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5-8 / 하나님의 은혜로
요한복음 3:5-8
제 목 : 하나님의 은혜로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성령이 임할 때 진짜 거듭남, 제 2의 출생이 시작됩니다.
제 1의 출생에서 부모님의 유전인자를 받듯이 제 2의 출생에는 하나님의 유전인자가 내 안에 들어옵니다.
죄의 인자가 없어지고 생명의 인자가 내 안에 다시 시작합니다.
죄성으로 부패했던 내 모습이 회복합니다.
인간의 속성은 배신이었지만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임해 하나님의 인자가 다시 살아 납니다.
이것이 ‘새롭다. 거듭났다. 변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날 하나님 없이 살면서 흔들리고 비참해지고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여태까지 오만하고 자신 만만하게 자기 중심으로 살아왔던 내가 안에서 무너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교회에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고, 들리지 않던 설교가 들립니다.
자꾸 듣고 싶습니다 자기 내면에는 하나님에 대한 갈증, 갈망이 생깁니다.
성령이 당신 안에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말씀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태어난 시기도, 지역도, 성도 어느 것 하나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육적인 탄생처럼 영적인 탄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영적인 갈급함과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을 주시고 내영혼에 대해 제 2의 탄생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은혜와 믿음은 언제나 동전의 양면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오시는 것이 은혜고, 내가 하나님께 가는 것을 믿음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오실 때 내 마음에 하나님께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낳아주시는 것입니다.
내 부모가 나를 낳았듯이 성령이 나를 낳아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확실하게 이해하고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그때부터 내 힘으로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 말씀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쁨이요, 평안이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환희입니다.
의욕이 넘치고 비전이 생기고 죽고 병들고 가난한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분으로 말미암아 내가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 때부터 이상한 현상이 생깁니다.
밤이 새도록 기도하고 찬양을 부르면 눈물이 납니다.
가슴이 흔들립니다. 성경을 읽고 싶어집니다.
당신 안에 성령이 임하시고 말씀이 거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새로운 비전, 능력, 생각이 내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경험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기도를 하면 할수록, 찬송을 부르면 부를수록 더 커집니다.
내 안에는 그런 것이 없지만 어디선가 그런 것들이 내 안에 생깁니다.
이것이 기독교요, 거듭남이요, 기적입니다.
영으로 난 자만이 깨닫는 진리
이 말을 니고데모는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이 비밀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니고데모가 못 알아 들은 것이 얼굴에 분명히 보이자 예수님이 한 마디 더하셨습니다.
6절과 7절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개는 개를 낳고, 소는 소를 낳고, 원숭이는 원숭이를 낳을 뿐 사람을 낳을 수 없습니다.
종은 바뀌지 않습니다.
육을 아무리 훈련시키고 도를 닦고 관리한다고 해서 육이 영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인간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인 것처럼 육은 육이고 영은 영입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하면 된다. 산에 가서 백일 기도 하면 된다. 금식하면 된다”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종교적인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한 거듭남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 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종교적인 훈련, 노력, 열심이 곧 여러분의 믿음이라고 착각하면 할수록 더 허무하고 갈급하고 괴로워집니다.
인간 안에 허구와 죄와 더러운 것은 교양이나 지성으로 아무리 감싸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본성을 없애야 합니다. 육을 없애지 않고 영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과거, 죄성, 옛 사람을 죽이지 않고 새사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은 육이요, 영은 영이니 내가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혼동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이 말을 알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또 설명하십니다.
8절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이 이러하니라
성령으로 난 사람은 알지만 육으로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변화와 거듭남, 새 사람은 당신이 인격으로 성숙했느냐, 안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여자가 아기를 낳는 것은 지성이 있거나 유식하거나, 돈이 있거나, 신분이 높은 것과 관계없습니다.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거듭남은 없습니다.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를 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영적인 진리를 깨닫습니다.
내가 아무리 수영을 잘해도 한강이나 현해탄 정도는 건널 수 있지만 태평양은 건널 수 없습니다.
내 선행이라는 것은 한강을 왔다갔다하는 정도입니다.
미국을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그러면 비행기가 나를 태우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데려다 줍니다.
구원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낳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말씀으로 낳아야 합니다.
이것이 제 2의 출생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