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외국인교회/요한복음 설교자료실

요한복음 4:10-17 / 제 목 : 생수를 주시옵소서

시골농군 2010. 5. 24. 18:12

요한복음 4:10-17 / 제 목 : 생수를 주시옵소서

 

목마르지 않는 샘물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아브라함의 우물, 이삭의 우물, 야곱의 우물물은 마셔도 다시 목마른 것이 공통점입니다.

우물 없이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조상들이 팠던 우물의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구약의 종교는 다시 목마른 종교라고 합니다.

율법의 종교입니다.

율법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율법을 먹는 자는 다시금 목마릅니다.

왜냐면 율법을 지킬만한 의로운 인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순간을 넘길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영혼은 목마르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이런 상황을 말해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림의 떡이다." 그림의 떡은 먹음직스럽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먹을 수 없습니다.

조상들이 주었던 우물은 순간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지만, 다시 목마를 것이라고 합니다.

14절을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알아듣기 쉬운 말로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물은 조상들이 마신 물과 다르고,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것이라고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구원이 그렇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설교를 들으면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잘 모릅니다.

이런 걸 ?타고르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인도의 타고르는 하나님과 가깝게 이야기한 것 같지만 그에게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하나님의 실체가 잡힙니다.

2천년 전에 죽은 예수를 어찌 만날 수 있습니까.

성령을 받으면 됩니다.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에 이 여자가 빠져듭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빵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육신을 위한 빵이 있지만 영혼을 위한 빵도 있습니다.

육신을 위해 마시는 물이 있지만 영혼을 위해 마시는 물도 있습니다.

누구든지 오라

이 말씀에서 생수에 대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생수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우물은 가서 퍼오면 됩니다.

그 물을 마시면 다시 목마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은 영원히 솟아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물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요 7:37,38)

예수님은 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마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떡을 주시면서 먹으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먹는 것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예수를 모릅니다.

예수는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먹는 것이고, 마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와서 피와 살이 되어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의 경험에 항상 목말라 하는 것은 하나의 대상으로 예수님을 알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명상이 아니라 경험입니다.

영원한 ?생수?와 ?신앙?은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주관적 경험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6절에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첫째, 생명수는 예수님으로부터 옵니다.

둘째, 중요한 특징으로 값없이 주는 것입니다.

공짜로 ?누구든지? 제한 없이 주십니다.

셋째,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지 않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해마다 소나 양을 죽여서 피를 흘리며 반복해서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를 주셨습니다.

단번에 갈증이 해소되며 율법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고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샘물은 계속 솟구쳐 나오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사야서 12장 3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라고 하십니다.

또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는 영생으로 인도합니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사마리아 수가 성의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점점 빨려 들어갔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하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이성적, 상식적인 눈에서 영적인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학문과 사고 방식에 너무 익숙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관점에서만 대상을 보려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관점에서 볼 능력이 없습니다.

한 자리에서만 맴돌기 때문입니다.

인본주의 사고로 생각해 왔기에 믿음으로 잘 가다가도 뒤돌아 서 원상태가 됩니다.

15절에서 이 여인은 굴복합니다.

어떤 굴복인지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 여인이 좀 발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거부하다가 호기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한 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청천벽력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16절입니다.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다음 단계로 끌고 가십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허를 찌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이 여자를 묶고 있는 과거가 올무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과거가 정리되지 않은 미래는 없습니다.

여인은 병의 근원을 숨기고 외과적 현상만을 말했습니다.

구원은 그 현상의 근본을 고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과거를 치유하기 원하셨습니다.

남편을 데려오라는 말씀에 여인은 화들짝 놀랍니다.

그래서 17절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신앙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당신의 과거를 청산하고 회개가 일어나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남편을 데려오라고 했다면 여인은 도망갔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 붙잡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에게서 도망가지 마십시오.

그분에게 회개를 하십시오.

과거를 치유받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샘물을 마시고 구원의 축복에 들어오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