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16-21 / 구원과 멸망의 기준
세계보건 기구의 죽음의 시계에 따르면
담배를 피움으로 생기는 질병으로 8초에 1명씩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죽음을 멸망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 났다고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단순하게 육체로만 되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체의 죽음으로 그 영혼이 망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죽으면 그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에게 있어서 육체가 더 중요합니까?
아니면 영혼이 더 중요합니까?
하는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라고 할 때에는 반드시 육체와 영혼을 함께 말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와 영혼은 분리해서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기독교는 부활을 말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육체의 죽음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부활을 통해서 나중에 영혼과 다시 하나가 되어 새로운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영생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영생의 개념이 무엇입니까?
영생이란 말 그대로 영원히 사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사람은 불행한 영생이 있습니다.
이것이 지옥의 형벌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행복한 영생이 있습니다.
이것은 천국의 은총입니다.
모든 육체는 죽습니다. 그러나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인간은 영생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육체에는 죽음이 있어도 영혼은 죽음이 없습니다.
안식교에서는 영혼 멸절설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옳지 안습니다. 만일 우리의 영혼이 없어진다면 지옥의 개념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영원히 살아야 할 존재인데 어떤 상태에서 살기를 원합니까?
영원한 고통이 계속되는 지옥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천국을 택할 것입니까?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높이 나무에 달리셔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들리는 것은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로 만든 뱀을 든 사건과 일치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놋 구리 뱀을 든 것은 일종의 테스트였습니다.
즉 믿음으로 구리 뱀을 쳐다 본 자는 살아났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구원에 대한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나무에 들리운다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들리지 않고도 구원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서기를 좋아하고 자기선전에 몰두하는 현실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들림을 강조한 이유는 보다 신중한 자기 성찰을 요구합니다.
예수의 십자가에 높이 달림은 결코 모두에게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와 같은 자라야만 메시아라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들림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세상은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서 높아지려고 합니다.
주님의 들림은 갈보리 언덕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고 사모하는 권력의 보좌가 아닌 멸시와 수치의 십자가로 들리워 졌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그대로 믿습니까?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삶의 지식과 지혜가 무수히 많은 중에도 영생의 지식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두 번째로 구원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미움이 아닌 사랑입니다.
멸망이 아닌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시는 이상 더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낳으십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고 있습니다.
(요일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사랑하셨다는 능동적 표현은 사랑할 수 없는 상황을 전제로 합니다.
사랑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한계는 무한정인 사랑입니다.
인간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 정의를 명분으로 내세워 상대방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용서하는 것은 불의한 행동이라고 규정합니다.
*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분이십니다.
인간이 일방적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인간을 사랑하시기 위해서는 하나의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그 방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의 들림의 사건인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죄인을 계속 사랑하기 위해서 절차를 밟으신 것처럼 내가 형제를 계속 사랑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움과 외면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외면은 곡 미움의 시작입니다.
법과 정의로만 살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어차피 정의와 상관없는 존재입니다.
정의를 논하거나 행할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더이상의 정의를 핑계삼아 사랑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형제를 계속 사랑할 수 있는 벙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을 힘입어 믿음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보내주심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주는 사랑입니다.
준다는 말은 베푼다는 말입니다.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을 주셨습니다.
건강, 평안, 은혜, 영생 등 등
하나님은 자신을 주셨습니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2)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독생자라는 말속에는 유일성의 개념, 특별한 관계의 아들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의 아무것도 없는 가장 소중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을 얻습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어떤 조건이나 신분을 가리지 않는 다는 개방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말씀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마다라는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무한한 희생을 의지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나님의 주시는 생명, 즉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께 나를 의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나 자신은 포기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기적만 보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마음을 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기적만을 보는 사람은 아직 자신을 포기하지도 않고 자신을 예수님께 의탁하지 사람들입니다.
자아가 강하게 살아 있어서 예수님에게서 어떤 세상적 유익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고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임하셔서 무조건 용납해 주십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에 대해서 거부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주가 되심을 고백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 우리는 심판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심판아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외는 없습니다.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힘으로도 안됩니다.
동정도 통하지 않습니다.
* 심판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잘 했는가? 잘못 했는가?
상을 받을 것인가? 벌을 받을 것인가?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45-46)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영생과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죄의 심판을 면제해 주셨습니다.
영생과 구원은 하나님께서 에수 그리스도를 높이 들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보내주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심판에는 우리의 믿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영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심판을 면제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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