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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1-4 /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

시골농군 2010. 1. 30. 18:14

 창세기 12:1-4 /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

 

1. 아브라함은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원래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창 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이 있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라함의 나이 75세입니다.

지금까지는 그의 부친 데라와 함께 하였지만 이제는 아브라함이 가장으로서 가족을 이끌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두렵기도 하였고 걱정과 근심이 앞서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이 도착한 땅은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의지할 곳 없는 땅입니다.

“고향과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은 순종할 뿐입니다.

의지할 곳 없는 땅을 향하여 가고 있는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자기를 도울 자도 없고, 자기가 기댈 곳도 없습니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다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이기에 믿음으로 나갔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할 땅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땅입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우르는 물이 풍부하여 농경문화가 정착된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성경은 가나안 땅을 가리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보기에 그 땅은 갈대아 우르에 비하면 결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집요하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믿음으로 나갈 때에 아브라함이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이곳까지 왔을 때에는 무언가의 목적을 가지고 왔을 것입니다.

그 목적이 어쩌면은 하나님이 주신 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처럼 여러분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서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살다보면 분명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2. 아브라함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순종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고향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고향은 우리의 삶의 터전입니다.

고향이란 태어나서 자라고 배우고 선조 대대로 살아온 활동의 근거지입니다.

‘친척’이란 어려울 때 도와주고, 의논하고, 충고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고, 협력하는 동류적, 혈연적 집단인 소속을 말합니다.

‘아버지의 집’이란 비바람을 막아주고 더위와 추위를 가려주고 편히 쉬도록 피난처를 제공해 주는 집으로 물질적, 정신적으로 의지와 보호의 집입니다.

‘떠나라’'는 요구는 ‘완전 분리’, ‘옮기는 것’, ‘나눠지는 것’, ‘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요구하심은 지금까지 안 믿을 때 안 믿는 방법으로 관계를 맺어 왔던 유대 관계는 완전히 끊고, 옮기고, 나눠져서, 달라지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믿은 이후부터는 안 믿을 때와는 생활 방식, 가치관이 달라져야 합니다. 안 믿을 때의 것은 완전히 끊고, 옮겨서, 나눠져야 합니다.

아브람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난 것처럼 이제부터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전적으로 의지하고 소망하면서,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만 하루 하루의 삶을 살고, 떠남은 완전 분리를 의미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세상, 축복된 삶을 시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 순종이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는 땅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나이가 75세였습니다.

사람의 생은 40-50만 되면 이 땅에서 많은 것을 얻고 누리면서 살만한 나이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75세를 살았다고 했을 때 그는 하란에서 많은 것을 이루어 놓았음에 틀림없습니다.(재산, 명성, 인간관계, 사업 등)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러한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창 12:2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라는 복을 주십니다.

두 번째는 이름을 창대하게 하는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여기에는 아브라함이 갈대아에서 누리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귀한 것들입니다.

결과적으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어 진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있습니다.

3. 아브라함은 평화와 정의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조카 롯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도 복을 주시고, 조카에게도 복을 주셨습니다.

두 집안이 다 부자가 되었는데 그 하인들이 서로 다투고 갈등하게 되었습니다.

창 13:8-9에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다툼과 갈등은 지난친 욕심에서 생겨납니다.

갈등과 다툼은 어느 한쪽이 양보하거나 뒤로 물러서야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양보하는 쪽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쉽게 양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등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평화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조카에게 좋은 지역을 양보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평화롭지 않으면 축복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평화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평화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