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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시골농군 2009. 9. 24. 13:44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THE KINGD0M OF GOD AND CHURCH)

교회 역사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와의 관계를 정의하는데 있어서 크게 두 가지의 견해를 가진다. 첫째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동일시(同一視)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하나님의 나라와 교회가 동일시 될 수 없다는 견해이다.

Augstinus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동일시하였다. Augstinus의 견해는 캐토릭의 교의(敎義)를 통해서 계승되었다. 또한 Schnackenburg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역으로 생각했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와의 관계를 살피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정의 하느냐에 따라서 문제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본 글에서는 첫째로는 하나님의 나라의 정의를 내리고 구속경륜을 개관하고,둘째로는 교회의 정의를 살펴본 후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와의 관계를 살피고자 한다.

1.하나님의 나라의 救贖經綸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다. 창세기의 에덴은 이 지상에 건설된 하나님의 나라였다. 그 에덴은 다스리는 하나님이 계시고,다스림을 받는 피조물이 있고,다스리는 법이 있기 때문에 분명한 하나님의 나라요,하나님께서 건설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였다. 그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는,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연을 다스리고,인간과 인간사이에는 여자는 남자를 돕고,남자는 여자를 다스리는 일종의 권위를 두셨다(창2:18-20,2:23 고전11:8-10) (고전14:33-35). 그리고 자연은 인간의 식물이 되도록 하였다(창1:28,29). 이런 에덴은 행복한 나라였다. 다스리는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신 분이셨고 사람은 영적 생명이 충일하였다.

이 나라는 참과 선이 지고(至高)의 수준을 갖추고 있었으며,그 아름다움이란 하나님께서 만족하실 만큼이나 훌륭한 것이었다(창1:4,10,12,18,21,25,31). 그런데 이 평화롭고 좋은 나라에 침입자가 들어왔다. 그는 사탄이라고 불려지는 존재였다. 그는 하와를 유혹하여 하나님께 범죄하도록 하였다. 하와의 범죄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에 대한 파기였다.

이 은혜로운 약속에 대한 파기는 인간을 깊은 수렁에 빠트리고 말았다. 창조의 질서가 파괴되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만을 섬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조물주이신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섬기는 결과를 가져왔다(롬1:25). 또한 인간은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창3:24). 이러한 결과로 인하여 인간에게는 소망이 없는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범죄하여 그 죄책으로 떨고 있는 인간을 찾아오셔서 약속을 하나 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

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그리고 인간 스스로의 이성(理性)으로 만든 자작(自作)의 옷을 벗기시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만든 옷을 입혀 주셨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반역의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저주를 선고하셨다. 그런데 이 저주속에는 하나님 나라의 승리의 약속이 들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주도권을 가지시고 그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하여 사탄과의 원수관계에서 구원사역을 펼쳐 나가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이제 사탄의 세력은 여인의 후손에 의해 멸망 당하게 될 것이다.

인류가 타락한 이후부터 이 땅에는 두 개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 에덴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스스로의 사회를 만들어 죄악의 문화를 꽃피우고 살아가는 세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을 찾으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께서는 침해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기 위하여 크신 경륜에 따라 타락한 인간들로 왕국을 건설하고 확장시켜 나가셨다.

그러므로 타락한 이후의 인류의 두 계통을 통하여 세속사라는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 구속사라는 특징을 가지고 세차게 뿜어 울리는 분수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진행을 볼 수 있으며,이 두개의 역사가 서로 얽혀서 진행되지만 구속사라는 강한 조류가 되어목적을 향하여 전진한다. 이렇게 아담 이후 지상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 건설하여 나가시는 거룩한 목적을 향하여 전진하여 가는데 이 회복의 약속은 이 역사 위에 점점 더 선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하여 시대마다 사람들을 불러 구원하시는 방편을 쓰시는 까닭에 하나님의 구원 행위는 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나라건설의 동맹자 쓰신다.

아벨이 가인에 의하여 죽었을 때는 이 땅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자취를 감추는듯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셋을 세우시고 당신의 나라를 행진케 하셨다. 온 세상이 죄악으로 멸망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한 노아의 가정을 남겨 놓으시고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이끌어 나가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아브라함에게 와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후손을 통하여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그 나라를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려 나가시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여 나가셨다. 그후 이스라엘의 통일왕국과 분열왕국 그리고 범죄로 인해 포로로 잡혀 갔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자취를 감추는듯 하였지만,그 포로생활 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거역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을 남겨 놓으셨다. 이들은 소위 남은자들였다. 하나님의 참 백성은 바로 이 믿음을 가진 남은 무리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세례요한이 나타나기까지400년 동안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지 않고 침묵하셨다. 이 침묵기간의 계시사적 의미는 더 이상 구약 성경을 기록하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신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하나님의 크신 경륜 혹은 좁게 말하여 획기적인 구속사적 사건을 맞이하였을때, 그 사실을 바로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미리 예시하신 구약계시는 지금까지의 것으로 흡족하였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계시를 가지고 계시의 내용에 충실하여 누구를 가르치며,무엇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잘 터득하여 그를 대망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서 바른 자태를 갖추고 있다가 자기 시대에 그 계시된 인물이 임하였을 때에는 바로 그를 알아보고 붙잡고 나아가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대부분이 구약계시를 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세례요한이 선지자들의 예언에 따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준비하는 자로 나타났다(막1:2,3 마11:10,11,13,3:2).

세례요한의 뒤를 이어 요한이 증거한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 예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와 메시야적 구원을 선포했을 때,많은 사람들이 그 메시야적인 구원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므로 참 이스라엘,이스라엘 전체의 대표자들이 되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적용된 적이 없지만,술어 자체는 아닐지라도 그러한 개념은 존재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은 메시야적인 구원을 받은 자들이며.하나님 나라의 백성,참 이스라엘이 되었다.

이상에서 보면,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이 장소에 한정된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는 왕직(Kingship),왕적통치(Kingiy dominion),와 왕국(Kingdom)을 함께 의미함을 알 수 있다. 구속사에서 볼때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힘있게 전진하고 있으며 확장되고 있다. 참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역동적(力動的)인 나라이다.

2. 敎會의 定義

교회 역사상 교회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게 정의되어 왔다. 교회 역사상에 나타난 논쟁을 피하기로하고 먼저 사도 바울의 교회에 대한 용례를 보면,사도바울은 ?일정한 지역에 있는 신자들의 공동체?라고 하였다(고전1:2,고후1:1,살전1:1). 고린도 전서 11:18절의 “교회에서”라는 말은 ?신자들의 모임?을 가르킨다. 또한 에베소서 1:22절,골로새서 1:18절에서는 보편의 교회를 이야기 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지역교회와 보편의 교회의 양면성을 다 같이 보아야 한다. 교회는 신자들의 모임(공동체)임과 동시에 주님을 머리로 하는 우주적 보편의 공동체이다. 따라서 교회를 교회당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에서는 전혀 생소한 개념이다.

교회란? 하나님의 백성들의 거룩한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이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게 된 모든 백성들을 말한다. 여기에는 제도주의적 계급이 없다. 또한 ?거룩한 공동체?란 ?거룩한 사귐?을 말한다. 특히 본질의 면에서 볼때 그것은 ?생명체의 유기적 교제?를 의미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중생함과 동시에 보편의 교회(혹 본질의 교회)에 참여케 되며,그가 그리스도의 몸(교회)가운데 있다는 본질의 사실을 지역교회(유형의 교회)에 가담하여 나타나게 된다.

여기에서 교회의 본질은 기관이 아닌 ?백성?이며,제도가 아닌 ?공동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모임의 장소나 건물도 그다지 중요한 것이 못된다. 초기 기독교는 대부분의 모임이 가정(몬2,골4:15,고전16:19)이나 노천이나 회당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공동체라고 할때는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성령의 공동체이다. 성령의 통일케하심과 다양성에 의하여 유기적으로 그리스도의 전체의 몸을 세워 나아가는 사귐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도주의나 조직주의가 아닌 카리스마적 공동체이다. 또한 교회는 성령의 다양한 은사가 통일성 가운데 나타나는 백성들의 생명적 움직임이 있는 공동체이다(엡4:1-12).

?교회란 하나님의 백성들의 거룩한 공동체이다.?

3.하나님의 나라와 敎會와의 關係

지금까지 하나님의 나라의 구속경륜을 개관하였고 이어서 사도바울의 교회에 대한 이해를 빌어서 교회의 정의를 내렸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와의 관계를 살펴보려고 한다.

많은 학자들은 예수께서 교회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로아지(Alfred Loisy)에 의하면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예언하였으나 그것은 후에 생긴 교회였다”고 한다. 그리고 모두(冒頭)에서 말한대로 Augdtinus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동일시(同一視)하였다. 과연 Augstinus의 견해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는 동일시 될 수 있는가? 동일시 될 수 없는가? 없다면 과연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제부터 이런 문제를 살펴 보기로 한다. 이와같은 논의에 대하여 마태 복음 16:13-20절에서 하나님의나라와 교회와의 관계를 제공하여 준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하셨다. 세상의 왕노릇하고 있는 사탄을 결박하고,사탄의 종노릇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는 일을 하셨다(마12:28,골1:13). 예수께서하나님의 나라의 사역을 하시던 가운데 -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기 앞서 - 마태 복음 16장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함께 그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세워질 교회는 현재 교회가 세워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즉,미래에 세워지겠다고 하셨다. 마태 복음 16:18절의 “내가(교회를)세우리라” 그리고 19절의 “내가(천국열쇠 를) 주리라”는 말씀은 분명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는 일을 미래사로 말씀하셨던 것이다. 교회는 지금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은 후 바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장차 세워질 것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의 영광의 자리에 앉아서 영광을 받으실 때 교회가 세워질 것이다.?는 말이다.

교회의 정의에서 살펴보았듯이 교회란 ?하나님의 백성들의 거룩한 공동체?라고 하였다. 이러한 거룩한 공동체는 사도 행전의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역동적(力動的)인 나라이듯이,오순절 성령강림이 임한 후에 사도들이 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 사도들의 복음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성령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왔다.

사도들의 복음 증거로 인하여 성령의 다스리심이 확장되어 갔다. 이러한 사실속에서 한가지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말씀하시다가 그 천국의 일의 계속성을 지시하신 것이 교회의 일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처럼역동적이라면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가 결코 동일시(同一視)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강력한 통치 내지 왕적인 지배임,파생적으로는 그 통치가 체험되는 영역이다. 성서의 관용어로서 하나님의 나라는 그 백성들과 동일시 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에 들어가며,하나님의 통치 밑에서 살며 하나님의 통치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공동체이며 하나님 나라도 그들에게 속한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이며,교회는 사람들이 속해 있는 한 사회이다. G.E.Ladd는 그의 저서 A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와의 관계는,

“첫째로,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신약은 신자들과 하나님의 나라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최초의 선교사들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했다(행8:12,19:8,20:25,28:23,31). 이 구절들에서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대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을?나라(βασιλεια)?로 지칭한 유일한 구절들은 계시록 1:6,5:10절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그렇게 지칭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이기 때문이 아니라,그들이 그리스도의 통치에 동참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계5:10). 이들 구절에서 ?나라?는 ?왕들?과 동의어이지 하나님이 통치를 받는 사람들과 동의어는 아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제자들을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한 구절들이 없다고하며,하나님의 통치의 영역인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는 모두 사람들이 들어가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두 개념 사이에는 유사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의 현재적 영역으로서 그의 나라는 불가시적(不可視的)이며,이 세상의 현상이 아닌 반면,교회는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조직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지 그 자체는 아니다고 하였다.

둘째로,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창조한다.

예수의 사역 속에서 현재하는 하나님의 강력한 통치는 사람들에게 응답할 것을 도전함으로써 그들을 새로운 교제 속으로 이끌어 들인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은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구약의 메시야적 소망이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전체가 그러한 제시를 거절했을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이제는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며,그 나라의 자손들이며,참 이스라엘이요,맹아적(萌芽的)인 교회가 되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에 들어온 하나님 나라의 결과이다.

세째로,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증거한다.

네째로,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도구이다.

다섯째로,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관리자이다”고 하였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위에 드러내는 하나님의 수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는 정도에 따라 이 땅위에 임한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원칙들을 모르고서는 자신의 본질이나 사명을 파악하기 어렵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교회의 사명과 관련 시키지 않고 교회의 전도적 역할이나

또는 예언적 역할을 말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위배되는 것이며,또 교회의 소명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서 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가견적(可見的)이고 지상적

인 표현인 그리스도의 공동체(교회)의 참 모습에서 분리된 복음전도나 사회활동

은 그 어느것도 온전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 하워드 스나이더 -

종말론적 공동체인 교회은 갑자기 하나님의 구속행위의 수정,보완작업으로 탄생된 것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큰 계획가운데서 예비 되었던 일이다. 교회의 자기파악은 하나님 나라와 관련될 때 가능하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미치는 하나님의 통치는 뿌리 깊은 감정들을 회복시키시고 거룩한 하나의 교회의 형성이라는 오랫만에 나타난 비밀이었다. 교회는 그 자체의 존재양식으로도 하나님의 구속행위를 높이 들러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