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외국인교회/요한복음 설교자료실

요한복음 1:1-5 / 참빛과 참 생명

시골농군 2009. 9. 2. 11:42

본 문 : 요한복음 1:1-5

제 목 : 참 빛과 참 생명

 

어떤 청년이 자살하려고 약을 먹었습니다.

왜 자살하려고 했느냐 하면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던 것이 실패해서 좌절에 빠졌습니다.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 보려 했으나 그것도 실패했습니다.

이 청년은 모든 사람과 가족에게 배신당한 것 같고, 버림받은 것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이 청년이 사랑하고 의지했던 여자도 그를 떠나 갔습니다.

그래서 이청년은 죽기로 작정하고 독약을 먹은 것입니다.

아무리 해도 잃어버린 삶의 의욕을 다시 일으킬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의 친구가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서 살려냈습니다.

그 청년은 친구를 원망하면서 “나는 티끌만큼도 삶의 의욕이 없다. 그러니 제발 내개 죽음이라는 안식을 허락해 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이정도로 그 청년에게는 삶의 이욕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인간에게 말과 힘으로는 이렇게 완전히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으르살려 낼 길이 없다. 오직 생명의 주님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이 이 생명을 터치하도록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친구는 그에게 같이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말했습니다.

무에서 유을 창조하시고, 기쁨이 없던 사람에게 기쁨을 주시고 죽음에 처한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자꾸만 강력하게 권고하니 마지못해서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두사람은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그 청년의 마음속에는 그 동안 꺼져버렸던 영혼의 등불이 다시 빛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변화와 의욕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생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 청년은 다시 생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 청년은 다시 삶의 의욕을 찾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이 그를 만진 것입니다.

어둠에 빛이 비추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요 20:30-31에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의 주요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n of God)"입니다.

요한복음의 주제는 “영생” 즉 사람들로 하여금 ‘빛과 생명’이신 예수를 믿고 ‘생명’을 얻게하려 하심입니다.

요한게시록을 기록한 요한이 보좌주위에서 보았던 네가지 생물은 각기 사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특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4:7에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마가복음은 소위 특징과 비슷하다 하여 소의 복음이라고도 합니다.

소는 인간을 위해서 묵묵히 봉사하는 동물로서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은 후에도 가죽과 뼈와 살은 인간에게 바쳐지는 최고의 희생적인 동물입니다.

이처럼 마가복음에 나타난 에수님의 특성도 생명까지 희생하시면 봉사하시는 주님으로 부각되어서 말씀보다는 행동위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의사였기에 그의 시각으로 예수님께서 소외된자들, 특히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신 점에 감동을 받아 사랑이 넘치는 인간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기록했습니다.

마태복음은 사자로서 비유되는데 사자는 동물의 왕으로서 권세르르가진 동물입니다.

그래서 이 마태복음에서 부각된 예수님은 율법을 권위있게 해석하고 귀신을 내어쫓는 높은 권세를 가진 왕으로서, 메시야로서의 주님을 강조했습니다.

독수리는 요한복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모든 생물중에서 오직 독수리만이 태양을 직시 할 수 있으면서도 눈이 부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요한이 모든 신약성서의 저자들 주에서 영원한 신비와 영원한 진리,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 바로 그것에 대하여 가장 예리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어떤 다른 책에서보다도 요한복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보다 더 가까이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빛과 생명이신 하나님을 바로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복음이 바로 요한복음인 것입니다.

이 요한복음서를 통해서 빛과 생명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요한복음서의 기록목적인 20:30-31절을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 그 중요성을 인식합시다.

 

요 20;30-31에는 세가지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표적(sign), 믿음(believe), 그리고 생명(life)입니다.

첫째로 표적이란 단어는 요한이 개성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됨과 예수의 권능과 인격을 변증하는 단어입니다.

요한복음안에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개의 표적이 있습니다.

1)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2:1-11)

이는 에수님의 첫 번째 표적으로 물이 즉각적으로 기쁨의 상징인 포도주로 변화된 질적인 변화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맛이 없는 무(無) 맛이 물같은 인생을 포도주 맛 같ㅇ느 ‘기쁨’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권능,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어 여러분의 삶이 참된 기쁨의 삶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2) 왕의 신하의 아들을 치유하신 표적(4장)

가나에서 20k일 이상 떨어진 가버나움에 있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표적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거리와 공간의 주” 되심을 나타냅니다.

3) 38년간이나 반신불수였던 난치병자의 치유 표적(5장)

38년 동안이나 짊어진 난치병의 고통을 치유하심으로 예수님은 ‘시간의 주’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지금 그리고 여기서’ 그의 권능과 능력과 성령을 통하여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예수님을 믿어 그의 능력과 권능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4) 5천명을 먹이신 떡의 표적(6:1-14)

한 소년의 점심에 불과했던 양(量)으로 부녀자나 어린이들을 제외한 장정만 5천명을 배부르게 했고 그 남ㅇ른 것이 열두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이 표적은 ‘양(量)의 주’이심을 말합니다.

다시말해서 풍성하신 주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부족함이 없이 모든 면에서 충조되시는 참 만족의 삶이 되기를 바라니다.

5) 물위로 걸어가신 표전(6:16-21)

이 표적은 예수님이 ‘자연법의 주’ 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6) 태어날 때부터의 소경이 치유된 표적(9:1이하)

이 표적은 불가능의 치유라고 하는 측면만이 아니라 그의 불행이 누구의 죄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인간의 ‘운명의 주’ 되심을 보여줍니다.

7) 죽은지 사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11장)

이는 예수님이 ‘사망의주’가 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고 외치고 있습니다.

‘사망의 주’이신 예수님을 믿어 생사를 초월한 당당한 삶을 영위하기 바랍니다.

이상 일곱가지의 표적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할 수 없는 한계상황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항 블가능의 인간 상황을 하나 하나를 극복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믿어 여러분의 삶의 정황에 ‘빛과 생명’의 역사가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둘째, ‘믿음’이란 단어입니다.

위와같은 여러 가지 표적을 보이신 것은 바로 이간으로 하여금 ‘믿도록하기 위함’입니다.

이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두가지, 즉 믿음으로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거부하는 가입니다.

믿음여부에 따라 삶의 중대한 결과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인간의 삶의 빛과 어두움, 생명과 죽음, 행복과 불행, 축복과 저주 등을 가늠하는 중대하고 완전한 생애의 결단입니다.

역사적 사실인 일곱가지의 표적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전적으로 믿는 결단을 내리도록 하려는 목적인 것입니다.

셋째,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누구를 믿어야 할 것인지, 또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지를 제시하지 않고서는 결단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표적을 제시함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참된 인격자가 어떠한 분이신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결과는 분명히 ‘빛과 생명’인 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가능의 한계정황이 극복되어 나타난 예수님의 표적은 인간의 구원과 생명을 실현하고 충족시키는 예수님을 보여주기에 족한 것입니다.

‘표적’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나고, ‘신앙’은 초청에 대한 반응이며 ‘생명’은 믿음의 결과입니다.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어 생명을 얻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입니다.

진정한 생명은 그리스 도에게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은 “그 안에 생명이 이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님은 생명의 원천이며, 생명의 주가 되는 것입니다.

마 6:24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두 주인은 바로 ‘빛’과 어두움‘을 말합니다.

라인홀드 니버는 말하기를 “세상에는 빛의 자식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어둠의 자식들이 있다." 라고 했습니다.

빛은 하나님의 아들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어두움은 상대적 개념으로 인간세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천지창조시에 제일 먼저 창조된 것은 빛입니다.

“빛이 있으라”하시는 말씀의 역사가 먼저 있었고 다음 빛으로 모든 식물, 동물 등 생물이 창조되었습니다.

모든 생물들이 빛에 의존하게끔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빛을 떠나서는 어떤 생물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빛되신 예수를 떠나서는 아무도 생명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없는 생명은 죽은 것입니다.

에수믿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어둡고 혼돈상태에 있게 되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마음속에 밝은 빛을 지니며 자신도 모르게 많은 지혜를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는 빛이며, 우리는 이미 빛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과 어두움을 나누이게 합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이 세상은 빛과 어두움으로 나우이게 되었습니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땅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질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첫째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빛의 아들로서 빛의 능력을 되찾을 수 없는 파멸과 어둠의 자식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그리고 인류 모두의 타락이었습니다.

둘째 아담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똑같은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며 말씀을 순종하심으로 어둠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류에게 ‘빛과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여러분의 삶에 빛과 생명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