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1-9 /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2)
요한복음 5:1-9 /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성경은 베데스다 못가의 많은 병자들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있었습니다.
다른 종류의 불치병 환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환자들로 인해 주위는 지저분하고 더럽고 악취도 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티격태격 싸우기도 했을 것입니다.
왜 그들이 모여 있을까요?
4절 말씀에 나타난 전설 때문입니다.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병자들은 한 가닥 희망을 걸고 모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터무니 없는 희망인지도 모릅니다.
38년 된 병자에게 주목하시는 예수님
그런데 이런 허황된 꿈에서도 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은 성경 말씀과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스스로 돕지 않아도, 아무 능력이 없어도 하나님은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보시고 병이 깊은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질문하십니다.
5, 6절 말씀을 보십시오.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은 병자들의 처절한 모습을 보셨습니다.
연못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탓으로 돌리는 38년 된 병자에게 초점을 맞췄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을 보시는 것 같지만, 자신을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믿음도 없고 삶의 의지도 없는 38년 된 병자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런 질문에 병자는 신세타령으로 대답합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참으로 슬프고 애달픈 이야기입니다.
잘못된 희망을 안고 신세만 타령하는 이름 모를 38년된 병자, 가족도 버리고 세상 모든 사람이 버린 이 병자에게 예수님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경쟁에서 낙오한 병자는 하늘만 쳐다보고 자학하고 있습니다.
미련이 남아 자신의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습니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미련 때문에 직장을 떠나지 못하고, 일을 버리지 못하고 끝자락을 붙잡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현상일까요?
여기서 배울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구약종교, 해답 없는 목마름
이것은 구원을 갈망하는 구약 종교 현상입니다.
구약 종교는 형식은 있으나 내용이 없습니다.
율법은 있으나 해답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을 약속하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조상, 예루살렘 성전, 제사 방법도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에 목숨을 걸고 구원받기 위해 모여 있습니다.
구원의 목마름이 너무 컸기 때문에 날마다 제사를 드리며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나라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잘 살게 해 줄 수 있다?는 구호들로 가득합니다.
무너져 가는 교육, 도덕적 파탄, 빚을 갚기 위해 사람을 무참하게 죽이는 짐승같은 마음, 사회 양심의 벨트가 무너져 가는 현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세상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한국은 통일이 되어도 고민, 되지 않아도 고민입니다.
누가 통일 비용을 댈 것입니까?
우리가 안 대면 또 어떻게 할 겁니까?
국내외 정세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다.
가정으로 들어가 보면 그런 문제들은 산재해 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 중심의 구약 종교를 통해 배우는 것은 율법의 행위나 종교적인 행위로는 구원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래 기다리고 있지만 해답 없는 목마름과 갈증만 되풀이할 뿐입니다.
인간의 선행, 노력, 철학, 종교, 환상으로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인생의 변곡점
또 잘못된 환상은 구원을 만들지 못합니다.
38년 된 병자는 스스로 설득합니다.
?누가 나를 던져주기만 하면 살텐데…?라는 잘못된 희망,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8, 9절에서 이 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예수님의 대답은 너무나 명쾌합니다.
38년 된 병자를 설득하지도, 설교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병자여! 일어나시오, 자리를 들고 걸으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확실하고 능력에 찬 말씀입니까?
이 말씀은 세 가지 말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나, 일어나라!
38년 동안 누워있던 사람에게 하시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불가능한 가운데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둘,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
자리는 38년 된 병자의 친구입니다.
병자는 38년 동안 자리를 끼고 살았습니다.
38년간 친구가 됐던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셋, 걸어라!
과거, 상처, 불가능과 단절하고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왕의 신하에게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아들이 죽게 된 신하에게 ?네 아들이 살았다?고 말씀하신 순간 나았습니다.
?돌아가면 살 것이다?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명령에는 권위와 능력이 있습니다.
?일어나 걸어라?고 하신 순간에 일어나 걸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이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걸어라! 너를 38년 동안 묶고 있던 그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으라고 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무릇 나를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다. 나는 부활이다.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다?. 예수님의 명령이 오늘 여러분의 가슴속에 나팔소리처럼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