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외국인교회/요한복음 설교자료실

요한복음 1:15-18/ 은혜와 진리의 주님

시골농군 2009. 9. 26. 16:15

요한복음 1:15-18
제 목 : 은혜와 진리의 주님


본문 15에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세례 요한의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례요한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실 때에 "너는 세상에 가서 예수에 대한 증거하는 삶을 살라고 보내신 것"으로 믿고 살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까?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돈벌고 세상적 즐거움을 누리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예수를 모든 사람에게 증거하라고 우리에게 생명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인생 말년에 감옥에 있으면서 디모데에게 부탁했습니다.
딤후 4:1-2에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죽음의 순간까지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것은 예수를 증거하는 일입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세상에 오셨는데도 영접지 않는 백성들을 행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하고 외치면서 회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세례요한의 예수에 대한 증거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5절에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예수님은 나보다 앞선 분이고, 나보다 먼저 계신 분이고,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고, 자기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분이고, 그분은 크고 크신 분이어서 나는 그의 신발도 들 수 없는 형편없는 자라고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기에서 세례요한의 위대한 신앙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세례요한은 오직 예수만을 위하고 존경하고, 높이고, 자랑하고, 증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을 가리켜 "여자가 나은 자중에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발앞에 무릎을 꿇었고,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 요한의 사명이었습니다.
오늘날 어리석은 사람들 중에는 세상의 권세를 좀 가졌다고 해서 하나님을 비판하고 교회를 우습게 보는 이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속 깊이에 진심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 무뤂을 꿇는 마음으로 생활하기를 바랍니다.
16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충만하다는 말은 넘치는 완전한 분량을 말합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어느면에서 보든지 부족함이 없는 충분한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말해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으로서의 능력과 권능을 갖추고 계신 부족함이 전혀 없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함은 아무리 물을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샘과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것이 충만합니다.
지혜도 충만하고, 건강도 충만하고, 기쁨도 충만하고, 은혜도 충만하고, 능력도 충만하고, 물질도 충만합니다.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은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충만한 예수는 누구에게든지 모든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다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위에 은혜로라"
누구든지 예수의 충만한데서 받는 축복이 있는 분들은 다른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이것은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라고 말할 뿐입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성도가 하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요 주님의 은혜입니다."
병에서 고침받은 성도가 하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이 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실패와 좌절과 낙망중에서 예수께서 주시는 소망을 얻어 승리한 자가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은혜위에 은혜란 무엇입니까?
1) 은혜위에 은혜라는 것은 한가지 은총(기적)이 또 다른 기적으로 이어진다는 의미가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총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그만큼 예수님은 더욱 더 놀라운 분으로 다가온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오래 할수록 주님의 은혜가 더 새롭고 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신앙생활을 해나는 가운데서 작년보다는 올해가 더 은혜롭고, 작년보다 올해가 더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놀라운 사랑의 은총을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교회에 나오는 것이 습관으로 나오거나 아니면 기도하는 것이 마치 바리새인처럼 남에게 내세우고 자랑하기 위한 것이거나, 헌금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인색한 마음이 된다면 그 신앙은 안타깝게도 은혜를 알지 못한 것이며 성장하지 못한 것입니다.

2) 은혜 위에 은혜라는 말씀의 뜻은 은혜 대신에 은혜라는 것입니다.
생활환경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면 다른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살아 가는 인생이 사람에 따라서 다 다릅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이 다릅니다.
젊은 사람이 인생이 다릅니다.
또 시대에 따라서 은혜가 다르게 필요로 하게 됩니다.
환난과 역경의 시대에 교회에 필요로 하는 은혜가 다르고, 교회가 안정되고 풍요로운 시대에 교회와 성도가 필요로 하는 은혜가 다릅니다.
혈기가 왕성하여 한창때라고 하는 시기의 은혜와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상태에 있을 때의 은혜가 달리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어느 한가지로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우리 인생의 상황에 맞게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부족할 때에 그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낙심할 때에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하여 필요 적절하게, 그리고 합당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는 우리의 어떤 상황에서도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본문 17절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이 말씀은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은 불완전하지만 예수를 통해서 주신 은혜와 진리는 완전한 것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은 위협과 벌칙으로 묶어져서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위험을 주었습니다.
예수를 통해서 주신 은혜와 진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 것입니다.
두려움이 내포되어 있지 않고 사랑으로 가르치고 다스리기 때문에 재앙이 아니라 사랑과 구원과 축복입니다.
예수는 이 땅에 오실 때에 하나님의 진리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즉 사랑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그 뜻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를 남에게 나누어 주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깨달은 하나님의 뜻을 믿고 그대로 따라 사시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정에서도 은혜를 베푸는 자가 되고,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인 은혜를 베풀면서 살아감으로 은혜의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의 동산을 가꾸면 살아가는 은혜의 동산지기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넓혀 가는 복음의 일군이 되기를 바랍니다.

18절 말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품안에 계시는 예수께서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다는 말씀입니다.
창조이래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광야나 산상에서, 때로는 성전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주시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실체가 아니라 부분적인 환상이나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에 불과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에 불과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육안으로 직접 뵈오면 죽는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고 율법을 받았다고 기록되어져 있으나 그 역시 하나님을 직접 뵈온 것은 아닙니다.
모세도 하나님을 충분히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세상에 오심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하나님의 실체를 똑똑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를 가리켜서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는 본성과 본질에서 하나라는 말입니다.
예수는 하나님 자신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간들에게 자신을 보여주시고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시고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도 신약도 모두 예수가 초점입니다.
그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하신 말씀은 전부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믿고 따르고 순종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물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거나 만족하게 하거나 평화롭게 못해 줍니다.
진정한 행복은
(1)하나님이신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2)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아야 합니다.
(3) 예수를 통해서 우리의 진리가 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