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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부인과 유다의 배반

시골농군 2009. 7. 13. 15:23

베드로의 부인과 가룟유다의 배반

(선택과 유기의 섭리)

닭 울기 전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던 사도 베드로와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아

버린 가룟유다의 배반을 비교하면서 그 속에 감추어진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살펴보는 계기를 마련하여 보도록 하겠읍니다.

가. 베드로의 부인

1. 구약의 예언

마태복음 26:31-35절에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

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

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

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라고 기록된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의 부인에 대한

예언의 말씀과 모든 제자들의 철저한 부정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부인을 예언하시는 이유는,

구약의 스가랴 13:7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

리우리라'와 시편 88:8,18절에 `주께서 나의 아는 자로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

고-- 주께서 나의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나의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라고 기록된 대로 구약에 이미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

고 떠나갈 것이 예언되어져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구약의 예언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 성취의 섭리대

로 그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를 설명하여주고 있으나, 제자들은 자신들의

의지대로 부인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보여주고 있읍니다.

2. 예언성취

결국 마태복음 26:74-75절에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

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라고 기록된 대로, 베드로가 예수님의 예언 그대로 닭 울기 전에 심지어 저주하

며 맹세까지 하여 세번 부인하는 것을 볼수 있읍니다.

이는 요한복음 18:12절에 기록된 대로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존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라는 기록처럼 구약

의 예언을 성취시키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언약성취의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예수님을 부인하고 달아났던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서 복음을 위하여 증거의 삶을 살다가 순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미리 예언하여 주십니다.(요한복음 21:19)

그 후에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중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

게 되고 죽는 날까지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읍니다.

혹자는 베드로가 심히 통곡하며 회개한 다음 사도로서 복음 전파를 잘 했다

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3:11-12절에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와 사도행전 4:8,13-14,19-20절에 `이에 베

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

고 그 본래 학문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

는 지라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

할 수 없다 하니'라는 기록에서 보면,

성전 미문에 있는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키고난 다음에, 베드로는 자신의

개인 권능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오직 부활하신 나사렛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런 표적을 하였다고 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는 사건이 나옵니

다. 또한 어부로서 학문없는 범인인 줄 알았다가 성령이 충만하여 기탄없이 복

음을 전하며, 과거 세번이나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부인했던 베드로가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라고 큰 소리 치는 것

을 볼 수 있읍니다.

이러한 변화는 하늘로 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베드로전서 1:12절(-이것은 하늘로 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 개인의 힘과 의지로는 할 수가 없읍니다.

오직 성도들 안에 계신 성령의 도움으로 모든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나. 가룟유다의 배반

1. 구약의 예언

흔히들 가룟유다의 배반에 흥분하며 어떻게 지도해 주셨던 선생님을 배반하

여 은 삼십에 팔수 있는지 인간적인 배신감을 감추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가룟유다의 배반 역시 그 안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읍니다.

요한복음 18:12절에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존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라는 기록처럼 멸망의 자식만이 멸망

당한다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시키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언약성취의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즉, 시편 41:9절에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

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와 스가랴 11:12-13절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

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그들이 나를 헤아

린바 그 고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와 시편 109:8절에 `그 년수를 단촉케 하시며 그 직

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시며'라는 유다의 배반에 대한 예언이 구약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2. 예언성취

이것도 역시 구약의 예언 그대로 예수님과 같이 떡을 먹던 가룟유다가 예수

님을 배반하여 받은 은 삼십개를 성소에 던져 넣고 목매달아 죽자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피값이라 하여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고(마태복음

27:1-10), 그 사도직을 다른 사도가 대신 맡게 되어(갈라디아서 1:1), 하나님의

예언이 신실하게 하나도 어긋남이 없이 성취되는 놀라운 사건인 것입니다.

누구는 택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일에 씌여지고, 누구는 불택자로서

하나님의 일에 씌임을 받다가 버려지고-- 정말 성경에서 이러한 너무도 신묘막

측하고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될 때마다 온 몸에 전율이 느껴오면서,

창세 전에 미리 작정하신대로 반드시 성취시키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

광과 찬송과 경배를 돌리지 아니할수 없는 감격이 벅차 오릅니다.

다. 결론

이제 로마서 9:19-24절의 말씀으로 결론을 맺읍니다.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권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

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

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만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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