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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사상

시골농군 2009. 9. 24. 13:03

리츨.트뢸취.하르낙

의 사상에 대하여....

 

서론

19세기에 유럽 중산층의 사상과 사회적 노력 중 많은 부분을 지배한 자유주의는 계몽운동과 프랑스 혁명에 의해 부분적으로 대표되는 17세기의 위대한 정신적 자극들에서 기원하였다. 자유가 인간에게 자기 결정의 기회와 관계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 보다 널리 보다 일반적으로 인정되었다.

19세기 초의 휴머니즘과 낭만주의 운동이라는 새로운 물결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성’이 유일하게 확실한 재판관으로 수립되어 있는 곳에서는 그 이성이 쉽게 하나의 실제로 훨씬 더 복잡한 개인의 부조화적이고 답답한 영역으로 퇴화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자유의 이념은 불가침적인 것으로서 보존되었다. 그러나 정당한 자아의 진리를 이성 안에서 발견하는 것은 덜 강조되었다. 그것은 생이 완전히 실현되어져야 한다는 개념에 의해 대치되었다. 인격체의 여러 측면들은 그들이 거의 무정부 상태에 이를 때까지 자유롭게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이와 같이 자기들의 개성을 자유로이 발전시킨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실제적인 자아에 대하여 정당하게 하며 따라서 자유롭게 할“예정된 조화”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19세기의 자유주의에 있어서 이념적인 것으로서 사회 생활의 모든 영역을 지배한 것은 바로 이러한 자유 개념이었다.

자유주의의 출현과 더불어 근본적으로 개인주의적이었던 자유의 개념은 19세기의 모든 시민 사회 속에 침투해 들어갔다. 그리고 신학자들은 자유주의적인 개인주의에서 발생한 피할 수 없는 문제점들에 당면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은 근대 철학으로 인하여 한때 진리에 관한 그들 자신의 양심에 대한 완전한 인격적 책임성을 명백하고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던 현대인들에게 기독교의 신앙을 적절하게 제시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한 점에 있어서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의 이러한 관심사들은 개신 교회측(특히 볼트만 학파) 뿐만이 아니라 카톨릭 교회측에서도 극히 중대하고도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 특히 개신 교회에서는 다소 실존철학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해석학을 철학적으로 경고적이며 더 이상 역사주의의 순수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역사 개념과 인식개염 위에 정립시키고자 노력하였다.

19c 자연주의 신학자 가운데 리츨,하르낙,트뢸취의 사상을 요약하고자 한다. 이들의 사상을 다 논하기는 본 지면이 다소 협소한 느낌이 들지만 최대한 이들의 사상을 연구하려 한다.

리츨

리츨의 신학은 헤겔의 형이상학적 이상주의와 쉴라이에르마허의 감정의 신학에 대한 반항이다. 리츨은 신학에서 형이상학을 몰아내고 기독교의 교의와 신앙을 ‘보편적 개념’의 원리에서 해석하려는 신앙의 철학화, 추상화를 배격하는 한편 신앙을 역사적 사실 안에서 세우지 않고 감정과 경건위에 세우고, 기독교의 교리를 배격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인의 의식에서 출발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복음, 즉 역사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관계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출발하지 않고 칸트의 윤리적 아 프리오리에서 출발하였다. 리츨에 의하면 예수는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다. 그것은 예수의 인격에서 우주의 보편적, 도덕적 목적에서 소명과 복종의 충성의 윤리적 이상이 최고의 표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예수에게서 이 특수한 도덕적 의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리츨의 용어를 빌리면 우리는 그를 하나님으로 판단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는 이 가치 판단이 신앙이다. 그러므로 리츨에게 있어서 계시는 윤리적 모범 또는 인간이 윤리적 이상의 역사적 실현을 위한 자극에 불과하다. 몰론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치 판단의 기준이지만 그것은 다만 인간의 고유한 윤리적 이상의 역사적 실현화의 의의 또는 계기에 불과하다. 그것은 쉴라이에르마허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종교적 경건의 역사적 실현화의 계기가 되었던 것과 같다. 리츨에 의하면 기독교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업위에 세워진 절대 윤리의 종교이다. 하나님은 절대 개념이 아니라 ‘사랑’이다. 그러나 그의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거룩을 침범하여 죄악과 구원이 다른 것이 되었다.

리츨은 19세기 후반의 신학의 영향을 잡아 주었다. 이것을 4가지로 요약하면 첫째 하나님이 정의와 진노를 배격할 정도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는 그의 태도는 그 당시의 시대적 특징이기도 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을 문제시하고 판단하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의 시기의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거의 상실된 지 오래 되었다. 둘째 첫 번째 요소로 인해서 죄와 은총의 중요성은 놀랄 정도로 감소되어 버렸다. 죄는 무지에서 나오며 인간의 존재 상태보다는 악한 행동에 있다고 보았다. 은총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에 불과하다. 셋째 기독교의 본질적인 본성에 대한 연구는 역사적 연구를 통해서 접근할 수 있다. 넷째 칸트로부터

이끌어낸 도덕을 종교의 자리로 강조하였다. 리츨의 신학은 기독교를 독일 문화와 너무나도 쉽게 동일시했는데, 그 독일 문화가 20c에 끔찍한 비극을 초래했다고 할 때 너무나 비참한 일이다.

트뢸취

마지막으로 트뢸취의 사상을 요약해 보면 트뢸취의 신학적 과제는 20C초엽에 신학계에 가져온 현대의 역사주의에 대하여 기독교의 영원성, 절대성을 변호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기독교 절대성’의 과제가 종교철학의 범위 안에서 취급을 받게 되어 신학이 종교철학으로 환원되고 계시의 상대화를 가져왔다. 그이 관심은 옛 헤겔의 관심이었던 ‘이성과 계시의 조화’ 또는 ‘역사에 있어서의 형이상학’ 즉 역사철학의 과제에 있었다. 딜라이의 영향을 받은 그는 경험전체의 영역에 있어서 아 프리오리를 추구하는 칸트의 원리가 그의 신학(종교철학)의 방법에 적용되었다. 그는 종교적 아 프리오리를 전제로 한다. 이 ‘종교적 아 프리오리’의 발견과 ‘종교적 경험’의 자각이 그의 사상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계시와 이성의 근본적인 연속성’;을 전제로 한다. 인간은 자기가 속하는 생명, 즉 우주의 이성을 의식함으로써 인간의 자각이 최고도에 도달하며 또한 반대로 인간의 이상적인 자각은 그 자체가 그 근원을 우주적 이성 또는 역사의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객관적인 진리이며 동시에 주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계시란 이런 의미에서 이성의 자기이해 또는 자기발전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궁극의 이성 자체가 계시가 되며 계시된 것은 일견 비합리적인 것 같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이성적인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신은 근본적 이성 또는 우주적 정신으로서 종교적 자각은 이 세계에 내재하는 우주적 정신의 이해에 불과하다. 이것은 현대 사조 일반의 특징인 범신론적 성격의 표현이며 특히 쉴라이에르마허에서 계승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역사는 영원한 유동 또는 연속성으로서 상대적이다. 역사에는 이 상대성에서 유리될 수 있는 자존적인 실체들은 없다. 성서의 역사도 또한 그 과정의 하나로서 다만 세계 역사의 한 면에 불과하며 이스라엘 역사와 기독교 종교는 종교 일번의 역사의 흐름 가운데 한 요소에 불과하다. 역사에 절대적인 종교가 있을 수 없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면 기독교도 그러하다. 그리스도 또는 계시는 인간의 종교적 아 프리오리의 역사적 실현화에 있어서 한 모멘트이다. 인간에 내재하는 하나님(우주 전체)의 우주적, 종교적 경험의 한 모멘트이다. 그렇게 되면 신학의 해체는 그 절정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고, 이같이 ‘신학으로부터 종교철학으로의 떨어짐’은 신앙상 상대주의가 될 수밖에 없고 결국 회의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아프리오리와 이상주의적 역사철학이 신앙이 철학적 설명을 목표로 한 19C철학적 신학이 지불한 댓가이다.

하르낙

하르낙의 사상을 살펴보자. 하르낙은 루터교 계통의 경건주의 전통을 이어 받았고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르낙은 신학 일관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실천면에서도 활발하였다. 하르낙의 사상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 사람은 리츨이다. 리츨의 영향중 형이상학적 사변에 대한 거부와 기독교의 역사적 해석의 강조가 두드러진 것이었으나 하르낙은 리츨보다 ‘역사’에 더 튼 관심을 기울였다. 하르낙에 있어서 복음이란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이 아니라 예수의 복음이다. 이것은 살아 계셨던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하르낙이 이야기하는 복음의 세 가지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것의 도래, 성부하나님과 개인 영혼의 무한한 가치 고차적인 의와 사랑의 계명이다. 첫 번째 주제에서 하르낙은 복음서의 종말론을 껍데기와 알맹이로 본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하는 예수의 설교는 그 알맹이가 실천이성의 회개에 의한 도덕적 왕국건설에 있는 것이데 그것이 후기 유대교의 묵시문학에서 온 종말론으로 뒤덮여 잇는 것이다.

예수의 설교로 혹은 예수가 매개가 되어 회개한 개인 영혼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는 것이다. 두 번째 주제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아니라 인간과 만물을 섭리하는 보편적 신이다. 천지를 통치하시는 존재에 대하여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하늘과 땅위로 고양되어 온 세상보다 훨씬 가치가 있게 된다는 주장이다. 세 번째 주제는 ‘보다 고차적인 의와 사랑의 계명’에 관한 복음엔 윤리적 메시지에 대한 것인데 이는 첫 번째 주제와 두 번째 주제에서 본대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개인 심령이 천지의 섭리주를 아버지로 고백하는 신앙인의 경우는 복음의 윤리 명령을 잘 지킬 수 있다는 내용이다. 즉, 윤리 명령과 인간의 성향이나 의도 사이에 충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동기에 의해서 도덕적 삶의 실현이 가능케 된다는 것이다.

하르낙의 탈교리화는 특히 로마 카톨릭시즘과의 관계에서는 공헌이 크다 하겠으나 니케아의 삼위일체론과 칼케돈의 기독론까지 제거하며, 바울의 복음까지도 헬라화 되었다고 하는 점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거부했고 구약을 거부했으며 케리그마와 성령의 생명적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르낙은 루터의 ‘경전 안의 경전’사상을 역사적 예수에 초점을 맞추어 재조정한 것이다. 그의 축소 주의적 기독교의 본질 이해는 19C의 다른 독일 개신교 자유 주의 신학자들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결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c의 자연주의 신학자들중 리츨,하르낙, 트뢸취의 사상은 각자의 주관적인 사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체 18c에 나타난 신앙을 객관화 시키고 인간이성에 노출시킬때에만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 함리주의 신학과 신앙을 주관화 시키는 경건주의 신학의 주장들에 억눌린체 20c에 이르기 까지 이들의 사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지만 반대와 비판에 서는 많은 대상들도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현대에 살아가며 신학에 몰두하는 우리로서는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합리주의와 경건주의 신학의 사상들과 19c의 자연주의 신학자들의 사상 즉 리츨,하르낙 트뢸취 등과 같은 신학자들의 주장들을 잘 조화시켜 현대교회사로 올바른 성서속에 귀착될수 있는 조건을 이루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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