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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3:1-6 / 십자가를 밝히 보라

시골농군 2010. 3. 27. 18:14

갈라디아서 3:1-6 /  십자가를 밝히 보라

 

고난주간이 오늘부터 시작이 됩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다시 한번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오늘 본문에 (갈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이 말씀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눈물로 권면하는 사도 바울의 호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의 사건이 너무나 밝고 생생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율법이나 공로, 유대적이니 하는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는 바울의 권면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과연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롬 3:20-21)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 공로를 세워서 그 공로를 통하여 구원을 얻는 것인가?
아무도 자기 공로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앞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롬 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세상에 하나님 앞에 자기의 공로를 내세울 수 있는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떻게 죄인이 자기 스스로 자기를 구원 할 수 있는가?
죄인은 오로지 벌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아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 유대전통을 지켜서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인가?
유대전통은 한마디로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율법의 조문들을 해석하거나 규정을 만든 것입니다.
탈무드, 미드라쉬 등의 율법의 조문을 해석하고 그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여러가지 규칙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에 일의 개념이 뭐냐고 하는 것을 규정했는데 무화과 두 개 이상의 무게가 나가는 것을 옮기면 그것은 곧 안시일을 범하는 죄가 된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율법의 여러조항을 규정한 규칙들을 오랜 세월 동안 지켜오면서 하나의 전통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전통을 잘 지킨다고 해서 구원받는가?
우리가 구원받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이 십자가 사건을 밝히 알지 못하면 우리의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의미를 바로 이해해야 하고 그 십자가의 의미가 우리의 삶속에 녹아 스며 들어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영적으로 생생하게 보아야 합니다.
이 사순절을 지내면서 으리 자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주님의 십자가를 과연 보고 있습니까가?
자신의 신앙으로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생생하게 마음에 그려지는가?

우리는 어떻게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까?
욥의 고백처럼 할 수 있습니까?
(욥 42:4-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이제 주님의 십자가를 어떻게 밝히 보여져야 할 것인가?
첫째, 죄에 대한 심판과 대속의 십자가를 보자.
이것을 우리는 속죄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죄인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자기 대신 희생해 줄 짐승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양이나 염소 등입니다.
이 희생제물이 죽음으로 죄를 지은 사람은 다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의 희생되는 양을 속죄의 양이라고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속죄하기 위한 속죄의 양으로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피를 흘린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하심의 희생을 생각하라.
하나님의 사랑의 희생이 무엇인가?
하나님과 죄인과의 만남을 위한 사랑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 방식이 희생을 통한 표현입니다.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 자체가 곧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요일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과 죄인간의 화해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화목제로 죽는 것입니다.
그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인 것입니다.

셋째, 죄를 이기는 구원의 능력을 보라
이것을 다른 말로 해서 능력의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세상에 괴연 누가 죄를 이길 수 있습니까?
죄를 지은 인간이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죄없는 자가 책임을 지고 죄를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요일 3: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죄를 없이하는 능력이 바로 예수의 십자가이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의 능력입니다.

넷째, 십자가를 밝히 보는 체험을 하자.
이것을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것은 바로 성령의 능력을 통한 체험입니다.
바울에게 역사했던 성령의 능력, 마가의 다락방에 임했던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체험하라.

다섯째,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보라.
이것은 구원과 승리, 부활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패배했습니까?
대적자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면 승리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3일만에 부활하심으로 마귀의 도전을 실패로 끝나고, 예수는 최종적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수없이 많은 약속의 성취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구체적으로 만나는 구원의 능력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보고 답해야 합니다.
"날 대신해서 심판받으시는 어린 양 되시는 예수를 나는 진실로 믿는가?"
"내 죄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확실히 믿는가?"
"예수님이 피흘리시는 십자가가 내 구원의 능력이 되는가?"
"주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주님의 고난과 피흘림과 죽으심을 밝히 봉고 있는가? 영적인 확신이 있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밝히 보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부족하여 잘 볼 수 없어도, 주님은 우리에게 다가 오셔서 밝히 드러내 보이십니다.
마치 의심많은 도마에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요 20:27-28)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를 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실체를 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의 용서와 능력의 실체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