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교회와 신조
개혁주의 교회와 신조
신앙고백 또는 신조는 성경에 근거한 신앙을 요약한 [신앙의 규칙](rule
of faith) [신앙의 상징](simbol of faith)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같은
신조의 권위와 유용성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 극단적인 입장을 취
하는 경우가 있다. 하나는 신조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신조무오설이요,
다른 하나는 신조의 가치를 부정하는 신조무용론이다. 그리이스 정교회와 로
마 천주교회가 전자에 속한다면, 소씨니안과 경건주의자들이 후자에 속한다.
신앙고백은 무오한가? 그리이스 정교회와 로마 천주교회는 신조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보는 대신 절대적으로 이해한다. 그리이스 정교회는 초대 교회의
7대 회의에서 결정한 바 있는 교리들은 무오한 것들이라고 주장한다. 즉 아
리우스 이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325년 니케아에서 열렸던 니케아 회의
이후 787년의 제2차 니케아 회의까지의 교회회의들에서 채택한 교리만은 무오
하다고 주장한다. 로마 천주교회 역시 교회회의에서 결정한 교리들은 절대적
인 권위를 가지며 무오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특히 니케아 교회회의
(Council of Nicea)에서 트렌트 종교회의(Council of Trent)에 이르는 시기에
작성된 신조들은 절대적으로 무오하다고 주장한다. 로마 천주교도들은 이와같
은 신조무오론에 근거하여 1854년에는 성모 마리아의 무죄 잉태설을, 1870년
에는 교황의 무오설을, 그리고 1950년에는 성모 마리아가 죄없이 태어나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여 승천하였다는 교리를 제정하면서 이와같은 것들은 무오
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무오한 것은 성경뿐이다. 신조는 성경과 동등하지 않고 오직 성경
에 예속될 뿐이다. 성경은 하나님에게서 나왔지만 신앙고백은 인간의 작품이
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조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즉 그것이 얼마나 성경
적인가에 따라서 신조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성경은 신적이고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나 신조는 상대적이며 단지 교회적인 권위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조 무오론을 펴는 자들과 같이 신조를 절대화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상징으르 절대화하는 것은 하나의 우상숭배가 될 수 있기 때
문이다.
경건주의와 신조무용론 = 신조무오설과 마찬가지로 교회에 해독을 주는 극
단적인 입장은 신조무용론이다. 그 대표적인 예를 17세기와 18세기 독일에서
일어난 경건주의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에 의하면 교리를 강조하게
되면 자유로운 성경해석만이 아니라 신학적인 진보에 장애가 된다고 한다. 또
한 교리적인 기초에서 성경을 해석하게 되면 성경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이 불
가능하므로 하나님과의 실존적인 체험을 배제케하여 결국 외식적인 신앙인을
양성케 한다. 그리고 신조에 대한 강조는 다른 신앙을 부정하는 독선으로 이
끌 수 있고, 고집으로 인한 분당이 교회 안에 일어날 수 있게 하여 성도들 간
에 적대적인 감정을 고무시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유로 경건주의자들은
교리적인 무관심주의 또는 교리에 대한 비관주의를 표방하였다. 그러나 경건
주의 운동 이후 교리를 무시하는 풍조가 독일에 번지면서 독일의 교회들이
자유주의화 되어갔다는 점은 우리들에게 하나의 경종이 된다. 이같은 신조무
용론에 동조하는 무리 중에는 삼위일체의 교리를 부정하는 소씨누스파
(Socinians), 말씀보다 성령의 사역만을 강조하는 퀘이커교도(Quakers), 그
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단일신론자들(Unitarians), 신앙에서 기적과 신비
를 부정하는 합리주의자 등이 있다.
개혁주의 교회에 있어서의 신조의 위치 =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은 위의 두
극단을 부정한다. 오히려 개혁주의자들은 신조는 상대적인 권위를 가지며, 다
른 신학활동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성경
과 교회 역사가 신조의 중요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선언하기를 {마
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증거한다(마 12:34). 이는 곧 사람이 믿
는 것을 고백한다(Credo ergo confiteor)는 말이다. 신앙의 상징으로서의 신
앙고백은 이미 신약교회가 생기기 전에 이미 존재하였다. 곧 주님께서 {너희
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
님의 아들}(마 16:15-18 참고)이라고 베드로는 신앙을 고백하였다. 도마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였다. 이
러한 고백을 기초로 하여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예수께서 그들의 주인이시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이들을 성도로 간주하였다. 그 단적인 예로 빌립은
이디오피아의 내시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을 할 때 세례를 베풀어
신자로 인정하였다. 이와같이 성경은 그리스도 또는 하나님에 대하여 [신앙의
규칙화] 또는 [신앙의 상징화]를 하였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는 세례의
형식(Baptismal formula)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교리화
하였다. 그러므로 성경 교훈의 교리화 작업은 성경에 기인하는 것이다.
신앙은 교리화 되어야 한다는 것은 역사의 증거이기도 하다. 교리가 무시되
는 곳에는 언제나 이단 사상이 일어난다. 기독교 교리가 체계화되지 않았던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자, 마르시온(Marcion), 그리고 몬타누스파
(Montanists)와 같은 이단들이 나타나 교회를 혼동케 하였다. 따라서 교부들
은 이단으로부터 성경적인 신앙을 구별하기 위하여 그들이 믿는 신앙을 교리
화하였다. 예를들면 이레니우스(Irenaeus)는 구약과 신약의 불연속성을 주장
하는 이단들에 대하여 신약과 구약을 강조하였고 이단과 성경적인 신앙을띵
구별하기 위하여 [신앙의 규칙]을 만들었다. 이와같은 과정을 통하여 340년
경에 나타난 신앙고백서가 바로 [사도신경]이다. 신조들은 이와같이 바른 신
앙과 그릇된 신앙을 구별하여 성도들의 신앙 교육, 곧 학습 교육과 세례 교육
에 이정표가 되어왔다.
따라서 개혁주의자들은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서는 곳에서 서
며, 성경이 침묵하는 곳에서 침묵한다}는 신학 원리 아래 교리화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만](Sola Scriptura)이 신학의 시초가 되지
만 교리적인 도움없이는 성경을 해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