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성장을 위한 평신도 지도력
제목 : 교회 성장을 위한 평신도 지도력
1.글을 시작하며 : 문제 제기와 연구 목적1
2.교회 성장의 새로운 방향2
1)한국 교회 성장의 허와 실2
2)한국 교회의 성장 과제3
3.평신도의 자리와 목회자의 지도력4
1)평신도의 위상 4
2)목회자의 지도력5
3)제자도(Discipleship)6
4.요약과 정리 : 한국 교회의 미래적 전망7
5.참고도서 목록
교회 성장을 위한 평신도 지도력
1.글을 시작하며 : 문제 제기와 연구 목적
한국 교회의 성장은 이미 대내외적으로 경이적인 사실로 인정받아 왔다. 1980년에는 한 해 동안 60만 명이라는 숫자가 늘어났다 고 하는 보고도 있으며, 매년 한국 교회가 13-15% 정도의 성장률을 지켜 왔다는 사실은 인구 평균 성장률 2%에 비하면 600-700% 이상 앞서는 놀라운 성장이라는 점에서 폭발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폭발적 성 장은 이제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독교 교문 사가 발행한 1993년 기독교 연감에 따르면 1990년에는 연평균 10.8 %의 성장을 보였으나 1991년에는 5.8%, 1992년에는 4.0%로 둔화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신앙세계 , 신앙 세계사, 1993년 10월호, p60.
교회의 폭발적 성장 앞에 스스로 자랑하던 교회는 급격히 떨어지는 성장률 앞에 위기감으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째서 교회는 고속 성장을 유지하지 못하고 뒷걸음치고 있는 것일까? 이 것은 오늘 한국 교회의 질문이요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물음에서 본 논문은 출발하고 있다.
한국 교회의 폭발적 성장이 급격한 성장률 감소로 뒤바뀐 원인에 대한 시각은 여러 가지 중에 한국 교회 내적 문제로 교회 윤리 와 사회윤리가 분리되는 이중적 윤리 구조에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문민 정부의 사정 대상 공직자 중 70%가 기독 교인이라는 비공식 통계에서 드러나듯이 기독교인의 윤리적 책임이 부족하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은준관, "변화된 상황에서 교회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기독교사상,대한기독교서회, 1993년 11월호, pp10-14.
숭실대학교 김영한 교수는 한국교회 성장 둔화의 요인으로 교회의 윤리 문제를 꼽고 있다. 목회자의 개인 윤리 뿐만 아니라 교 단의 핵분열, 군소 신학교 난립, 시한부 종말론 사건 등으로 사회 인식이 안 좋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예언자적 윤리 책임 을 다하지 못하여 대중의 신뢰를 잃고 있으며 어느 중앙 일간지가 조사한 직업 신뢰도에서 목사가 다른 종교 지도자는 물론이고 T.V 기자보다도 못하다는 통계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김영한,"한국교회성장이 둔화되 고 있다", 신앙세계, 1993년 10월호, p.61-62.
이제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시급한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그 것은 우리 기독교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님께 정당하다고 인정받으며 이 세속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물음 앞에 우리는 목회자의 지도력에 대하여 물음을 갖 지 않을 수 없다. 도덕적 권위를 상실해 가는 현대의 목회자들이 과연 평신도에 대한 지도력을 어떻게 계발할 수 있을 것인 가이 다.
본 논문은 목회자가 평신도를 능동적 책임과 활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참으로 성숙하고 윤리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는 지도력 을 개발하고 육성하는 일에 관심 하려고 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우선 한국 교회 성장의 허와 실을 따져 보고 한국 교회 성 장의 참된 방향을 모색하여 볼 것이다. 둘째는 재고되어야 할 한국 교회의 평신도 위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평신도의 자리 매 김을 새롭게 시도해 볼 것이다. 셋째는 목회자가 갖추어야 할 지도력의 참 의미와 평신도 앞에 서야 할 목회자의 참된 지도력에 대하여 살펴보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요약과 정리를 하면서, 오늘 한국 교회에 진정으로 요청되는 목회자의 지도력 육성을 통 하여 결과 될 밝은 미래의 한국 교회를 전망해 볼 것이다.
2.교회 성장의 새로운 방향
1)한국 교회 성장의 허와 실
한국 교회의 성장은 언제나 양적 팽창에 관심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교인 수의 증가, 교회 예산의 팽창, 예배당 의 증축과 기도원 건설과 대지 확장 등의 내용으로 교회 성장에 대하여 말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과연 이 것이 진정한 교회 성장 이라 말 할 수 있는가? 사실 교회의 양적 성장이 가져다 준 긍정적 평가는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양적 성장에 헌 신한 신앙인들의 열정 또한 과소평가 해서는 안될 것이다. 교회가 이 사회 속에 자리하는 큰 자리는 열정 어린 부흥 주의자들의 공로 없이 말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열정적인 부흥이 다시 퇴조하고 있는 원인은 그 성장 노선에 적지 않은 문제 를 안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의 양적 성장이 안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그 것은 양적 팽창에 치중한 한국 교회는 교리적 혼란에 빠져 있다는 점 이다. 그 것은 교회에 사람을 불러모으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돌진 방식의 교회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 라 할 수 있다..옥한음, 「평신도를 깨운다」(두란노서원, 서울, 1987), pp.25-26.
그래서 세상적 욕망을 닦아 내고 정결한 마음을 얻어야 할 교회가 도리어 세상적 욕망을 부추기고, 세상 의 물질적 가치를 하나님의 복으로 둔갑시키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때문에 감리교회가 그 특성을 잃 어버리고 순복음교회의 아류가 되거나, 초교파를 내세우며 신학적 입장도 없고 자기 정체도 없는 교회, 무국적 교회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비판도 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두 번째는 교회론의 부재에서 기인된 것으로 교회의 질적 성장에 관심 하지 못한 때문이다. 질적 성장은 교회의 교육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교육하고 훈련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제자들을 향한 예수의 마지막 명령은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 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의 교육이 바르게 되지 못하고서 교회가 바르게 설 수 없는 것이다. 교육이 바르게 된다는 것은 곧 교회가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교회의 질적 성장은 바른 교육이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교회로서 정상적인 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교회의 4 가지 기능을 들자면 '케리그마'(말씀선포), '디다케'(교육), '코이노니아'(영적 친교), '디아코니아'(세상을 향한 봉사) 라고 할 수 있다. 초대교회는 이러한 기능이 조화 있게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대부분 교회는 말씀 선포한 가 지에만 치중하고 있는 경향이다. 예를 들면 신자는 일 주일에 열 두 번의 예배(주일, 새벽, 수요, 속회, 철야 등)에 참석하여 말 씀을 듣는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의 교회가 예배 중심적 교회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증거이다. 문제는 교회의 힘이 듣는 데만 일 방적으로 몰려 있고 교육, 나눔, 봉사 등과 같은 쪽엔 소홀한데 있다..김태원, "교회교육의 개혁이 필 요하다", 신앙세계, 1994년 6월호, ,pp.137-138.
따라서 한국 교회는 양적인 성장에는 성공했다고 볼 수 는 있지만 교회 성숙에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2)한국 교회의 성장 과제
한국 교회가 부흥하면서 양적인 성장에만 집착해 온 때문에 한국 교회의 구조가 듣는 교인만을 양성하는 결과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탈역사적이고 물질적 출복관에 빠진 신앙은 현실 세계에서 무책임적이고 비윤리적인 생활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한편 권위주의적인 교회 습관은 교인을 매우 피동적인 객체로 머무르게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양적 질적으로 성장하고 세속 사회로부터 긍정적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평신도를 바르게 교육하고 훈련 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지금 각 교회에서 진행되는 성경 공부도 여전히 교회의 양적 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등 평 신도를 각성시키는 시도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박익수, "성서연구를 위한 새로운 교재에 대한 연구", 신학과 세계 가을호(감리교신학대 학교, 서울,1990),pp.69-78 참조
. 이러한 현상은 교육 대상자인 평신도 이해에 편견이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바른 교육을 세우기 위 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 대상자인 평신도를 교육의 주체로 세우며 지도력을 가진 일꾼으로 키우는 교육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 로 남아 있다. 따라서 이 과제를 이루기 위하여서는 평신도 교육에 대한 교회 지도자들의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 교회는 이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에로 관심을 돌려야 할 것이다. 평신도를 단순하게 만들고 양순하게 순종만 하는 사 람들로 훈련시키기보다는 창의적이고 윤리적이며 지도력을 가진 능동적인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3.평신도의 자리와 목회자의 지도력
1)평신도의 위상
이제까지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위상은 모이는 사람이나 동원되어야 할 사람, 아니면 천당 가기 위하여 불러 모인 사람 수준으 로 이해되어 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피동적인 객체로 취급받아 온 것이 사실이며 교회는 양적 성장을 위하여 교권화 되고, 성직자 중심의 교회가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평신도의 자리가 새롭게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세계교회가 교회와 세상 가운데서의 평신도 위상을 재고해야 한다는 의식 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전환은 크게 두 가지 원인으로 나타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세상의 질서 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에로, 집단보다는 사생활이 중요시되고 개인화 되는 세속적 가치 속에서 자신의 자아 확대를 경험한 때 문이다. 둘째는 교회 연합운동(W.C.C)의 결과로 나타난 것인데 평신도 사제직에 대한 신학적 입장이 보급되고 확장 된 이유라 할 것이다.Hendrik Kraemer, 「평신도 신학과 교회갱신」, 유동식 역(평신도신학연구소, 서울, 1994).pp .43-54.
. 그러나 평신도의 위상이 재고된 것은 교역자자신의 필요성 때문이라기 보다는, 평신도 자신의 사회적 지 위의 변동에 따른 각성이기보다는, 세상이 변하기 때문에 오는 필연적 결과로 이야기 하는 것보다는 보다는, 성서가 평신도의 위 상을 재고하도록 증언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 당신이 평신도의 위상을 재고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옥한음, 「평신도를 깨운다」, p.33.
즉 하나님이 바라는 평신도의 자리가 이제야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제는 평신도가 교회의 핵심으로 자리하고, 교회 질적 성장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평신도는 예배를 위하여 소집되는 대상이나 객체로서의 신 도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교회와 세상 안에서 섬기고 봉사하는 자리에 서야 할 것이다. 목회 지도력은 마땅 히 이와 같이 성숙한 평신도를 교육하고 훈련하는데 모아져야 할 것이다.
2)목회자의 지도력
목회자는 교인을 책임 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교육하고 훈련하는 책임이 주어져 있다. 따라서 목회자의 지도력은 올바른 평신 도 이해와 확고하게 정립된 교회관, 그리고 솔선 수범하는 실천적 목회자가 될 때 참된 목회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평신도 교육의 일차적 책임은 목사에게 있다. 바울의 말처럼(엡4:1-12) 교역자의 사명은 평신도를 사역하는 자로, 복음의 증인 으로 준비시키는데 있다..위의 책, p.148.
따라서 목사는 평신도를 교육하는 지도자로서 자신 스스로가 제자로서 철저히 훈련되어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평신도 지도력이라는 것이 이론으로 성취되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평신도를 지도하는 능력은 삶 전체와 신앙의 경험에서 일어나는 사건이고 역사 창조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평신도를 지도하는 능력은 신앙과 삶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이며, 교회 전반에서 의도되어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보는 것이다. 때문에 지도자인 목사는 충분히 훈련된 예수의 제자 도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도자의 모범은 평신도 교육의 근본 원리이다. 예수께서 삶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신 모범이다. 함께 동거하며 삶 전체를 통해 제자들과 인격적 교감을 가졌다. 오늘날의 목회자가 동거동락은 못할지라도 적어도 그 원리에는 충실해야 한다. 즉 삶을 감추지 않고 공개하는 것이다. 실천만큼 큰 호소력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회자가 갖추어야 하는 모범적 제자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
3)제자도(Discipleship)
예수 그리스도는 구체적으로 제자 도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정의 내리거나 설명한 적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복음서 전체에서 직접 제자들을 불러 가르치고 훈련시킨 예는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이 제자 도는 하나의 정의라기 보다는 실제 생활 속에 서 구현되는 산 진리라 할 수 있다..앞의 책, p.101.
옥한음 목사는 제자 도에는 다음과 같이 3가지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위의 책, pp. 102-128.
첫째는 인격적 위탁의 요소이다. 우리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내 맡기는 것으로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는 것을 뜻한다. 이는 "나를 따르라"(마4:19, 막1:17)는 주님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며 이 결단 은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아무도 포기하지 않고서 예수를 따를 수 있었던 사람은 없다(눅18;18-30). 따라서 신약성서는 제자가 되기 위해 만만찮은 대가를 지불해야 가능함을 증언하고 있다. 신앙에 방해되는 요소들과 싸울 각오가 되 있어야 하며 심지어는 가족들과의 불화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마10:34-36). 또 선택의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 둘 다를 선택할 수 없을 때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택하고 다른 한 쪽을 포기해야 함을 각오해야 한다. 제자는 십자가를 질 때 가능하다. 예수께서는 제자가 되는 조건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것을 요구하였다(마10:38). 고난을 각오한 선택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자는 목숨까지 바치는 충성이 요구된다(마10:39). 이 증언은 순교자의 피로 이루어진 기독교 2,000년 역사 가 증명해 주고 있다. 초대 교회의 역사 속에서 드러난 이러한 요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연합으로 결실된 것들이다.
둘째는 증인의 요소이다. 초대 교회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의 직무는 한결같이 증언하는 일이었다. 예수께서 승천 직 전에 선언한 제자의 의무 역시 증언이었다(눅24:48). 제자는 곧 증인으로 보냄을 받은 자들인 것이다. 사도(apostolos) 라는 말 역시 보냄을 받은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초대 교회는 성령의 내적 충만으로 열렬한 그리스도 증언자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전 생활 영역에서 마음 속에 충만한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증언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
셋째는 종(從)의 요소이다. 종이라는 말은 두 가지의 뜻을 갖고 있는데, 하나는 종(doulos)이라는 명사형과 섬기다(diakone o) 라는 동사형이다. 이 둘은 같은 의미로서 명사형은 신분을 나타내는 말이고 동사는 그 기능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예수 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종으로서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사실은 예수께서 직접 모범이 되어 본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종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으며(빌2:7-8) 섬기는 자로 이 세상을 사셨다(눅22:27). 따라 서 예수의 제자는 모범이 되시고 스승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기독교 대한 감리회 교리적 선언 2항.
를 본받아 종의 신분으로서 섬기며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의 참 제자가 되는 것이며, 제자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본받는 믿는 사람으로서 의 자아상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너무도 분명하다. 예수의 진정한 제자가 되는 것이다. 바울의 제자도 아니요, 교권의 제자도 아니며 교회 확장을 위한 경영자의 모습도 아니다..옥한음의 같은 책, pp.140-145.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전인적인 것으로서 인 격과 삶 전반에서 나타나는 것들이다. 초대 교회처럼 '작은 예수'가 되는 운동이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목회자가 참된 제자 도를 갖추게 되면 교회의 평신도들을 성도로서 온전하게 세우고, 성도로서의 삶을 봉사하며 섬기는 삶을 살도록 하여 교회를 바 르게 세우며 세상을 바르게 세우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이끄는 참 지도력을 얻게 될 것이다.
4.요약과 정리 : 한국 교회의 미래적 전망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 교회의 성장률이 왜 급속히 둔화되고 있는가? 그 여러 원인 중에 기독교인의 사회적 윤리에 대한 책임 있는 의식의 결여를 상정하고 본 논문을 시작하였다. 신뢰성 있고 책임 있는 기독교인, 즉 평신도를 지도하고 교육하며 훈련해야 할 목회자는 평신도의 실천적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목회자가 평신도를 지도할 훌륭한 지도력 은 어떤 조직적 경영 능력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것이 목회자 자신의 모범적 실천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목표를 두고 본 논문은 2장에서 한국 교회가 교회 성장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재고해야 할 점들을 살펴보면서 이제는 질 적인 교회 성장에 관심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하여서는 한국 교회의 교회 교육이 새로워 져야 하고, 평신도의 위상이 시급히 재고 되어야 함을 말하였다. 무엇보다도 평신도에 대한 목회자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따라서 제3장에서는 새롭 게 세워져야 할 평신도의 위상을 검토하고 새롭게 세워지는 평신도들을 훈련해야 할 목회자의 지도력은 평신도에게 예수의 제자 도를 모범적으로 보여 줄 때 가능하다고 보고 목회자가 스스로 훈련되어 평신도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제자 상이 무엇인 지를 살펴보았다.
평신도를 향한 목회자의 지도력은 어떤 조직이나 외적으로 부여된 권위 보다 오히려 내적으로 샘솟아 나오는 인격적 능력이며 모범적인 윤리적 실천을 통해 보여주는 감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 자신은 살아 있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구체적으로 살았 다..요한복음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라고 증언한다.(요1:14)
때문에 그는 모든 믿는 사람들의 스승이 되고 모범이 될 수 있었다.감리교 교리적 선언문 2번 ; "우리는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사 우리의 스승이 되시 고 모범이 되시며 대속자가 되시고 구세주가 되 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따라서 목회자의 참된 지도력은 목회자가 예수의 참 제자가 되어 모범이 되어 살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될 것이다.
오늘 한국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목회자의 모범적인 그리스도 상이 필요한 때를 맞이하고 있다. 물질적 풍요 뒤에 오는 가치 몰락, 물화(物化)된 인격적 왜곡, 문화적 타락 앞에 교회가 이 세상의 희망으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의 윤리적 삶을 모범적으로 필요하고 있다. 즉 평신도들의 책임 있고, 윤리적이며, 모범적인 삶이 이루어질 때 교회는 양적, 질적 성장을 거듭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평신도의 질적 성숙은 절대적으로 목회자의 모범적 실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신뢰받는 지도력을 필요로 하 고 있다. 목회자가 철저하게 예수의 제자가 될 때 평신도도 철저한 제자가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한국 교회의 사회적 위상과 기대가 상승되어 갈 것이다. 그러한 에서 교회의 전망은 밝으며 한국 교회의 할 일은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교 회의 앞날에 하나님의 은총이 있기를 빈다.
참고도서
▣단행본▣
1.옥한음, 「평신도를 깨운다」(두란노서원, 서울, 1987)
2.박근원, 「오늘의 목사론」(대한기독교서회, 서울, 1978)
3.Hendrik Kraemer, 「평신도 신학과 교회갱신」, 유동식 역(평신도신학 연구소, 서울, 1994)
4.Lawrence O. Richards & Gilbert R. Martin, 「평신도 사역」, 여상기 역(평신도신학연구소, 서울, 1994)
5.Thomas C. Oden, 「목회신학」, 이기춘 역(한국신학연구소, 서울, 1986)
▣논 문▣
1.월간 정경문화, 경향신문사, 1984년 2월호.
2.신앙세계 , 신앙세계사, 1993년 10월호,
3.은준관, "변화된 상황에서 교회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기독교사상, 대한기독교서회,1993년 11월호,
4.김영한,"한국교회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신앙세계, 1993년 10월호
85.김태원, "교회교육의 개혁이 필요하다", 신앙세계, 1994년 6월호
6.박익수, "성서연구를 위한 새로운 교재에 대한 연구", 신학과 세계, , 감 리교신학대학교, 1990년 가을호
▣기타자료▣
1.성서
2.기독교 대한 감리회 교리적 선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