 선교사들의 사역 치고는 너무나 다양하고 너무나 각양각색으로 ‘개척’을 향하여 전력 질주하는 모습은 과연 향후 20년 후에도 긍정적 보람과 열매로 남을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김 선교사의 지적은 지금 몽골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은퇴 후, 다음 세대에도 지금과 같이 한-몽 양국교회간의 교류가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기에 한국교회로서는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

김 선교사는 특히 지난 세월 동안 한국교회가 한국인과 몽골인의 왼관상의 유사성에서 접촉점을 발견하고 자연스러운 접근을 시도한 것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사역이 진행됨에서 발견되는 차이점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이런 부분이 사역의 연속성을 훼손할 수 있음을 비판했다.

“‘같다’, ‘비슷하다’는 것은 호감이지만 이 호감이 오히려 부담(risk)를 가져올 수 있다. <중략> 그래서 우리는 호감으로 쉽게 개방하고 접근하지만 결국 관계의 문제에서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세련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선교사의 노련성이라고 할 수 있다. 관계의 실패는 선교에서 큰 위험으로 다가온다.”

즉 이제는 막연한 환상과 열정만으로 선교현장에 접근하기 보다는 예상되는 어려움들과 현실적인 장애들이 무엇인가 파악하고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대안을 연구하는 진지하고 성숙한 모습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교회 이양문제는 교회를 넘겨주는 한국 선교사들에게나, 반대로 교회를 넘겨받는 몽골교회지도자들에게나 똑같이 부담스러운 문제다. 우선 양쪽 모두 이런 일에 경험이 미천하다. 한국 선교사들은 그동안 교회이양 문제에 있어서 비판을 면치 못했다. 힘들게 교회를 세운 만큼 그것을 쉽게 현지 지도자들에게 넘기지 못하는 ‘집착’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설득력이 있다. 받을 쪽이 받을 준비도 안 되어 있고 무엇보다 받을 생각이 없다는 것.

김봉춘 선교사는 ‘이양을 위한 이양’이 아니라 진정한 자립과 자치를 위한 교회를 위한 이양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현지지도자들이 순수한 사역에 대한 의지 없이 건물의 외양에 마음을 빼앗길 경우 시험에 들 가능성이 높고 건물을 유지 보수하는 비용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외부의 지원을 필요로 해 결국 자치는 하고 있지만 자립은 불가능한 반쪽짜리 이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로 현재 한국의 선교지도자들은 애초에 교회건물을 짓는 단계부터 외부의 도움을 최소화하고 선교현장의 성도들의 자발적 참여로 교회건물을 짓고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현재 몽골의 경우 이러한 논의는 시기적으로 이미 너무 늦었고, 현재는 과연 어느 단계에 어떠한 모습으로 교회 이양이 이뤄질 것인지 차분하게 로드맵을 그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이양에 대한 이야기는 김봉춘 선교사의 다음 코멘트로 정리하도록 하겠다.

“몽골 교회는 지난 15년간 수직상승이라고 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아직 준비되지 않은 교회지도자들을 통한 교회목회는 적잖은 실패경험과 부작용을 볼 수 있다. 초기 교회개척, 병원, 기관, 학교 등의 여러 단체를 사역했지만 실제 이런 일들의 취지를 잘 알고 ‘내 일’처럼 여기며 사역할 현지인 동역자를 찾은 기관은 아직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일부 이양한 교회들의 경우를 보면, 그 부작용의 현상을 잘 알 수 있다. 결국 현지의 상황에 의한 이양인가 아니면 ‘선교사의 필요’에 의한 이양인가를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김 선교사는 한국 선교사들이 몽골 교회를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에 가둬놓는 것에 대해서 강하게 경계하며 몽골인들에 의한 몽골인들의 교회가 되어야 함을 힘줘 강조했다. 몽골 교회가 한국과 몽골 양국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 역사적으로 봐도 과거 ‘경교’란 이름으로 네스토리안들이 몽골에 복음을 전했지만 그것이 토착화되지 못해 정치적 변화로 교회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사라진 것처럼, 복음이 그 문화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외부인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면 몽골복음화는 요원하다는 그의 지적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안경갑 선교사  _  “이단 사이비 문제 해결 위해서라도 공동의 창구 마련 시급”

안경갑 선교사는 “몽골인들은 독립성이 강하고 자존심이 강한 민족이기 때문에 이제 외부의 도움 없이도 교회를 자립,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낙관했다. 또한 몽골정부도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만큼 개방 초기와 같은 무리한 선교제한정책을 유지하기는 힘들다는 전망도 내놨다.

몽골의 평균수명은 2007년 기준 평균 67세이며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청소년들과 청년들로 이뤄져 있는 ‘젊은 국가’이다. 인구 평균 수명이 79.1세에 달하고 저 출산 고령화 사회를 고민하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만큼 지도자 반열에 이르는 기간도 상대적으로 이르다. 이에 대해 안 선교사는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를 했다.

“1990년대 초반 초창기에 몽골에 입국한 선교사들은 철저한 사명감으로 무장되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입국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비록 대부분 30대 초반의 젊은 선교사들이었지만 이들에 의해 전도되고 훈련된 몽골 교회의 지도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어린 10대의 나이에 선교사들을 만났으므로 나이에 의해서도 자연스레 지도력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약 2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입국하는 한인 선교사들은 여전히 30대 초반의 경험과 사명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선교사들인데 비하여 몽골교회의 지도자들은 30대 후반 또는 40대 목회자로 성장하였다. 당연히 한인 선교사들이 초창기 선교사들과 같은 카리스마와 지도력을 인정받기 어렵고 오히려 현지인 교회와 지도자들을 겸손히 섬기며 협력해야 하는데 한국교회에서 행사하던 목회자와 선교사의 권위를 주장하게 된다면 현지인 지도자들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며, 이러한 문제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교회이양은 물론 몽골 내 기독교 리더십에 있어 한국 선교사들과 몽골 현지 사역자들 간의 관계와 역할의 설정에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 이미 이르렀고 이에 대한 잡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가 금년 초에 발표한 2008년까지 한국선교사들의 사역별 현황자료에 따르면 교회개척의 분포가 53.3%가 이름을 볼 수 있다. 이는 우리 선교사들의 다수가 목회자 출신임을 감안할 때 자연스러운 결과로 볼 수 있다. 다만 선교지에 교회가 정착되고 현지 리더십이 세워지고 나면 더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미도 된다. 물론 또 다른 교회개척에 나서는 것이 이상적인 해결책이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이 쉽지 않다면 이 선교인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비단 몽골뿐 아니라 한국 선교계 전체가 진지하게 고민해볼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 몽골의 복음화율은 최대 4% 정도로 결코 높다고 할 수는 없는 형편이지만 한국교회와 관계 맺고 있는 여러 교육기관을 통해 젊은 인재들이 양성되고 있어, 몽골교회의 젊은 층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이 결코 적지 않다. 이에 자연스럽게 미래 몽골 사회 전반에 성경적 가치들이 스며들어 갈 것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몽골교회 역시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들은 단일교회, 혹은 일개 선교사 개인이 풀기에는 너무 범위가 큰 문제들이기에 몽골교회들의 연합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러나 위에서도 잠시 지적했듯이 서로 다른 배경의 선교사들이 독립된 교회개척사역을 해왔기 때문에 그들이 개척한 교회들 역시 서로 유대감이 희박하다. 현재는 몽골교회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네트워크가 없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다. 현실은 이런데 교회 외적으로는 벌써 심각한 골칫덩어리들이 아직 다 자라나지도 않은 몽골 교회를 위협하고 있다. 바로 이단 사이비들의 대두다. 안경갑 선교사는 “지금도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몰몬 등 여러 이단 종교가 이미 들어와 있고 앞으로 이들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안 선교사는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몽골정부 내 종교정책자들 조차 교회가 대표성 있는 조직을 구성해 정부와 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한다.

몽골교회가 연합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가르치고 양육하고 있는 선교사들 간의 네트워크가 선행돼야 함은 너무나 자명하다.

마지막으로 안 선교사는 뚜렷한 목표 없는 몽골 내 이벤트성 대형집회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했다. 몇몇 몽골교회 지도자들이 한국의 후원교회를 등에 업고 교회 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면서 한국교회지도자들과 연합해 무리한 대형집회를 몽골에서 계속 유치하고 있으며 여기서 오는 금전적 이익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 결과적으로 이런 것이 몽골 내 한인 선교사들과 몽골교회지도자들의 관계 악화와, 그리고 몽골교회지도자들 안의 내부적 갈등을 유발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금전적 이유를 떠나서 집회의 효율성과 방향성, 그리고 대회의 지속성을 위해서라도 선교지에서의 대형집회는 사전에 그 지역의 해당 선교사연합기구와 접촉해 의견타진을 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그 지역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고 이에 따른 잡음을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을 가볍게 여기거나 생략하는 풍조가 결국 선교지에서의 협력과 연합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한영훈 선교사  _  “선교몽골 통해 다양한 선교전략 도모할 때, 선교적 파트너로서 몽골의 가능성 무한하다.”

“하나님께서 몽골을 이렇게 축복하신 이유는 앞으로 몽골 교회를 통하여 몽골의 남쪽 중국 내몽골 지역, 몽골 북쪽 러시아의 토와, 브리야트 공화국 지역, 아프가니스탄의 하자르 종족 등 전 유라시아 1천만 여 몽골인들 뿐 아니라 과거 칭기즈칸이 점령하였던 중앙아시아 이슬람권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믿는다.”

유라시아 대륙의 곳곳 외부 선교사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미전도종족 개척지역에 과거 몇 천 년간 세계 역사변혁의 주역이었던 유목민들의 후예인 몽골인들이 살아가고 있다. 비록 그들의 언어, 종교, 삶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옛부터 그들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는 더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유목민들의 피다. 그래서 중앙아시아 민족들은 공통적으로 포괄적인 혈연중심, 실리적, 자연융화적, 개척적 세계관을 가진다. 이들의 전통적인 삶이 오히려 선교적이라고 평가하는 한영훈 선교사는 빠른 장래에 몽골교회가 디아스포라 몽골인들 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동유럽 유목민의 후예들에까지 복음을 전하는 생명의 제자들을 보내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또한 한영훈 선교사는 “선교몽골의 의미는 고원, 사막, 산악지형으로 기후와 환경이 유사할 뿐만 아니라 정령숭배와 샤머니즘의 근본에 라마불교와 힌두교가 성장하고, 이슬람교가 이식된 종교형태, 그리고 사회주의 경험으로 유사한 세계관을 가진 중국의 신장, 티벳, 인도 북부까지 이어지는 다신(多神), 다원(多元), 혼합(混合) 문화띠(belt)에 대한 선교적인 진일보의 현장이며, 진행중인 복음의 서진에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관문, 교두보로서의 중요성이 있다”며 여전히 진행중인 선교 실크로드에서의 선교몽골과 몽골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다시금 평가한다.

그러나 비록 동질성이 많은 민족간 선교가 비교우위가 있고 개방적인 몽골인들의 사고가 중앙아시아를 건너 이슬람으로 가는 길에 큰 기여를 할 것임에도 아직은 미성숙한 몽골교회가 독자적으로 타문화권 선교를 주도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몽골 선교는 몽골의 헌신자들에게 선교적 사명을 부여해 몽골인들로 하여금 세계복음화의 한 부분을 감당케 하는 것과 더불어 세계선교의 흐름 제시, 조직적 선교훈련과 후원자 연결, 파송, 그리고 실재적인 선교방법 전수 등 앞서서 경험했던 세계선교의 노하우들을 전수하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선교사는 “현대 일반선교가 그러하듯 몽골 선교도 ‘교회개척(chuch palnting)’에서 멈추지 말고, 지금부터 전 사회 영역에 통합적(Integral)이고도, 성도 개개인의 전인적인(Whole), 그리고 각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완성하는(church perfecting) 방향으로 갈 때 선교몽골의 비전이 이뤄질 것이다.”라며 몽골 선교의 내일을 ‘확장된 교회’에 비유해 예견하였다. 또한 몽골교회의 토착화를 위해서는 그동안 한국교회가 몽골사회에 크게 일조한 교회, 교육, 의료, 사회부조 분야는 물론 법, 경제, 정치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몽골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복음 안에서 양육해 교회와 사회를 성실하게 섬길 수 있는 일군양성에도 선교사들이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몽골교회가 풀어야 할 과제에 대해서는 한 선교사 역시 몽골교회의 연합과 교회내 제도의 정립, 선교 방법론에 대한 진지한 고찰 등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몽골교회는 자신들의 대표기관으로 1997년에 몽골복음주의연맹을, 2003년에는 몽골목회자협회를 세워 연합기관으로 일하고 있지만 아직은 전 몽골교회들을 이끌어가는 기능은 미흡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따라 각국의 선교사들과 몽골 목회자들은 제한적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간의 활동을 알 수 없어 연합사역 뿐 아니라 건전한 의미의 감시기능조차 약하다는 것이 한 선교사의 지적. 한 국가의 전체 교회를 대표하고 이끌어 갈 기구의 부재, 그리고 각 교회들을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조직의 부재는 결국 대사회적으로 교회의 신뢰를 낮출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그의 이 같은 지적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내부반성과 성찰이 이뤄지지 않는 교회가 결국 고여서 썩는 것을 교회사는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앞으로 몽골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회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요구가 증가함에도 지금처럼 교회들이 흩어져서 움직일 경우 이러한 영향력이 온전히 발휘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몽골 교회의 연합과는 별개로 현실적인 교회내 제도 정립과 몽골교회의 신학적 정체성 역시 중요한 문제이다. 현재 몽골 교회가 쓰고 있는 두 종류의 성경은 ‘하나님’의 신명(神名)을 서로 다르게 부르고 있다. 물론 내몽골어 성경 또한 자체적인 신명을 쓰고 있다. 또한 찬송가 가사, 교회 직제(職制)도, 예배 예전(例典)도 아직은 제각각이다. 그런 중에 몽골교회 내의 교단과 교파(denomination)의 분리 움직임이 현실화되었다고 한영훈 선교사는 말하고 있다. 따라서 몽골의 선교사들이 교회 사역의 최종 목표와 방법에 대해서 신중하면서도 기본에 충실하게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몽골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답변과 로드맵을 그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이를 함께 동역하고 있는 현지인 지도자들과 항상 공유해, 현재 교회가 어느 위치까지 도달했는지, 그렇다면 지금 몽골교회의 역량으로 어디까지 자치, 자전, 자립이 가능한지 차근차근 계획을 실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