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와 교회
평신도와 교회
1. 서론
신앙의 '힘'은 본성상 인간영혼의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내연성에 기인한
다. 그러기에 신앙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 힘은 밖으로 솟구쳐 나와 어더움
을 밀어내는 '빛'으로'운동'으로 작동하게 된다. 따라서 평신도신학은 고도
의 신학적 이론이나 교회의 법적 위계질서 안에서 그 존재가 자리잡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결단하며 살아가는 '현실성'에 의해 논의된다.
평신도신학은 그러기에 이론신학의 범주에 속한다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운동적'인 특성을 강하게 함축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평신도신학은
'집합적 개념'으로서 평신도 '운동의 신학'이라 해야 한다.이 평신도신학은
그렇기 때문에 [경건운동]을 일으키기도 하고 [교회개혁]운동으로 확산되어
가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정의와 평화] 운동으로 실천되어 가는가
하면, 창조질서의 회복을 위한 [생명운동]으로 확산되어 가기도 한다.
특히 평신도신학이 생명운동으로 전개되는 경우 여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왜냐하면 여성은 생명의 원천이요 생명이 피어나는 자리로서,
여성은 원래의 카리스마와 본성 자체로서 가장 아름다운 공헌을 인류에게
한다. 이처럼 '평신도'는 이 우주의 모든 생명에 참여하며 봉헌하는 '보편
적 사제'로서 나서게 된다.
2. '평신도'의 말 뜻
성서 여러 곳에 나오는 희랍어 [라오스]는 '하나님의 백성'을 이르는 말이
다. 보다 엄밀한 의미로는 '보통의 신도만'을 가리키는 말이다. 성서적 전
통에 따르면 이 백성은 (1) 하나님으로부터 호출되어 (2) 하나님의 뚜렷한
목적과 사명에 의해 서로 결합된 (3) 거룩한 자들의 모임을 의미한다(출
19:6,신 7:6,14:2,26:19) 따라서 교회는 곧 이렇게 초대되어 불리움을 받은
몸, 즉 '하나님의 백성'그 자체이다. 이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에클레시아'(모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오스'의 참 뜻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말이 주후
300년경 부터 그리스 문화와 사상 가운데서 점점 많이 쓰러지게 되었다.
즉, '아무것도 갖지 않은자','전문분야를 갖지 않은자'로 말이다. 오늘의
평신도를 가리키는 '레이멘'(Layman)은 불행하게도 '전문분야에서 아무런
역할도 공헌도 하지 못하는 보통 인간'이란 뜻을 담고 있다. 이렇게 되어
'하나님의 백성'과 '아무것도 갖지 않은 인간'과 뒤바뀌게 되고, 평신도는
성서의 전승과는 전혀 이질적인 부정적 의미의 '속된 인간'이란 통념이 형
성되었다.
1976년에 발표한 콩가르(Congar) 신부의 '평신도'란 글에서 지적하기를,그
리스도교의 전통적 문헌에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이라는 멸시의 뜻으로서
가 아닌 교회 안에서의 크레로스(성직자)와 다른 하나님의 백성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신약의 전통에는 보통의 신도와 구별하는 발상은 아
예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소가 그리스어로 부터 중세의 공용어가 된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라오스'는 '프레브스'(Plebs) 로 옮겨져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가장 중요한
의미가 빠져버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루터가 1520년에 '교회의 바벨론 포로
'에서 만인제사론을,그리고 '독일 크리스챤 귀족들에게 보낸 편지'와 '그리
스도의 자유'등 곳곳에서 평신도의 중요성을 되찾는 근원적인 길을 거칠게
열어 놓았다.
루터에 의하면 고린도전서 4장1절에서 '사제'는 그리스도의 '일꾼
'(Minister)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Steward) 관리자라 풀이하고 있
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라오스'의 본래의 뜻을 되찾기 시작한 것
은 19세기 이후,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였다. 이 공의회에서는 평신도
를 정면에 내세우지 않는 한 교회의 개혁과 재생은 어렵다고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그러히야 [교회헌장]에서는 평신도를 성직제도와 주교의 장 앞에 설
정해 놓을 정도였다.
이어서 개신교의 계몽적 평신도신학자 크레마(hENDRIK kRAEMAR0가 1958년
에 이르러 콩가르신부가 1년 전에 출판한 역저 [교회안에 있는 평신도'를
개신교의 안목으로 요약한 듯한 '평신도 신학'을 내놓았다. 크레마는 이 책
에서 오늘의 세계교회에서 일고 있는 '평신도 르네상스'운동의 이유를 다음
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1) 교회의 본성의 재발견을 위한 교회사적 비판 논의
(2) 루터의 만인제사론의 재음미.
(3) 전통적인 세계선교 방법과 신학에 대한 심각한 반성
(4) 반성에서 요청된 에큐메니칼한 교회전체성의 회복운동
(5) 하나님의 경륜-급변하는 세계속에 있는 평신도를 향한 하나님의 '총동
원령'.
(6) 이상의 모든 요인들을 '시대의 징조'로 고찰하는 것 등이다.
3.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도신학]
교회안에서 '라오스'(평신도)와 '클레로스'(신의 몫인 사람) 의 구별은 3
세기 무렵의 클레멘트 이후부터이다. 3세기 중엽부터 로마의 동서분열로 인
한 붕괴가 만행 등으로 표현화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갖가지의 시대배경
속에서 유스티누스(150),터툴리안(197)의 '호교론' 또는 오게네스와 히폴리
투스의 '교의신학'의 기초 더욱이 카르타고의 주교 씨푸리아누스의 저술
(249) 등은 교부 시대를 열어 놓았다. 이렇게 하여 신앙 내용을 지성에 의
해 체계화하기 시작했다.
313년 콘스탄틴대제는 드디어 가톨릭교를 로마제국 공인 종교 삼는 칙령을
반포하였다.이대부터 원교회의 생기 넘치던 모습과 의미는 곧 변질되기 시
작했다.
사회과학의 용어를 빌어 말하면 내새적 본원적 의지에 의해 형성된 생활공
동체에서부터 이익을 전제로 한 기능화로 변한 형성공동체로 법제화되기에
이르렀다. 교회는 게르만의 지배이루호 게르만법과 관계속에서 지배정권과
교회 사이의 관게가 중심부까지 침투해 들어왔다.
법은 항상 지배 통치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위계질서를 강화하는 것이기 때
문에 일반 평신도의 존재와 의의는 더욱더 후퇴하여 '맨 밑바닥'에 놓이게
되었다. 이는 실제적 유기적 생명에서 부터 '관념적 인위적 의지'가 지배하
는 것과 같다.
4. '트리덴티니즘'(Tridentinism)
1545 '트리엔트 공의회'(Council of Trent,1545,12,13-1563,12,4)에서는
부분을 종합 안에서 포착하지 못하고 교회가 다시 타락하지 않도록 호교를
강화하며,법적 조직체로서의 성직계를 편협되게 강조하였다. 마치 가톨릭안
의 칼빈주의와 같은 준엄함 마져 느끼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단 하나의 가톨릭교회를 창설하였다. 그 교회는 종적 성직
계의 교회인데, 그 교회는 완전무결하며, 그 교회 밖에는 구원받을 수 없
다."
역사상 무산대중이라 불리우는 계층이 출현하고, 자본주의가 기세를 올리
고 있는 이런 새로운 현상을 파악할 능력이 없었다. 그리하여 '성직자 중심
의 교회는 더 이상 현대를 향하여 할말을 가지지 못한' 지경에 빠지게 되었
다. 이러한 현상은 루터를 염두에 두고, 쌍방이 막다른 길로 몰리고 있는
심리상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매사에 루터와 비교하며, 그의 옳
은 말까지도 의도적으로 귀를 막고 침묵하고 있었다.
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트리덴티즘'을 보완하고, 말씀에 다시 돌아가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존재, 전체,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관을 소생
시켜, '지금이라는 역사'에 봉사하도록 발전시킨 것이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062-1965)였다. 이는 트리엔트 공의회로부터 근 4세기기 지나간
후에야 겨우 교회의 삶의 양식을 변화시키게 되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 전체'로 보는 관점의 복귀는 곧 교회 성원으로서의
평신도 전통성인 '신도의 사제직'과 '에언자적''왕적 직분'을 전면에 내세
워 정면으로 이해하는 변화를 말한다.그러기에 일부 가톨릭의 보수주으가자
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평하여 '위험하다''지나친 변화다' '지나친 아
첨을 했다' '너무 과격하게 타협했다'고들 말하였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
가는 그리스도의 몸이 시체가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과격하게 변혁하
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바로 초대교회에서 분명히 중심 역할을 담당했던 평신
도의 영역이 무너져 거의 실지 회복마저 불가능하게 됨을 더욱 강하게 느끼
게 하였다. 이 실지 회복의 노력이야말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목적 중의
하나였다. 이 공의회의 [교회헌장](Lumen Gentium)에서는 지금까지 기득권
하고는 거리가 먼 '소외자'따라서 부르심을 받은 '보카치오'(Vocatio)가 없
는' 성직계에 '가리워진 사람'인 평신도를 전면에 불러 세웠다.
1867년 '털보트'라는 주교가 말한 대로,'평신도의 왕적 역할이라고?...그
저 사냥하고 옷감짜고, 기분전환을 하는 정도라면 평신도도 가하다. 그러나
그 외의 그 이상 권한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콩가르는 주장하기를 평신도의 위치는 교회법 가운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교회신학, 전체의 종합속에서 찾아야 한다. 평신도신학은 하나
님의 모든 계획 안에, 성령의 도우심과 역사의 갖자기 사정 안에서 전우주
일체의 전 우주와의 관계, 오직 그 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평신도신학
의 영역은 극히 방대하며, 그 내용 또한 복잡하기 때문에 신학의 일대 종합
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의 평신도는 인간의 조건안에 들어 오신 그리스도를 따라서 세상의 조
건으로 들어가는 사도직의 출발이다. 성령의 시대에는 성직자가 전개하는
선교와 설교를 '돕는자'로서의 평신도만으로는 부족하다. 한 걸음 더 나아
가 성직자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그 존재가 허락되지 않는 광대한 영역에
서 '교회로서' 들어가는 최전선에서 선다.그러기에 평신도 사도직은 성령에
의해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주신 새로운 것 안에 이미 들어 있다.
"성직자의 적극적인 주도하에 사도직에 참여하여 '협력'하는 것은 그러나
여전히 식모이다' "
칼 라너(Karl Rahner) 도 이를 '전혀 불충분하다'고 했다. 평신도에게는
성직에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도 않는 평신도가 아니면
달성할 수 없는 사도적 분야가 존재한다.
인간활동의 전.영역,세계 전 영역에 평신도는 '교회'로서 '사도'로서 참된
교회의 활동(Eoclesial Function) 을 담당한다. 이런 뜻에서도 초자연과 자
연을 분리하는 '어거스틴주의'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초자연'이란 말은
1567년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심각한 오해를 낳는 기원이 되기도 했다. 그
결과 교회는 이미 사회와 세계에 대해 '부재자'인 것처럼 되어 버렸다.
결국 '신도 사도직'에 있어서 자기의 교구는 전 세계, 전 우주, 지금의 현
대 전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나'의 잔치에서 '그 항아리를 가득 채
우라'라고 하신 그 말씀에 따라 평신도 사도직은 '성취의 실재'로서 '하나
님의 잔치'에 봉헌한다.
6. Laos (신도)와 Kleros(성직자)
평신도 신학운동을 전개해 감에 있어서 가장 미묘한 과제로 대두되는 문제
는 '평신도'와의 관계이다. 과연 평신도 신학운동은 반성직적 운동인 것인
가?
우선 대전제로서 '성직계만이 교회가 아니며 평신도만이 교회도 아니다'라
는 점을 명백히 해두고자한다. 성직자와 평신도는 서로 다른 존재양식이고,
각기 다른 임무를 가지고 동일한 목표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우선 교회내
에서 먼저 '에큐메니칼 언어'를 학습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학습과정에서
는 그동안 실지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게 보일 정도로 소외되어 있는 평신도
를 보다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불균형을 잡을 수도 있다.
이처럼 평신도를 강조하는 작업이 반대로 성직계의 존재의미나 소명을 평
가절하 하는 것이 되어서는 결코 아니될 것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일반적으로 평신도와 대칭되는 성직자는 원래 '제비뽑기의 심지'를 뜻했
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에 큰 일, 즉 토지분배나 인력동원,그리고 한 자리
가 비어 있는 12 사도를 충원(삼상 10:20,수 14:2,18:6 행 17:26)할때 제
비를 뽑았다. 특히 '크레로스'는 '제비뽑기'와 관련이 있는 '몫'을 의미하
기도 한다.
초대교회로 부터 3세기경 까지는 '클레로스'와 '라오스'전체 안에서 '라오
스'를 위해 임무와 기능을 가진, 그 몫이 독자적인 활동과 임무를 가진 하
나님의 백성이다. '라오스'와 함께 구약성서에 여러번 등장하아는 크레로스
는 훨씬 후대에서도 같은 뜻으로 Clek나 clergy로 남아 있다. '크레로스'는
오로지 교회내의 조직과 관련된 사람에 대해 한에서 쓰여지며, Clek의 경우
'사무원'등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양자를 소박하게 비교할때 존재 이유와 목적에 있어서는 평신도의
존엄 쪽이 성직계의 존엄보다 더 존엄하다. 그러나 존재 순서로 볼 때는 성
직계쪽이 '선행'한다. 선행하으로 더 능동적이다. 그래서 '크레로스'는 전
체의 일치와 전체의 선,가르침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이며, 그리스도를 좀
더 잘 보고 사랑하며 따르게 하기 위해 ? ? 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
다. 그 손가락은 결코 우상화 되거나 파벌화 되어서는 안된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옷입으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할 것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 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라오스와 크레로스는 이 세상의 현실속에서는 각
각 다르게 받은 성령의 '카리스마'에 따라 봉헌한다. 성령은 각기 다른 것
으로 하나되게 한다. 성령은 각기 다른 것 사이에서 자유와 행방의 역사를
이루어 간다.
7. 결론
개신교는 이미 16세기 초에 루터가 교황을 정점으로 한 성직계의 인위적인
세 개의 '지푸라기 벽'들을 허물어 놓아 평신도의 왕적 자유와 재생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지만, '말씀'의 압도적인 강조로 인한, 말씀의 담당자가 다
시 상위로 올라 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교회 대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하나
님의 백성은 '동결된 백성'이 되어 그리스도의 몸은 활력을 잃어 마비상태
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제2의 봄을 맞아 '바람'을
동반하고 있지만, 가톨릭의 역사가 피에르 피에로라는 "제2차 공의회 이후
도 교회는 여전히 낡은 것들을 잘라버리지 못하고 아직껏 콘스탄티누스 황
제의 정신상태를 움켜 잡고 있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베드로전서
2장 9절 이하에서 "여러분은 왕이요 제사들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란 말씀에
는 그리스도 자신과 사도만을 가리키고 있찌 오늘의 신부와 같은 사제직을
가리키는 말씀은 여기에는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을 아직까지도 '제2의 집단'(Sekundare Gemeinschaft)으로 취급하고
있다.
오늘의 기독교회는 세상을 향해 할 말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만인을 위해
말할 수 없게 되어, 이 세상에 부재자로 남아 있다.
자신에 대한 이러한 위기의식의 자각은 스스로에 대한 심각한 반성을 하게
한다. 이때에 '어떤 무엇이 그것에 의해서만 완수될 수 있는 내적원리'를
찾아내야 한다. 그 원리는 바로 성경의 원리와 초대교회의 성령의 활동으로
올바르게 되돌아가는 길 뿐이다.
평신도는 초기부터 성령을 통한 교회갱신의 집행자로 소명된 백성이다. 오
늘에 있어서 새로운 언어를 찾는 에큐메니칼 학습과 정은 평신도에 대한 새
로운 인식의 확산으로 가능해 질 것이다.'때의 징조'를 판독하는 교육과정
을 통해 전개되는 새로운 평신도 운동은 교회의 미래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게 될 것이다. 이제는 평신도로 남을 것을 결정하고 택한 일은 성서적으
로 소명된 것과 똑같이 '평신도 그 자체'도 메시아적 백성으로서, 보편적
사제로서 '커다란 소명'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아드님 안에서 아들들이'
(Filli in Filio).
평신도가 교회를 만든다. 평신도가 실제로 교회이다. 미래의 교회의 척도
는 이러한 평신도에 달려 있다. 그 '미래'는 '신적'인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