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한국교회 윤리와 도덕 수준, 부정부패 용인되는 사회

시골농군 2009. 10. 12. 11:31

한국교회 윤리와 도덕 수준, 부정부패 용인되는 사회

한국교회의 윤리와 도덕적인 수준을 사회에 적용한다면 한국 사회는 부정과 부패가 용인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김종환 목사
한국교회의 사회적 책임감은 어느 수준에 있을까. 다수의 민중들이 정치, 경제적으로 심각한 고난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 사회는 한국교회에 대해 어떤 인상과 인식을 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한국교회는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모순과 갈등의 자리에서 비껴나 있으며, 도리어 그 모순을 심화시키는 구조가 굳어지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일반 시민사회가 상식적으로 요구하는 윤리와 도덕적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교회에서 현재 통용되는 윤리와 도덕적인 수준을 사회에 적용한다면 한국사회는 부정과 부패가 용인되는 사회가 될 것임이 자명하다.

1. 비판과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한국교회

이런 평가의 중심에는 한국교회가 기득권 유지를 통해 특권 체제로 성장해왔고, 본래의 예수 운동을 통한 사회적 변혁보다는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렇게 보자면 현재 한국교회는 변혁의 주체가 아니라, 비판과 개혁의 대상이자 저항을 받아야 될 존재로 전락한 셈이다.

이미 이런 우려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실에 바탕을 두고 한국교회의 새로운 역할을 어떻게 정립해나갈 것인지를 모색해야 할 시기라고 본다. 아니 어쩌면 그 시기도 놓쳤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어떻게 한국교회 안에서 새로운 대안 교회 운동과 제2의 종교개혁을 일으켜야 할지 기도하고 준비해야 할 단계라는 마음을 가져본다.

우선 제2의 종교개혁을 말하기 전에 왜 한국교회가 이처럼 망가지고, 비판과 저항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를 따져보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1970년대 자본주의 성장 바람에 힘입어 한국교회 내에서도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급속한 성장이 일어났다. 그런데 한국교회 성장의 이면을 헤집고 들어가다 보면 기독교의 세속적인 권력화가 자리하고 있다. 정치권력과 기득권을 추앙하는 한국교회는 철저하게 망가졌다. 이보다 더 망가질 수는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한국교회가 총체적으로 부패하는 참극이 발생했다. 일부 의식 있는 교회가 있기는 하나 그 또한 거대한 권력적 자본주의의 수레바퀴에 매몰되어 있는 실정이다.

2. 선지자의 소명을 포기한 한국교회

그와 더불어 한국교회는 정치적인 노선에 있어서도 권력 지향적이며 기득권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한국 사회는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다.

2009년 5월 23일 전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의 몸을 스스로 던져 죽음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소위 기독교 보수층을 등에 업고 당선된 이명박 정권에 의해서 정치 보복을 당했다는 언론 기사들과 함께, 장례가 끝나고서 한국의 지식층과 시민사회, 종교계 할 것 없이 이명박 정권의 오만함과 반민주적인 권력의 횡포에 대한 시국 선언이 이어졌다.

이처럼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는 시점에 2009년 6월 9일 소위 한국교회 원로라고 자칭하는 한기총 소속 원로 목사들의 시국 선언은 한국교회가 이제는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르지 않고 타락했다는 증거를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들은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눈 가리고 정권을 옹호하며 찬양하는 발언들을 내뱉었다.

이런 발언들은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보수 기독교 세력의 정치적 기득권화는 뿌리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역사를 살펴보면 기독교를 그 뿌리에 두고 있는 이승만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60년 3월 15일 국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와 제5대 부통령 선거로 이승만 후보를 제4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으나 부정선거로 밝혀져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1960년 3.15 부정선거가 있기 전에 기독교의 움직임을 보면 소위 보수 기독교가 3.15 부정선거에 얼마나 깊이 관여하고 있었는지를 볼 수 있다.

이승만 정권 시절 기독교는 철저히 권력과 야합해서 가장 큰 정치적인 혜택을 받았다. 또한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은 종교적인 색채와 반공 이데올로기를 교묘히 이용하고 내세워서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1960년 3.15 선거는 부정선거로서 4.19 혁명의 도화선 역할을 했으며 기독교는 부패한 집단으로 인식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기독교는 자기반성과 성찰을 거치지 못하고 역사의 전면에 나서서 권력의 주구 노릇을 해오고 있으며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처럼 철저히 한국교회가 권력을 옹호하고, 권력과 유착 관계 아래에서 교회를 성장시키면서, 기독교의 근본정신을 상실하게 되었다.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와 억압받는 자의 보호자이자 그들을 섬겨야 할 교회가 이제는 더 이상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는 역할을 중단했다는 선포와 동일한 사건이라고 본다.

3. 경영 마인드와 결과주의에 사로잡힌 한국교회

또한 목회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경영 마인드는 거대한 교회CEO를 만들어냈다. 보편적인 일반 대중들이 교회를 가리켜서 기업이라고 칭한다. 철저히 기업 경영 마인드가 교회에 이식되었고 교회를 기업 경영하듯이 경영 목회를 하는 이상한 현상도 나타났다. 교회 회장이 등장했고, 교회 사장도 등장했다. 교회는 불투명의 온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각 교단이 가지고 있는 법을 살펴보면 독소 조항 투성이며, 교권의 무소불위한 권력을 제어할 장치가 부재하다. 그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의 완결판이 한국 보수 교회의 배경으로 대통령이 된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결론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또한 한국교회는 이미 결과주의의 포로가 되어 있다. 동기가 아무리 선하다고 해도 결과가 잘못되면 그것은 따져보지도 않고 잘못된 것이며 실패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동기가 아무리 악하고 추악해도 결과가 성공적이면 그 동기나 진행 과정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기독교의 천박성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이런 사건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문제가 단적인 예이다. 한국 보수 기독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단순히 자살한 대통령 사건으로 몰아갔다. 그러면서 화석화되고 제도화된 교리의 잣대를 내밀어서는 자살은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라고 덧씌워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폄하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해댔다. 전직 대통령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는지,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사악한 정치 보복의 죄악적 성격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결과론적인 천박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고문 김진홍 목사(두레교회)가 자신의 묵상 칼럼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김 목사는 "자살하는 사람들을 말려야 할 자리에 있던 분이 자살로 삶을 끝낸다는 것은 심히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소위 김진홍 뉴라이트 상임대표 같은 이런 자질도 안 되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주장을 볼 때면, 기독교가 이미 기득권화했다는 증거이며 결과주의의 포로가 되었다는 반증이다.

목회 현장에서 보여지는 시각으로는 한국 사회의 보수 성향을 한국교회가 지탱해주고 있고, 한국교회의 보수 성향은 한국 사회의 보수성을 앞지르고 있다는 판단이다. 그 근거로 들 수 있는 것이 2008년 4월부터 시작된 수입 쇠고기 광우병 파동에서 보여주었던 한국교회의 모습이다.

2008년 4월부터 '쇠고기 광우병 파동'으로 시작된 촛불 정국에서도 한국교회는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소위 기독교 보수를 내세우고 있는 보수 진영의 구국 기도회라는 명목으로 벌어진 기도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필연적인 것이며 일부 좌파 세력에 의해 국민들이 현혹되어 국가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주장과 함께 기득권을 옹호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쏟아냈다.

4. 브레이크 없는 한국교회에 브레이크로서의 기독 활동가

이런 기독교 근본 보수 진영의 행동은 한국 기독교가 극단적이고 편협한 반공주의와 군사독재 시절부터 정권에 야합하고 얻어낸 권력과 기득권을 그대로 답습, 학습하고 있는 전형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는 한국교회의 시민사회에 대한 비틀어진 인식과 자화상에서 나타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해서 기독교 내의 자기 성찰을 유도하고 자기비판을 가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이런 장치를 찾아 볼 수 없다. 자기 정화 능력을 상실한 종교는 더 이상 종교로서의 기능을 포기한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국교회를 고치고, 바른 길로 가도록 유도해야 하는 사명을 발견한다. 한국교회의 변화를 외치는 기독교 내 진보 진영과 개혁 진영의 기독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기독 활동가에 대한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인식 이해는 아직도 미미하고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교회의 시각은 기독 활동가는 데모를 주동하고 교회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분열을 조장하고 화합에 누를 끼치거나 교회의 부패된 부분을 까발려서 교회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한편 한국교회 속에서 바른 목소리를 내는 것 같은데 함께하기는 곤란하다고 여기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대에 한국교회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줄 기독 활동가들의 활약상을 기대한다.
김종환 / 목사, 통일시대평화누리 사무국장

출처 : http://www.sermon66.com/news_view.html?s=index&no=153343&hd=1&s_id=&ss_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