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31-36 / 세례요한의 마지막 증거
요한복음 3:31-36 / 세례요한의 마지막 증거
역사나 시대를 평가할 때 내용도 중요하지만 누가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더 중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복음서를 썼던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예외 없이 한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그 사람이 세례 요한입니다.
동시에 4복음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증언하는 것보다 더 값지고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의 비판이나 평가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생각, 믿음, 삶 그대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요한은 인기나 유명세에 연연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를 가장 높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진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죽음을 초월한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왕에게 죽임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서를 자세히 보십시오.
세례 요한에 대한 자료가 풍부하게 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어떻게 증언하는가?
요한은 온 인류를 대표해서 예수님에 대해 고백했습니다.
하늘에서 오신 분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31절 말씀을 보십시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세례 요한은 위로부터 오셔서 만물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인간이란 땅에서 나서, 땅에 속해 있고, 땅에 관한 것을 말하는 존재입니다.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고상한 철학과 사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뿌리가 땅에서 나왔기에 인간이 하는 말은 다 땅에 속해 있는 언어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며, 하늘에서 나왔고 하늘에 속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지만 하늘에 속한 말씀을 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가 하늘의 이야기를 하시는 분으로 증언합니다. 32절 말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지시고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보고들은 것을 말하시는 분입니다.
하늘에서 보고들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구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을 아는 자다.”
예수님의 이야기에 어려운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에서 놀라운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생명, 구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불경이나 유교 경전과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비교합니다.
그리고 진리는 기독교에만 있는게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비슷한 이야기는 많습니다. 그러나 근본이 다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한 말씀 한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하늘에서 보고 듣고 오셔서 이야기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읽고 들을 때마다 변화를 받아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귀신이 떠나고 병이 치료되는 일이 일어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는 분
33, 3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메시아의 본질과 증거를 받아들였다면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사람은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실감하는 사람입니다.
머리로 믿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고 믿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세례 요한의 증거를 받아들일 때, 하나님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참되신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나를 만지시고 속삭이시며 나의 마음을 녹이시고 영혼을 변화시키는 일이 일어납니다.
화니 제인 그로스비는 시각 장애인이 있었습니다.
인생의 고난과 절망과 좌절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은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 기쁨을 눈물로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세례 요한이 아주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을 한없이 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충만할 뿐 아니라 성령님이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남자를 통하여 나지 않으시고, 성령으로 나셨습니다.
세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성령으로 말씀하시고 사역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가는 열쇠는 성령 충만입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여 명의 사람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에 남기셨습니다.
이성주의자, 경험주의자, 과학주의자들은 이 비밀을 모릅니다.
어떻게 예수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성령의 비밀입니다.
예수 체험은 성령 체험입니다.
그러나 많은 교인들이 예수님를 믿어도 성령님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그건 예수를 모른다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적, 도덕적, 윤리적, 역사적인 예수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령 예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보내신 예수님에게 무제한으로 성령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
35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만물을 다 주셨다는 말씀은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통치하는 권위를 주셨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 말씀을 잘 아실 겁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하나님은 하늘의 모든 권세와 땅의 권세를 예수님 한 분에게 주셨습니다.
영생을 주시는 분(36절)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예수님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시는 분이십니다.
보통 사람은 자기 인생을 좌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영생이 주어집니다.
그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영생은 사라지고 대신 인생의 본질인 심판과 진노가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진노와 심판을 주시는 게 아니라 이미 우리가 진노와 심판에 있는 겁니다.
지금 세상은 지옥과 다를 게 없습니다.
이 세상은 이미 심판을 받고 있는 겁니다.
성경에 진노가 쌓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인간은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구름이 어느 정도 모여서 떨어지는게 비입니다.
인간이 하는 짓마다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를 쌓아 진노의 양이 차면 어느 순간 떨어지는 겁니다.
이게 심판인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언한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습니까’라고 물으면 ‘아멘’이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대답을 하게 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세례 요한의 이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느껴지고, 받아들여지고, 거듭남의 역사가 나타나며 심판이 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례 요한이 말했던 그 예수님이 마음에 증거가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