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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예정

시골농군 2009. 7. 13. 15:46

     자유와 예정

 

인생을 살아나가다 보면 간혹 이런 생각을 해 볼 때가 있읍니다. `훌쩍 어

디론가 떠나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일 주일 정도 여행을 갔다 왔으면-'하는

생각을 한 번쯤은 누구나 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복잡하고 지겨운 현실을 훌훌 털어버리고 깊은 계곡, 혹은 시원한 모래사

장이 있는 바닷가에서 한 두 달 지내다가 돌아오면 얼마나 세상 살아나갈 맛이

날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정말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단순한 현실도피는 아닐 것인데, 또한 마음에 일어나는 충동 그대로 발산하

는 것이 참 자유일까요? 자유와 방종과 책임의 한계는 어디까지 정해야 할까요?

이제 인간의 자유라는 문제를 그 철학적 의미와 성경적 의미를 비교해 보면

서 그 근원적인 의미를 상고해보는 계기를 마련하여 볼까 합니다.

1. 철학적 의미로서의 자유

철학적 사고로는 그 무엇에게도 간섭이나 제제를 받지 않고 본능대로 행동

할 수 있는 상태를 자유(自由) 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읍니다.

또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있어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과 관계없이 독

립적으로 자유롭게 결단할 수 있는 절대적 의미의 자유의지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

니다. 문화적 업적과 성취, 인간적 행복, 훌륭한 예술작품, 과학적 발명, 역사적

유산 등은 모두 인간 자신의 의지의 산물과 자랑물로 간주하고 있읍니다.

이러한 철학적 자유의 개념에는 분명한 자유와 방종과의 한계를 정할 수 없

는 방종상태를 포함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철학적 사고로는 어디까지가 자유

이며, 어디까지가 방종인지를 정확히 구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성경학적 의미로서의 자유

성경에서 말하는 자유라는 의미는 인간의 본래상태인 죄와 사망의 권세의 노

예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품안에 종속된, 즉 성령에게 매여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것도 의지 자체가 하나님께 지음을 받아

하나님의 절대의지에 지배를 받는 종속된 상대적 의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 지음을 받고 타락한 후 거듭 태어나는 중생과정을 겪어가는

인생 과정마다의 자유의지의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어 인간의 참 자유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읍니다.

가. 창조인 (원인)

나. 자연인(타락인)

다. 중생인

라. 부활인

가. 창조인

; 창조인이라는 것은 최초의 아담이 처음 지음을 받은 상태의 모습으로, 아직

타락하기 이전의 생령체(生靈體)로서의 인간을 의미합니다.

이는 창세기 2:7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지라'라고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이 창조된 원인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간섭 아래서 상대적인 자유

를 누릴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하기 전 인간

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을 수도 있었고, 따 먹지 않을 수도

있었읍니다. 이러한 자유는 인간 자신 안에서는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는 완전

한 자유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한 작정 섭리에

좌우되는 즉, 하나님의 절대적인 자유에 종속되는 상대적 자유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종속된 상대적 자유의지).

이해를 돕기 위해 하나의 예를 들면 어머니의 복중에 자라나는 태아는 뱃속

이라는 제약을 받고 있지만 태아 스스로는 아무런 제약의 느낌도 없이 마음대로

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나. 자연인(타락인)

; 이는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그 결과로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자인 것입니다.

(계 3:1) 즉, 영적으로 죽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창 2:16-17,엡 2:1)

그나마 상대적인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던 인간은 그 의지의 결단에 의하여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뱀의 말에 순종하고 말았읍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6:16에서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

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라고 한 것과 같이, 인간은 결국 그 상대적

자유의지마저 상실한 채로 사단의 노예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사단의 노예의지)

그러므로 타락인은 사단의 노예로서의 순종의 결과로 모든 일을 행하게 되며

하나님의 무서운 죄의 저주까지 씌워진 상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롬 3:10)

또 에베소서2:1-3에도 `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읍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단 마귀의 권세도 하나님의 장중 안에 붙잡혀 있다는

것입니다.(계 12:9,20:2) 결국 자연인(타락한 인간)은 상대적인 자유마저도

상실한 채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통치를 받는 사망의 상대적 권세 아래서

영적으로 죽은 부자유한 사단의 노예의지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다. 중생인

; 이는 하나님의 구원 받기로 선택(예정)된 자로, 영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하여 거듭 태어난 성도들을 말합니다.

불순종으로 인하여 죽었던 선택자들의 영들이 그리스도의 은총을 입어 성령

으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엡 2:4-7)

여기서 강조하고 넘어갈 것이 있읍니다. 어떤 이들은 죽었던 자가 다시 살

아났으니 타락 전 아담의 형태로 되돌아가 자유의지가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주

장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타락 전 아담은 죄의 저주가 덮이지 않은 몸을 가지

고 있었으나, 중생인은 아직도 저주가 덮인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속사람에게는 하나의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간섭을 받는 상대적

자유의지가 회복되어 주어졌을지라도, 육신의 겉사람은 여전히 죄의 법 아래에

매여 자유의지를 상실한 상태로 있는 것입니다.(롬 7:22-25)

여기에서 중생인에게는 겉사람을 장악하고 있는 죄의 권세의 노예 의지와

속사람에게 주어진 상대적 자유의지와의 영적인 내적 싸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인에게 있어서 상반되는 두 개의 상대적 자유의지가 있다 하여도,

겉사람은 이미 장성한 자의 의지를 가고 있으나 속사람은 아직 자라지 못하고

어린 상태의 의지를 있으므로 자연히 겉사람의 의지(육체를 주관하는 죄 권세의

노예의지)가 승리하게 되는 결과가 자주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중생인은 아무리 중생을 했다 하여도 나중에 거듭난 속사람이 아직

연약하여 겉사람의 육체의 소욕에 지게 되어 있읍니다.

그러나 성경은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로마서 8:12-14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

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

님의 영으로 임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중생인은 거듭 난 속사람의 상대적 자유의지 만으로는 절대로 죄의 권세와 싸

워 이길 수가 없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 안에서만이 승리가 가능한

것이며, 성령의 능력은 마지막 날까지 속사람(중생한 영)을 점차로 성화시켜나가는

과정을 밟아 결국 ‘최후의 승리’를 하도록 도와줍니다.

라. 부활인

; 이는 육체의 모든 더러움을 벗고 영화로운 몸으로 다시 부활한 완성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부활인은 시집도 장가도 가지 않는 천사와 같은 몸을 가지고 있으므로

(막 12:25) 타락 전 아담과 하와같이 부부 생활을 통하여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상태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창 1:27-28)

부활인은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궁극적 완성품이라 할 수 있읍니다.

타락 전 아담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대적 자유의지로 유혹자(옛뱀,사단,마귀:

계 20:1-3))의 유혹을 받아 창조주 하나님을 몰라보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생각

에서(창 3:1-7) 하나님을 불순종하게 되어 유혹자에게 순종할 의지 결단을 내리게

되었고, 이에 반해 부활인은 유혹자가 없는 영원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과 그 높으신 주권을 알기 때문에 오로지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존귀를 세세토록 돌

리게 되는 상대적 자유의지를 가지고 모든 의지 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인에게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의지대로 결정하여 하는 일마다 모

두 다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절대적 자유의지와 완성된 부활

인에게 주어진 상대적 자유의지와의 사이에는 근본적으로는 절대적인 차이가 있

으나 결과적으로는 일치를 이룬다는 심오한 결론에 이르는 것입니다.(요 17:20-26)

┌───────────┬──────────┬─────────┐

│ │ 타락 전 아담 │ 부활인 │

├───────────┼──────────┼─────────┤

│ 육체의 생육 번성 │ 가능하다 │ 불가능(천사의 몸)│

│ 육체의 수명 │ 한계가 있음 │ 영원한 존재 │

│ │(생명나무 실과 필요)│ │

│ 선과 악의 구별 │ 구분 못함 │ 분명히 구분함 │

│ │(선악 알게 하는 열매│ │

│ │ 먹고 깨달음) │ │

│하나님의 사랑 │ 깨닫지 못함 │ 확실히 깨달음 │

│ │ │(영원토록 찬양과 │

│ │ │감사를 드림) │

│사단의 존재 │ 에덴동산에 공존 │ 지옥에 던져버림 │

│ │(사단이 누구인지 깨 │(사단이 누구인지 │

│ │닫지 못함) │분명히 깨달음) │

│상대적 자유의지 │ 불완전함 │ 완전함 │

│하나님의 절대의지와의 │ 상충됨 │ 완전 일치됨 │

│관계 │ │ │

│ │ │ │

└───────────┴──────────┴─────────┘

이상과 같이 인간의 창조,타락,중생,부활의 단계를 살펴 보면서 인간의 참다

운 자유의지에 대하여 살펴 보았읍니다.

결론적으로 현세에 살아가는 자연인(타락인)이나 중생인(비록 속사람에게는

상대적 자유의지가 주어졌지만 아직 너무 어리므로)에게는 절대적 의미의 자유

의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연인이나 중생인에게 모두 자유의지가 없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모두가 노예라는 의미일까요?

지금까지 마음대로 하고싶은 대로 행해 왔던 의지결단은 무엇이었나요?

또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만사를 창세 전에 작정하신대로 주관하시고 섭리

하신다면 인간의 노력은 전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냐? 는 질문도 생길 수 있읍

니다. 예를 들어 애써 예수를 믿으려고 힘쓸 것도 없고, 착하게 살아볼려고 애

쓸 것도 없고, 잘 살아 보려는 노력도 필요없고, 인간적인 계획이나 설계 등도 다

필요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힘쓰고 애쓰고 노력하는 행동의 근본 출처(動因

)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자연인(타락인)에게 있어서는 이 모든 행동이 ‘육체의 욕망’에서 발기됩니다.

즉, 죄의 권세에 장악되어 있는 육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욕망은 결국 죄의

세력으로 부터 오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세력 밑에서 종노릇하는 육신의 소욕

에 따라 힘도 쓰고 애도 쓰며 노력도 하는 것입니다.

중생인의 경우를 보겠읍니다. 중생인에게는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함

께 공존하여, 각각 육신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노력과 영의 소욕을 이루려는 노

력의 근원지가 되는 것입니다.(갈 5:16-26, 롬 8:5-11)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죄의 세력과 성령의 세력은 서로 상대적인 대립관계가

아니라, 절대적인 상하관계를 형성하여 결국 성령의 소욕이 육신의 소욕을 이기

고 승리하게 되어, 성도의 궁극적인 구원이 절대적인 성령의 전능성으로 성취

되게 되는 것입니다.(롬 8:31-39, 계 17:15-18:3)

다음으로 이런 문제도 생길 수 있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절대주권적인 작정섭리에 의하여 선택으로 예정된 자들이

궁극적으로 구원을 받는다면 우리가 구태여 전도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줄로 착각하는 데서 생겨

난 의문인 것입니다.

전도라는 것도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하게 하실때라야만이 진정한 전도가

가능한 것입니다. 사도들이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소아시아 지방과 마게도니

아 반도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들의 의지 결단으로 한 것이 아닙니

다. 하나님께서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주어 하게 하시니까 불가항력적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다음 몇 가지 성경 구절을 살펴보도록 합니다.

고린도전서 2:4에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라고 증거하고 있으며, 사도행전 3:12에도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

목하느냐'라고 반문하고 있읍니다.

또 로마서 10 :14-15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 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라고 기록되어져 있읍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1:8-9에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

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

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와

빌립보서 4:13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와 고린도전서 15:10에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

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

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는 고백을 통하여,

목숨까지 위협을 받으면서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고생을 한 것이 자신의 의지

대로 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가 전도하게 하셔서 한 것이라

는 겸손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의 봉사활동을 자랑하며 자신의 공로로 돌리

고 있는 세상입니까?

결론을 맺어봅니다.

인간이 자신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는 자유를 부르짖으며 자유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무책임하고 방종한 생활을 합리화시켜 행하고 있는 이 현세에,

자연인의 본래 상태가 죄와 사망 권세의 노예 상태라는 것과 자연인이 가지고 있는 방종한 자유의지라는 것이 바로 사단 마귀의 노예의지라는 것을 깨닫고, 진정한 참다운 자유라는 것이 그러한 사단 권세로부터 빠져 나와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품 안에서 참 안식과 평안을 누리는 것임을 성경을 통하여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인생이 참 자유로운 인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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