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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리 덜레스의 「교회의 모델」을 읽고

시골농군 2009. 9. 23. 13:17

교회론의 변천사

 

에버리 덜레스의 「교회의 모델」을 읽고

이 책은 로마 가톨릭의 관점에서 저술되었으면서도 교회론에 대한 각 교파들의 특징을 비교적 객관적이면서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저자 덜레스는 H. R. 니이버의 「그리스도와 문화」라는 책에서 단초를 빌어서 현대 유행하고 있는 교회론의 모델을 다섯가지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 특징과 장·단점을 지적하고 있다.

덜레스는 모델이라는 틀거리를 통해서 현대 교회론의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그가 말한 모델이란 개념은 “어떤 모델이 상당히 많은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입증이 되고, 나아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는 기이한 문제들을 푸는데 적합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될 경우, 그 모델은 패러다임의 자격을 얻게 된다”는 의미로써, Thomas S. Kuhn이 정의내린 “패러다임”이라는 용어의 의미와 거의 같은 뜻이다. 쿤에 의하면, 과학의 새 패러다임들은 이전의 패러다임들이 이루어낸 좋은 결과들은 희생시키지 않으면서도 그 옛 모델들로서는 풀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받아들여진 것들이다. 덜레스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옛 패러다임으로는 쉽게 풀리지 않았던 교회론의 문제들을 해결해 준다고 생각하면서 다섯가지의 교회론의 모델을 제시한다. 제도로서의 교회, 신비적 교제로서의 교회, 성례전으로서의 교회, 사신으로서의 교회, 종으로서의 교회. 그러나, 이 다섯가지의 교회모델은 그들 나름대로의 상대적인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제도로서의 교회론은 우선 로마 가톨릭이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모델이다. 이 교회론은 지난 몇 세기 동안에 나타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공식 문헌들 속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최근 몇 세기 동안 로마 가톨릭 사람들에게 강력한 공동체적 자기 의식을 심어주는데 봉사해 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제도적인 모델의 교회론은 성서와 초기의 교리 전통 속에서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또한 계층질서적 성격을 띠게 된 성직주의는 평신도를 수동적인 위치에로 격하시켜 평신도들이 가지는 사도적인 자격을 성직 제도의 사도적 자격에 대한 부속물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결정적으로 이 교회론은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대화와 에큐메니즘, 세계 종교에 대한 관심을 특징으로 하는 시대에 이 모델의 독점주의적인 경향은 받아들여질 수가 없다.

덜레스가 제시한 두 번째 모델은 ‘신비적 교제로서의 교회’이다. 이 유형의 교회론은 바울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묘사하고 있는 곳과 사도행전에서 발견되는 교제(koinonia)라는 성서적 개념속에 확고한 기초를 두고 있는 것으로 개신교 진영에서는 Emil Brunner의 인격주의적 특징으로 나타나는 교회 개념에서, 그리고 Paul Tillich가 언급한 “영적인 공동체(Spiritual Community)” 개념속에서 나타난다. 로마 가톨릭 진영에서는 바티칸Ⅱ에서 신비적 교제로서의 교회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바티칸Ⅱ에서는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 개념은 결코 기존의 어떤 사회 조직과도, 심지어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도 동일시될 수 없는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몸과 겹친다고 덜레스는 말한다. 신비적 교제로서의 교회론은 고대 보편교회의 전통 속에 확고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교제’라는 상호 인격적인 모델은 상당수의 신자들이 뼈져리게 경험하고 있는 인간적인 어려움에 해결책을 제공해 줌으로써 오늘날 커다란 호감을 얻고 있는데, 제도적인 교회의 단점인 비인격성이 신비적 교제로서의 교회모델에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델은 교회의 영적 차원과 가시적 차원 사이의 관계에 대한 모호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 교회론 속에 나타나는 친밀하고 상호 인격적인 관계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와 은총의 신비적 교제로서의 교회 사이의 갈등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교회를 사람들 사이의 친밀한 친교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 안에 근거를 두고 있는 신비적 교제로 보아야 할 것인가?의 긴장이 항상 존재한다.

덜레스가 주장하는 세 번째 모델은 “성례전으로서의 교회”이다. 성례전적 교회론은 앞의 두 모델들이 지니는 장점들을 지지해주며, 동시에 두 모델 중의 어느 하나에 의해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난 문제들을 해결해 준다고 덜레스는 말한다. 그러나, 이 모델은 성서와 초기 기독교 전통 속에서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근거밖에 얻지 못한다. 또한 극단으로 치우친 성례전주의(sacramentalism)은 자기 도취적인 심미주의(narcissistic aestheticism) 라는 태도를 초래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 교회론이 전제 삼고 있는 ‘성례전성’이라는 개념은 전문적이고 난해한 것이어서 쉽사리 대중화되지 못하며, 개신교 사상속에서는 거의 아무런 반응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레스는 이 모델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다.

덜레스가 주장하는 네 번째 모델은 “사신으로서의 교회” 개념이다. 이 모델은 개신교의 Karl Barth와 로마 가톨릭의 한스 큉(Hans Küng)에 의해서 지지되고 있다. 이 모델의 특색은 이 세상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는 교회와 종말론적인 실재로 여겨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날카롭게 구별한다는 점이다. 큉은 교회가 곧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며,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도 아니고 또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 위에 확장시키거나 실현하기 위해 일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교회가 대망하며 증인이 되고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이다. 교회는 다가오고 있으며 동시에 이미 현존하고 있는 하나님의 통치의 담지자나 전달자가 아니라 그것의 목소리이고 고지자이며 사신인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의 통치를 실현할 수 있으며, 교회는 오직 그 일을 위해 봉사하는 데 헌신한다.”

사신으로서의 교회 모델은 구약의 예언 전승과 바울 서신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훌륭한 기초를 확보하고 있으며, 매우 풍요로운 말씀의 신학을 낳았다. 그러나 이 교회론은 행동을 무시하는 처사를 낳아 이 세상속에서 보다 나은 인류 사회를 건설하려는 인간의 노력의 가능성들에 대해, 그리고 이러한 공동의 노력에 참여하는 기독교인들의 의무에 대해 지나치게 비관주의적이거나 정적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약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덜레스가 주장하는 다섯 번째 모델은 “종으로서의 교회” 개념이다. 이 교회론은 “세속적-대화적” 방법을 취하는데, 교회가 세상을 적합한 신학의 장으로 삼으며 또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에서 세속적이며, 또 교회가 단순히 기독교 전통(성서를 포함하여)을 현대 세계를 판단하는 표준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둘 사이의 경계선 상에서 움직인다는 점에서 대화적이다. 이 교회론이 자신의 타당성을 가장 강하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오늘날 교회가 처해 있는 새로운 상황에 있다. 교회가 지나칠 정도로 내부 지향적이 됨으로써 교회는 점차 자기 자신의 내적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점점 더 현대 문명으로부터 소외되었고, 그 결과 교회와 세상 사이의 의사 소통이 매우 곤란해지는 정도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상황속에서 타당한 모델이다. 그러나, 이 교회론의 약점은 직접적인 성서적 근거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봉사가 흔히 높이 평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서는 교회의 사명을 봉사로 보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또한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와 어떤 관계를 갖느냐의 문제가 있다. 로빈슨, 맥브라이언 등과 같은 사람들은,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미래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가는 대리자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며, 교회의 종으로서의 역할은 세상을 하나님 나라에로 변혁하는 일에 헌신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덜레스는 복음의 빛에서 이해된 하나님 나라는 결코 평화, 정의, 화해, 풍요와 같은 추상적인 가치들과 동일시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덜레스는 위의 다섯가지 유형의 교회 모델을 종말론의 문제, 교회의 본질 문제, 보편교회와 개교회들과의 문제, 계시의 문제에 적용하여 고찰한다.

교회 모델을 종말론과 결부시켜 생각해 볼 때, 제도적 교회 모델에서는 교회를 단순히 은총의 수단으로서만 여기기 때문에, 궁극적 완성의 때에 교회를 위한 실질적인 자리는 없다. 신비적 교제의 모델에서 교회와 종말과의 관계는, 이 땅의 삶 속에서 불완전하게 존재하는 교회가 저 세상의 삶에서는 완전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교회론에 의하면, 지상의 교회는 단순히 천상의 교회에 대한 약속이나 보증이 아니라, 천상 교회의 예시이다. 교부 시대 동안, 기독교 설교자와 신학자들은 교회를 지상에서는 불완전하게 존재하나 하늘의 축복 속에서는 완전하게 존재하는 성도들의 교제로 보았다. 천국은 미래에 존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 앞서 간 성도들 속에서 바로 현재에도 존재한다.성례전적 모델의 교회론에서 교회가 종말론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것은 교회가 종말론적인 왕국의 성례전이 되는 현존을 가시적인 것으로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상기시키고, 영생의 지복에 대한 인간들의 희망을 생생하게 유지시킨다. 성만찬에서 교회는 천상의 예루살렘에 대한 성례전적 표징 그 이상이 된다. 사신으로서의 교회 모델에서는 종말론을 사신의 역할을 본따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때가 당도했음을 전하며, 기독교 케리그마의 중심 주제가 되는 것은 예수 안에서 완성의 때가 도래하였다는 것과, 또 사람들은 종말론적인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회개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선포하는 일이다. 또한 궁극적인 완성이 가까이 이르렀다고 선포한다는 점에서 케리그마는 종말론적이다. 교회의 증언 행위는 최종적인 완성을 대비하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종말론적인 것이 된다. 종으로서의 교회 개념은 다른 모델들보다 종말론적인 성격이 약하다. 교회가 종말론적인 미래가 어떤 것이 되느냐에 상관없이, 이 세상을 보다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함으로써 인류 가족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봉사할 수 있지 않을까?에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덜레스는 교회와 종말론의 관계를 다섯가지 교회 모델에 적용하여 설명한후, “참 교회”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속에서 교회를 수식하고 있는 네 개의 형용사를 규범(criterion)으로 사용한다. 이 신조에서 교회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것으로 불리운다. 개신교 진영에서는 니케아-콘스탄니노플 신조의 네 개의 형용사와 더불어 말씀설교와 세례·성만찬을 교회의 본질적 표지(notae ecclesiae)로 보고 있어서, 로마 가톨릭 교회와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 덜레스는 이런 교회의 본질을 규정하는 규범을 앞에서 말한 다섯가지 모델에 적용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근원적인 대립은 제도적인 모델과 나머지 네 모델 사이에서 나타난다. 제도적 모델은 참된 교회를 직접적으로 기존의 특정 조직체와 동일시하는데, 이 조직체는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는 것으로 주장된다. 나머지 네 모델들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내적 논리를 따라 참 교회의 속성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또 예수를 주로 인정하는 공동체 내의 성령의 현존에 힘 입어서 어느 정도 역사 안에서 구체화되는 이상들로 묘사한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타협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공의회는 제도적인 관점에 공감해서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참 교회가 이 지구상에서는 가톨릭 교회 내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다른 모델들도 받아들이면서 가톨릭 교회 그 자체는 불완전한, 따라서 결함이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구현이라는 점을 공의회는 시인하였다.

덜레스는 교회의 모델들을 평가하면서 몇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그는 각 모델의 옹호자들이 자기가 선호하는 견해의 관점으로부터 논쟁하려고 하는 경향을 경계해야만 한다는 전제하에서 7가지의 공통기준을 제시한다. 첫째로 성서에 기초를 둘 것, 둘째로 기독교 전통에 기초를 둘 것, 셋째로 교인들에게 공동체적인 정체성과 사명감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 네번째로 기독교인들이 일반적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는 미덕이나 가치들을 촉진시킬 수 있을 것, 다섯번째로 현대인들의 종교적 체험과 일치할 것, 여섯번째로 신학적인 효율성을 가질 것, 즉 새로운 패러다임이 옛 모델들에 의존해서는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풀어주거나 또는 전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였던 교리들을 하나로 종합시켜 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교인들로 하여금 자기네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 예를 들어 다른 전통에 속한 기독교인들, 비기독교적 종교들에 속한 사람들, 그리고 헌신적인 세속적 휴머니스트들과 성공적으로 관계맺을 수 있게 해주는 효율성 등 7가지의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덜레스는 “제자들의 공동체”라는 자신의 교회론 모델을 제시한다. 덜레스가 제시한 모델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속에 나타난 개략적인 논평에 부분적으로 의거한 것으로, 이 개념은 교제 모델의 변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상으로 덜레스는 다섯가지 교회 모델을 표본으로 추출하여 현대 교회론에 적용하여 비교 및 장·단점을 비교적 정확히 지적하였다. 필자는 여기서 “종으로서의 교회”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 한국 교회의 상황은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지니지 못하고 현시대의 사회문제와 인간 개인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델은 덜레스의 주장처럼 성서적 근거가 약할 수 있다. 그 보안책으로 “사신으로서의 교회” 개념을 덧붙이면 어떨까? 교회는 내적으로 말씀에 의해서 언제나 말씀 사건(Ereignis)이 일어나며(사신으로서의 교회), 그 사건을 통한 복음의 능력을 사회에, 국가에 적용시킨다(종으로서의 교회)면,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상당히 해결되리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