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미래사회와 미래교회

시골농군 2009. 7. 3. 17:23

미래사회와 미래교회

제1장 서론

1.미래사회에 대한 관심

코니쉬는 미래에의 변화는 과거 산업혁명과 종교개혁을 열배를 합친 정도의 규모로, 한 세대 안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는 격동기 이고 변화의 속도와 양은 24시간에 한 가지씩 기술혁신이 일어날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을 바라보면서 낙관론자와 비판론자들은 각각 다른 경향을 보이고 있다. 낙과론자들은 미래에 유토피아가 열릴것이 라는 입장이고 비관론자들은 오히려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세상일것이라고 예측한다. 설문에 의한 조사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기의 생활이 미래에 나빠질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과학기술 뿐 아니라 경제와 정치적인 면에서도 큰 변동이 있을 것이며 우리는 이런 변동의 흐름에 휩싸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구는 이제 ‘지구촌’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정도로 작아지고 있고 그에 영향을 입어 문화나 생활방식에도 또한 많은 혼란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2.미래교회를 위한준비

교회는 미래 사회가 갖고있는 혼란과 공허함에 해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조직체 이다. 그래서 미래의 목회자들은 미래의 목회 구조에의 변화에도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그러나 한국교회는 아직도 성장 신드롬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단지 눈앞의 현상에만 연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의 교회 성장학자 칼 조지는 미래교회를 메타교회(meta church) 라고 정의 하고 있다. ‘meta'는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메타교회란 전환기의 교회(church in tansition) 돌아서는 교회(church in turning) 등을 뜻한다. 결국 차세대의 교회는 필연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메타교회의 목회자는 기본적으로 영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미래의 사회에 적응 할 수 있는 교회의 구조적 갱신을 알아야 한다. 메타교회는 변화를 모색하는 교회이고 영적기능을 토대로한 교회이면서 그 질을 유지하는 교회인 것이다. 메타교회는 관계와 원리를 중요시하는 교회이며 성령의 역사를 배우려하는 교회인 것이다. 미래의 목회는 평신

도의 사역이 극대화되며 한편 영성의 삶을 강조하는 목회의 형태가 될 것이다.그래서 미래목회를 위해서는 목회 패러다임의 변혁이 있

어야 할 것이며 이러한 관심은 미래사회에 적응력을 줄 것이며 사회에 교회가 책임지게 될 수 있게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미래 사회에 대한 불 확실성과 자포자기성은 미래에 대한 목회적 준비를 하면서 기대감과 경압감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미래가 불확실성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두려운 것 만은 아닐 것이다.

제2장 한국교회의 과거와 현재

1,한국교회의 성장요인

한국교회는 대형인 것이 많고, 또한 지속적으로 대형인 것을 지행시키는 경우가 많다. 한국교회는 약 900만명이상의 교인을 가지고 있고 서구 교회와 비교 할 때 상대적으로 커가고 있다.하지만 한국교회의 성장요인은 한국교회의 독특한 요인이 대부분이다.

1)목회의 대가지불

많은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한국교회의 성장요인으로 목회자들의 헌신적인 수고를 든다.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엄청난 대가를 목회를 위해 지불하고 있고 한국교회의 성장이라는 결과는 이들이 탈진된 상태에서 계속 뛰었던당연한 결과인 것이다.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인간중심의 교제에서 일중심의 관계를 더맺고 있었고 어쩌면 이런 연유로 더 많은 갈등을 안고 있었다.

2)교회의 구조적 성격

한국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구역조직과 심방이라는 목회 구조이

다. 구역조직은 세계교회에서 연구의 대상이 될 정도로 알려져 있었고 구역조직이라는 것은 교회조직을 지역화 하며 블러화하여 신입교우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그래서 교회를 하나로 묶는 공동체적인 ‘띠’역할을 하면서 한국교회성장의 중요한 방편이기도 하다.

3)교회성장이론의 확대

퓰러학파(Fuller scholl)의 교회 성장이론은 한국교회의 교회 성장에 가장 적절한 동기와 방법론을 제공하였다.이 교회성장이론을 한국교회는 한국의 토양에 직접 대입하여서 한국적 교회성장이론과 실제를 구축하였던 것이다. 와그너는 교회 성장의 중요한 원리가운데 하나를 동질단위라고 하였는데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동질성이라는 교회성장의 요인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런 요인이 한국교회가 급성장하는데 도움을 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4)사회정치적인 요인

한국의 근대사는 늘 불안과 갈등이 병행해 있었다. 이런 불안과 갈등은 국민으로 하여금 정치에 민감하게 하고 사회 변화에 쉽게 불안감을 조성하게 하였다.근대의 정치는 오히려 국민에게서 안정감을 빼앗아 가고 오히려 불안과 갈등을 자극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불안과 갈등이 종교적인 안정을 사람들로 하여금 추구하게 하였고 국민들이 정치,국가 보다 종교에 의존하게 하였다. 한국교회의 성장은 경제성과도 병행하며 또한 한국사회의 정치적 불안과도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5)좋은교회 좋은 선교사

초기 한국 교회에 파송되었던 사람들은 좋은 교회에서 좋은 선교사들을 파송한다고 보내졌던 사람들이었다. 각각의 교회에서 보내어진 선교사들은 선교지역을 구분하여 효과적인 선교정책을 수립하였고 의료전도나 교육전도 등을 통한 선교정책을 한국사회의 계몽에도 크게 기여하였다.특별히 이들을 파송하였던 교회는 미국북장로교회, 남장로교회, 미국연합장로교회, 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회,캐나다 장로교회, 성공회 구세군등 다 복음에 열정적이며 건전한 교회들 이었다.

6)한글성경의 전래

한국개신교의 공식전래 연대를 교회사가들은 알렌이 입국한 1884년으로 정하였다. 물론 이전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입국한 적이 많이 있었다. 1832년에 독일인 키츨라프의 배령도 입항이 개신교 선교사의 입국이며 그는 잠시 머무르면서 주기도문을 번역하기도 했었다. 1866년의 토마스목사의 대동강변에서의 참수형은 첫 개신교의 순교자가 되었고 이 밖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입국하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선교사들보다도 먼저 성경이 이 땅안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 성경이 한글로서 들어왔다는데또한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리하여 대중들 사이에서 먼저 복음이 퍼진 것이다.그래서인지 지금도 한국교회에는 말씀에 대한 열정이 많다. 또한 말씀 중심의 교회생활이 우리 몸에 익숙해져 있고 이런 교회생활이 교회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7)개신교 전래의 적절한 시기

한국땅에 적절한 시기에 개신교가 상륙했다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 한국은 특별히 왕국과 종교와 사회계급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어왔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조선시대에는 유교가.그러나 조선이 점점 몰락하던 조선말에 개신교가 전래 되면서 국민의 정서는 나라가 바뀌니까 종교도 바뀌면 좋다는 종교심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종교심리는 비교적 쉽게 개신교에 대해 문을 열게 되었고 급성장의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8)네비우스 방법과 지역분할

중국에서 사역하던 네비우스를 초청하여 열린 토의는 선교 정책을 제공 하였고 이 원칙이 한국교회의 성장에 기여한 것이다. 첫째 선교사의 순회를 통한 개인 전도, 둘째는 자립선교, 셋째는 자립정치, 넷째는 자립보급,다섯째는 체계적인 성경연구의 필요성 강조이며, 여섯째 성경의 교훈에 따를 엄격한 훈련과 치리이고, 일곱째는 다른교회나 기관과의 협조와 일치이며 알맞은 분할과 전도이다. 여덟째는 지역과 프로그램 분할 후에는 절대 간섭치 말것이며, 아홉째 경제나 그 밖의 문제는 피차 항상 협조한다. 네비우스의 이러한 원칙은 순회전도 그리고 자립정신 성경에 대한 연구와 권위를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삼자 즉, 자치, 자조, 자전의 정책을 한국교회가 수용한 것이고 이것이 한국교회 성장에 많은 요소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9)대형화 중심 지향의 심리

한국인의 대형화 심리와 중심지향 심리는 한국교회 성장의 한 원인이다. 경제발전과 산업발전의 급격한 사회변동은 농경사회에의 한국인을 산업사회로 이동케 하였다.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스몰 컴플렉스와(small complex) 대형화라는 심리를 통하여 해결하고자 하였고 그것의 영향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뭐든지 ‘대’자를 붙이기를 좋아하는 것에서 그 대형화 심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인은 중심을 좋아한다. 중앙이 아니더라도 ‘중앙교회’라 이름을 붙이는 것이며 아파트도 중심이 더 비 싼 것이 그 중심화의 심리를 보여준다. 우리의 전통사회는 중앙교회를 많이 만들고 귀소본능은 교회의 주인의식을 강하게 하며 교회성장의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10)전통문화와의 조화

한국인의 고대 신앙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천신강림의 신앙 ,곡신신앙, 그리고 천지융합의 신앙. 우리민족의 전통문화인 농경문화로 인하여 이러한 신앙이 형성 되었고 농경문화는 또한 근면을 특징으로 한다. 이같은 전통문화가 그리스도교와 접목해 가면서 새벽기도라는 중요한 특징을 형성하게 하였다. 새벽기도는 한국교회 성장의 중요한 요인이다. 새벽기도의 중요성은 한국교회의 성장을 거론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야기이다. 새벽기도는 심방과 함께 목회의 중요한 요소였고 교회성장의 중요한 요인 이었다.

11)전통신앙과의 조화

우리의 전통신앙인 무당종교는 무속신앙을 그 기초로 한다. 무당종교는 한국교회의 대형화 정서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종교이다. 무당종교의 제일 명제는 ‘굿판은 클수록 좋다’는 것인데 이런 무당종교적 정서를 가지고 있는 교인들은 자연스럽게 큰 교회를 선호하게 되었고 그리하여서 대형교회의 형성에 더 박차를 가하게 한 것

이다. 무속신앙이 우리민족에 깊이 자리잡고 있으면서 그것을 우리의 신앙에도 또한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이른 아침에 정성을 강조하던 무속은 경건한 예배형태나 산기도에 열중하게 만들었고 이것은

우리 민족에게만 있는 독특한 성품이며 독특한 신앙의 방식인 것이다. 산기도와 기도원 운동은 한국교회의 성장을 준 요인이었다.

12)한국인의 성품론과 교회의 성장

한국인의 성품은 고요하고 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상당히 강인한 면을 내면에 가지고 있다. 단시일 내에 경제적으로 부유할 수 있는 원인이었으며 단시일 내에 괄목할 만큼 성장을 이룬 교회가 되었던 것이다. 강인한 성품 때문에 개신교의 역사가 짦은데도 불구하고 많은 순교자가 배출된것이며 복음에 대해 품고 있는 강인한 열정이 신속한 교회 성장을 이룩하게 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2.한국교회의 병리 현상

한국교회는 위와 같은 다양한 성장의 요인에도 불구하고 성숙하지 못한 병리 현상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었다.이제 새로운 세기를 기대하면서 한국교회의 목회는 기존의 것들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사회의 적응할 수 있는 모뎀을 개발하여야 할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한국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병리 현상을 검토해 보도록 한다.

1)대형교회의 익명성

한국의 교인들이 대형교회를 지향하는 또 다른 이유는 대형교회가 가지고 있는 익명성 때문이다. 교인에 대한 관심도 바라지 않고 교인이 가져야 할 책임도 회피하려는 도피심정이 익명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대형교회의 익명성은 개인으로서의 교인을 관리하는 허점을 노출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책임성을 결여하게 만든다.그래서 대형교회는 상대적으로 소형교회에 비해 적극적인 참여자 수나 헌금액수가 더 떨어지는 것도 이런 연유이다. 결국 모이는 교회로서의 기능은 했지만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기능은 다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난 수 십년동안 사회를 외면한 채 교회성장에만 혼신을 다 했던 결과는 지금 사회가 교회를 외면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2)정적 집합적 사고

한국인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서양의 사람들과는 달리 정적인 사고를 한다. 한국인의 사고는 주로 집합성을 강조함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정적사고가 교회인으로서는 충분하나 사회인으로서는 부족하게하는 결과를 낳게 하였다.

3)결과론적인 사고

정적사고의 한 특징은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를 중요시하는 것이다. 결과론적 사고는 과정에서 필요한 질서나 방법론을 배제하거나 무시한다. 결과를 중요시여기는 이런 사고는 급행로가 관행이 되고 무질서를 낳게 되었다. 목표를 성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정을 무시하면서 까지 목표를 성취해야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스도교 윤리는 동기와 과정과 결과의 모두 선함을 중요시 여기는 것인데 실제로 교회는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만을 중요시 여기며 성장하려 한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결국 성장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방법론의 문제나 목회자의 윤리적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교회안에 그대로 남아 있게 했으며 ,대형교회가 가지고 있는 행정적인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는 것이다.

4)혼합주의

한국사회는 종교 다원화 시대이다. 다양한 종교는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통계상황이 되었고 이러한 종교 현상을 한국인의 과제 증 하나로 종교 다원화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한국인이 어떠한 종교를 가지고 있던지 간에 그 중심에는 무속적 요소가 있었고 불교든 유교든 그리스도교든 한국에서는 무당종교와 싸우지않으면 않됬다. 식사문화는 의식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드러나는데 한국인의 식사법은 혼합적이다. 이러한 식사법은 우리의 사고를 혼합적으로 형성하게 만들었다. 이런한 혼합적인 사고는 교회를 성장하게 만들었지만 교회가 성숙하고 질적인 교회가 되는데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요소가 되었다.

5)의존적 신앙

일반적으로 무당종교의 특징은 현실성, 기복성, 의존성으로 본다. 이런 무당종교는 한국교회로 하여금 현실성을 가지게 하며 기복적이며 의존적으로 되게 하였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개인 신앙을, 그리고 ‘만인제사장설‘을 말하지만 한국교회의 교회의 교인들은 상당히 많은 부분들을 목회자에게 의존한다. 이런 의존성은 목회자를 탈진하게도 하였지만 반면, 목회자의 권위를 더해 주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또한 이러한 의존성은 담임목사와 부목사를 차별하게 만들었고 이것 역시 샤머니즘적인 여향을 받은 것이다. 아무튼 이런 의존적 신앙은 개인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개신교 신앙에 어긋나는 것이며 목회자에겐 업무 과중을 유발하며 결국 성숙하지 못한 신앙을 야기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6)기복적 신앙

기복성은 무당종교의 또 다른 특징으로 한국 그리스도교에 깊이 잔재하고 있는 요소라고 비난을 받는다. ‘기복’이란 복을 얻기 위하여 신령을 제사하는 종교행위이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복을 선언하고 가르친다. 성경의 대부분이 그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을 기원하는 한국 그리스도교가 기복신앙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그 방법이 무당종교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의 제사의 결과가 축복인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며 능력일 뿐이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복은 인간이 요청한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즉 계시종교인 그리스도교는 기복종교일 수가 없는 것이다.

7)목회 구조에 의한 고정 관념

고정관념이라는 것은 열등의식, 무사안일 등과 같이 혁신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라고 한다. 한국교회의 구조적 관념은 초기의 신앙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것이며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도 지금까지의 목회구조를 탈피하지 못하게 하는 고정 관념속에서 지속되어져 왔다. 한국교회는 종교적 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하여서 선교정책을 수립하며 새로운 세기를 맞이할 목회 구조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지목해온 목회구조로 계속 미래를 준비 한다면 미래 사회에서의 적응력을 목회구조가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8)목회자의 탈진상태.

한국교회의 성장 신드롬은 목회자로 하여금 탈진 상태로 이르게 하였다. 목회구조가 성장 구조인 만큼 목회자는 많은 부담감을 안고 목회에 임하기 때문에 쉽게 탈진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성장 요인에는 많은 목회자의 댓가 지불이나 의존적 신앙형태를 요구하는것이 대부분이었다. 새벽기도가 한국교회의 필수요건이기는 하지만 새벽기도부터 밤까지 쉴새없이 업무에 열중해야 하는 목회자들은 쉽게 지치고 중병에 걸리는 예가 많이 있다. 이제까지 1960년대부터 1980년까지의 한국교회의 성장은 한국교회의 복이며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면서 사회변화에 적응력을 갖춘 새로운 목회의 모델을 찾아 사회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해야할 것이다.

제3장.세계화 지방화 시대의 한국교회

지금 한국교회가 처한 긴박한 상황은 세계화라는 거대한 물결이 사회를 덮고 있는 변혁의 시대인 것이다. 요즘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언어는‘세계화’일 것이다. ‘국제화’에서 ‘세계화’라는 단어로 탈바꿈하고 있는 이제 우리에게 ‘지구촌’이라는 단어는 멀리 있는 개념이 아니라 실제인 것이다. 이런 세계화의 물결을 잘 이용하면 오히려 선진국에 더 빨리 다다를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저개발국가로 후퇴하게 될 것이다. 세계화란 어떤 의미에선 위기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1.세계화의 성경적 의미

1)하나님의 세계화 선언 (구약의 세계화)

세계화의 명령은 하나님의 선포이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세계화 선포는 아브라함 개인의 세계화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세계화 선포이며 나아가서는 현세적 세계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이라는 내세적 세계화를 포함한 선포이다. 아브라함의 세계관은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가 따랐다. 이스마엘의 사건하며 애굽에서의 비굴한 모습도 보이고 조카와의 갈등 모습도 보여준다. 이런 진통 속에서 그는 종래 열국의 아비가 되었고 신앙의 조상이 되었으며 세계화의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야곱이 역사에서 다시 세계화의 모습이 보여진다. 야곱은 삼촌에게서 두명의 아내를 얻고 두 아내와 두 여종을 통하여 열한 아들과 딸을 얻게 된다. 야곱의 마지막 삶의 모습은 애굽으로 이주라는 또다른 세계화로 막을 내리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의 죽은 줄 알았던 아들 요셉이 애굽에 있음을 알고 함께 내려간 식솔 70명과 함께 시작한 애굽에서의 삶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세계화의 시작이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서 애굽에 팔려갔지만 그는 후에 형들을 만나서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 이시라”라고 하는 고백 속에서 세계화는 하나님의 선언이며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임을 드러낸다. 모세 또한 이민 4대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광야에서 모세의 경험은 동질성 극복의 시련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른 민족과의 전쟁에서는 일치되고 단결되었지만 자신들의 사이에서는 동질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분열과 불평으로 공동체성을 파괴하였다. 광야를 지내고 가나안으로 들어갈때는 그래서 다시금 일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포로기에는 또다른 세계화의 실험이었다. 첫째는 바벨론 포로기의 이스라엘의 주류는 포로민이었던 것이다. 둘째는 바벨론 포로기로 말미암아 회당이라는 새로운 공동체형태가 형성 되었던 것이다. 성전에서 회당으로 그들의 종교행위의 종심지가 전위되면서 그들의 신관도 세계화 되었던 것이다. 셋째는 포로민이 귀환할때 귀환자와 남은자 모두 각자의 기능을 하였다는 것이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협동과 단합이 잘 보여지는 예이다. 다니엘과 세친구, 에스더 등 여러 사람이 세계화를 위해서 사용되었지만 그들은 모두 히브리인이었다.

2) 예수의 세계화 선언(신약의 세계화)

그리스도는 인간적 배경인 유대인으로서의 동질성을 벗어나 세계인으로서의 인정 받으시게 된다. 성경에서 예수는 두사람의 믿음을 칭찬하고 있는데 한 사람은 가버나움의 백부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로보니게 여인이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에게만 제한되어

졌던 것이 아니라 세계적 복음으로서의 무제한성과 가능성을 보이신 것이다. 마태복음, 마가복음의 마지막 명령은 복음의 세계화에 그 촛점을 맞추고 있다.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기를 묻는 그 때에도 예수님은 “증인이 되리라”라는 본질적인 해답을 주신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복음의 점진적 전파로만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도행전을 통하여 가시화 되며 복음의 세계화가 실현됨을 증거한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구절은 복음의 세계화가 진행중임을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은 끝나지 않고 세계화를 향해 그리고 시간 끝까지 성도행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2.지방화의 세계사적 의미

세계화를 가속화하는 세가지 요인을 3T라고 한다. 즉 교통수단(TRANSPORTATION),장거리통신(TELECOMMUNICATION),여행(TOURISM)을 의미한다. 이 세가지 중 가장 세계화를 촉진 하는것이 장거리 통신이다. 세계화의 요인은 또한 동시에 지방화의 요소가 된다. 20세기 말에 많은 나라가 분열 되면서 국민 국가가 가졌던 통제력이 상실되고 지역 공동체에 참여하는 단위로 지방 공동체의 연대를 강조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연합 국가로 구성되어 있는 많은 나라들이 아직도 부족 분리의 가능성을 안고 있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인종, 언어, 종교, 문화등의 분열과 갈등이 새로운 분쟁을 야기하는 불씨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의 세계는 지방화의 세계와 같은 세계이다. 세계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하나이면서 동시에 하나가 아닌 모순과 패러독스 속에서 발전적인 원심운동과 구심운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하고있다. 사람의 생활 양식은 세계적이 될수록 종족적으로 행동하게 되며 경제생활도 경제의 규모가 확대되고 개방화 될수록 규모가 더 작은 중소기업들의 영역이 확대되는 것이다. 세계화와 지방화는 가속적으로 국가 개념에서 부족개념으로 그리고 나아가서는 개인의 사고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점점 세계화는 블럭화로 변모하고 지역경제 블럭화가 세계경제를 주도하게 된다. 세계의 블럭화는 뚜렸한 미래적 세계화의 현상인 동시에 지역화의 현상인 것이다 중앙 집권에서 지방화의 개념으로 옮겨감에 따라서 결국 지방화가 국민 국가의 약화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의존도는 많은 부분이 국민의 실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지방 정부에 집중될 것이며 동질성이 강한 공동체를 선호하게 될것이다.

3.세계화와 신토불이의 갈등구조 극복

최근 우리는 세계화와 신토불이의 이중구조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야 한다.’는 개방적 의지를 표현하는 반면 신토불이는 ‘외국의 것을 먹지 말자’는 폐쇄적 의지이다. 세계화와 신토불이가 이야기하고 있는 갈등 구조를 실질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면들을 찾아보고 나아가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1)성경이 말하는 세계화의 신토불이

성경은 세계화만 아니라 신토불이도 함께 선포하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세계화와 신토불이는 갈등이 아니라 조화이며 어느 것에도 치중하지 않은 균형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위해 배필을 정해주는 데도, 그리고 삼손이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것에서도 역시 조화를 의미하고 있다. 또한 요셉은 애굽에서 계속 살았지만 그는 그의 시체를 가나안으로 가져다 달라고 유언함으로써 신토불이를 지킨다. 모세도 다니엘도 에스더도 모두 세계화의 인물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가장 유대인다운 모습을 잃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2)세계화와 신토불이의 조화

최근 일어나는 연합 운동의 성격은 다양성 가운데서 통일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세계화는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견지하고 정체감을 인식하고 자신의 것을 세계화 하는 것이다. 즉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화되는 방식인 것이다.

4.세계화 시대의 한국과 한국교회

한국교회의 변화는 선교정책, 에큐메니즘, 다양한 사회 봉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야만 한다.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미래는 교회 연합 운동이 주도하게 될 것이다. 지난 세대의 분파와 분쟁에서 벗어나 이젠 한 국교회도 한 교회로 뭉쳐서 세계 복음화를 위해 일해야 할 것이다.

제 4 장 미래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우리에게 21C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라 새로운 현실이다. 더 이상 미래에 대하여서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예측하는 것은 무리한 일인 것이다 .어떤 것이 미래적 현상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드래커에 의하면 미래가 이미 우리 곁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 사회의 특징은 다음의 몇 가지로 말할수도 있을 것이다.

1.신세대와 미래형 인간

신세대는 탈근대주의와 탈구조주의 속에서 산다. 흔히 'X'세대라 불리는 신세대들은 1990년대 이후 등장하여 새로운 소비 형태와 문화 형태를 창조한 이들이다.

신세대들은 PANTS 신드롬이라 불리기도 한다.첫째, 개인적인 성향들을 많이 띄고 있다.그리고 주로 흥미위주로 사는 특징들이 있다. 또한 자연스러움을 좋아하며 성별 구분이 모호한 특징을 가진다.그리고 패션 뿐만 아니라 직업,호칭등이 다양하게 변함을 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기 사랑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20대 초반의 ‘X세대’와 10대 후반의 소위 ‘Y세대’와도 세대차이가 늘어가도 있음을 보고 있고 이런 세대간의 나이차는 점점 좁아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2.가순적 변화

미래 사회의 뚜렷한 현상은 속도감의 변화이다. 속도가 갈수록 초고속으로 변할 것이고 적응하지 못한다면 개인에게 상당한 혼란을 줄만한 일이 될 것이다. 과거의 10시간이 지금의 1시간만큼의 시간만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이렇게 따지면 우리는 고대의 무드셀라 보다도 더 오래사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고화의 주도적 역할은 교통 수단의 발달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서울에서 뉴욕까지 2시간에 도달할 수도 있는 미래형 교통수단이 발달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기술의 가속화 현상역시 사회 변화를 이끌어 오는 것이다. 처음 자동차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 후부터 정

말 많은 차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차뿐만 아니라 계속적으로 산업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중문화도 또한 문화의 가속화를 민감하게 반영하는 것이다. 신세대들이 부르는 대중가요의 변화를 보면 가장 잘 알 수 있는 걸꺼다. 성경에서 얘기하는 미래 현상을 단12:4 “많은 삶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라고 표현하고 있다. 분명히 미래는 정보화 시대가 될 것이며 정보사회로서 사회의 변화를 가속화 할 것이다. 정보는 또다른 거속적 현상을 사회에 가져다 줄 것이다.

3. 기술 산업의 혁명

미래의 혁명적 변화는 총체적인다. 모든 부분에서 삶의 영역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 가장 획기적인 변화는 기술 산업일 것이다. 흔히 21C를 기술 경제의 시대라고 한다. 종전의 산업 성자의 원동력은 토지와 자본, 천연자원 이었다. 하지만 미래의 신산업 혁명을 주도할 요소인 컴퓨터 기술은 더 발전하여 이젠 인간의 두뇌 기능을 가진 컴퓨터가 출연하게 될것이고 컴맹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될 것이다. 인터넷이 보편화 되어가지고 WWW를 이용하는 지역이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컴퓨터를 인한 역기능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윤리가 깨지고 범죄가 늘어날 것이며 위험율이 갈수록 커져가는 것이다. 우리가 꿈꿔왔던 가상의 세계가 이젠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기도 하다. (범죄도 현실도)가상 현실, 가상 점포등이 늘어남에 따라 실제 인간관계는 멀어질 것이고 윤리적인 여러 문제가 등장할 것이다. 컴퓨터 발달로 인해 로봇의 자동화가 가능해진다. 산업용 펄프, 지능 용으로 구분이 되며 사람들이 직접 하기 힘들일을 대신 해 주어서 산업의 발달과 구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미래 사회에서는 로봇 기술이 발달한 나라가 세계를 점령할 거라고 예측 하기도 한다.

4.정보사회

정보사회는 지식사회라고도 한다. 정보는 미래 사회의 가장 뚜렷한 현상적 특징이될 것이다. 특별히 장거리 통신이 발달한 것이고 최근 장거리 통신의 실용화는 현실화되고 있다.

각 나라마다 정보 고속도로 건설을 시도하고 있고 만약 정보 고속도로가 구축되어진다면 지금 부분적으로만 주고 있는 그 영향은 앞으로 엄청날 것이다.또한 미래의 정보는 쉽게 습득되지만 또한 쉽게

잃어버리는 일들이 일어난다. 또한 인간 상실의 대화의 단절이 심각한 문제로 부가될 것이다. 인간성의 상실과 함께 인력도 또한 급속도로 감소할 것이다.기술혁신으로 인해 많은 인력이 필요해지지 않기 때문에 이런 여러 모습에서 변하는 미래사회에 알맞는 교회의 모습 그리고 목회의 양상은 무엇인가?. 이것이 목회경영의 과제인 것이다.

5.새로운 우주관

미래는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가치관과 사회 현상들이 출현 할 것이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변했던 혼란이 계속되어질 것이다. 르네상스의 운동이 일어났고 자유주의 혁명도 일어나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자 애썼다. 이런 혼란을 겪어오면서 우리는 자연을 많이 훼손하여 왔고 인간이 환경의 지배자라는 생각으로 살아왔었다. 하지만 토플러는 이제 우리의 지배적인 자연관을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 하면서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공존을 추구하는 상태로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제 차츰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 식품의 인기가 높아져가게 되고 점점 자연적 인간행위를 강조하게 되었다. 이러한 유행은 인간의 관심사가 미래형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새로운 우주관이 형성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우주관이 변화하면서 미래형 가치관은 일회성과 임시성이 발달할 것이라고 한다.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 노력하고 또한 대여 문화가 발달한 것이며 특별히 아파트나 자동차같은 업종의 대여 문화가 발달할 것이라고 한다. 일회용 물건들의 사용이 늘어 나면서 또한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변화는 인간의 사고가 영속적인 사고에서 일회용적인 정신으로, 그리고 인간 생활과, 깊이 있어야할 영적 생활도 점차 일회적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교회도 슈퍼마켓식 교회가 아니라 편의점식 교회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6.과학의 발달

현대는 지식이 삶의 기초가 되는 사회이다. 인쇄 발달로 지식의 전달 기술은 다양해 지고 그 양은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늘어난 지식은 미래인에게 만족을 주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믿는 지식보다 더 많은 지식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무식해지고 습득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적인 빈곤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학 기술로 많은 발전이 있어 왔지만 그래서 생긴 문제들은 과학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어쩌면 나노 기술이 많은 부분을 고쳐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좋은 나노 기술에도 약점은 있는 것이다. 인간 기술의 발달은 절대적 만족이나 행복을 우리에게 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신학의 필요성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산업사회가 물리학의 시대라면 정보사회는 생물학의 시대이라고 할만큼 생명과학에 대한 연구가 다양해지고 깊이 있어졌다. 유전 공학의 발달은 필요한 인간형 조작까지도 가능하게 하지만 그로 인한 역기능 또한 엄청난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말로 듣던 인간복제가 이제는 실제로 가능해지면서 이로움도 있지만 역시 인간의 안녕과 행복을 위협하며 인간의 존엄성 자체도 의심스럽게 하는 엄청난 것이다. 인간의 끝도없이 커져가려고 하는 과학적 발전과 발견은 신비함과 동시에 두려움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그렇기에 신학적인 요소들이 필요해 지는 것이고 신학으로 인해서 영적인 갈급하므로 채워줄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준비를 우리가 먼저 해가야 하는 것이다.

7.인류 공동체의 보편화

미래는 인구의 폭발과 더불어 인간이 자연에 조화와 공능력을 추구해야 하는 대상이 되고 있다. 자연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오히려 보존 해야하는 대상임을 깨달은 것이다. 인구 폭발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견해는 비관적이다. 불행과 기근이 그리고 전쟁의 위협까지도 엄습해 올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어떤면에서 도시 인구의 증가가 긍정적인 면을 보이기도 한다. 대규모 도시화만이 세계인구의 폭발속에서 살아날 수 있을 것 이라는 것이며 그 이유는 도시가 시골보다 필수 서비스를 더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구의 폭발은 연령층의 변화를 가져 올 것이며 특별히 노인 복지에 대한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세계는 좁아지고 있고 미래사회는 인류 공동체가 보편화되는 사회일 것이다. 음식, 패션, 문화, 종교, 모든것이 좁아지면서 덩시에 외부에 대해 거부하려는 반응도 일어난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하여 인구의 이동이 가속화 될 것이며 여행은 인류 공동체를 보편화하는 작용을 할 것이다. 여행과 정보의 발달은 인간의 삶에 변화를 주고 통신기술의 발달로 재택근무가 늘어갈 것이고 인간관계식 수업보다는 실력을 중시하는 수업 방식이 나타날 것이다. 교회도 역시 교통의 발달로 인한 영향을 받는 것이고 이제 지역 교회로서가 아니라 광역 교회로 자라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교회는 계속적으로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선교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며 기존의 목회구조는 이젠 알맞지 않는 방법이 될

것이다. 심한 이동률과 이직률의 변화는 심각한 목회 구조의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이런 유목민 사고로 전환되는 미래형 인간들에게 알맞는 교회의 역할과 목회의 의미가 필요하다.

제5장 미래교회 메가트렌드

미래 사회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를 어렵다. 미래는 불확실하며 공허감이 증대되지만 이런 미래적인 특성이 교회의 존재가치를 높이게 해 주는 것일 것이다. 계속이야기 했듯이 현재의 목회 구조로서 미래를 대응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사회에 뒤쳐지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리라. 교회의 분열과 분리의 제2의 물결 시대가 지났고 이젠 균형과 연결을 강조하면서 협력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제3의 물결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21세기에는 빠르게 제4의 물결로의 이동이 진행될 것이다.

미래에 대한 대형의 메가급추세를 메가트렌드(Megatrend)라고 한다. 한국교회에의 메가트렌드를 읽을 줄 알아야 할 것이고 그래서 다가오는 미래를 대응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1. 개교회주의의 퇴조

개교회주의는 한국 교회에서 교회성장의 한 요건이었었고 그래서 대형 교회를 양산하게 되었다. 하지만 개교회는 강하지만 교단이나 연합기구는 왜소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런 모습은 아직도 한국 교회가 제2물결인 경쟁과 분리의 현상을 극복하고 있지 못함을 보여준다. 교회의 자원이 교회내에 집중하게 하여 교인을 증가시키는데에만 모든 자원을 투자하였다.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이기주의는 구원을 개인적 수직적 관계에서만 이해하고 수평적 관계성을 성실하게하며 사회와는 무관한 그리스도교를 형성해 나간 것이다. 최근 들어와서 교회가 사회봉사에 책임 의식을 느끼며 사회봉사를 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가고 있는데 이것이 올바른 모습인 것이다. 조만간 한국 사회도 제 3의 물결이 일회성과 일치하여 하나의 교회를 지

향하게 하고 그래서 한국교회가 점점 편의성 위주의 교회로 발달 할 것이다. 이동성의 발달로 점점 개교회주의를 퇴조 시킬만 한 것이다. 흩어지는 교인이 늘어날 것이고 교회의 목회자는 이제 이런 부분까지도 고려하면서 목회의 방향을 잡아가야 할 것이다.

2. 출석교인의 감소와 헌금의 상승 현상

사회 변동의 요인은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에 출석하기 힘들게 할 것이지만 헌금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상승할 것이다. 출석교인 감소요인은 출생률의 감소, 미래의 이동성과 임시성이 교회를 떠나게 할 요인이 될 것이다. 또한 교회를 대신할만한 기능적 대행물들이 발달할 것이며, 또한 한국사회의 사회성 결여가 젊은 세대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하는 요인이 되게 하는 것일 것이다. 주일성수는 교회 교인의 절대적 의무이며 교회의 치리 요인이었지만 최근에는 주일 불수로 교인을 치리할 수도 그리고 치리할 형편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교회에 출석하지 못한다해도 교인들은 헌금을 냄으로써 결석에 대한 대리만족을 얻으려 할 것이다. 이제껏 헌금이 신앙생활에서 강조되어져왔고 그것이 또한 한국교회가 자립할 수 있게 하는 원인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헌금 상승의 현상은 상대적 일 수 밖에 없으며 일시적 헌금 상승은 지속적인 출석교인감소로 인해 동시적으로 하락 현상을 보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출석 교인의 감소현상을 극복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고 출석교인의 감소현상이 미리 예측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투자에 대한 일반원칙이 교회에도 또한 적용되면서 사회를 위해 재정을 투자하는 방법들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3.평신도 사역의 극대화

평신도 사역이 극대화 되고 그러므로 평신도 사역을 통한 교회성장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사람들은 점점 일반인들 중심의 소 그룹을 통한 목회가 될 거라고 예측한다.만약 평신도가 잘 훈련되어진다면 교회에 안정감을 가져다 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메타 교회는 목회자의 역할보다 평신도의 역할이 중요시 되는 것이고 평신도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선민이다. 평신도는 하나님의 시민이다. 특별히 로마카톨릭 교회에서와 개신교에서 평신도의 개념은 목회자와 특별히 구분있었던 것이 아니었다.이제 개신교에서는 ‘만인 제사장설’로 인해 평신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부각되는 것이고 ‘만인 제사장설’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는 것과 평신도가 흩어지는 교회를 하나의 작은 교회로 뭉치게 한 사명을 행했던 것이다. 평신도는 매래 교회에서 성직자의 동역자로서의 개념 발전이 필요하고 한국교회는 목회의 방향을 평신도를 중요한 자원으로 관리하는 것이 즁요하게 대두되는 문제인 것이다.

4. 조직교회에 대한 반대

조직이란 인간사회의 하나의 필수적인 요건이며 인간을 공동체의 요소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특별히 한국 교회는 조직체로 운영되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조직이 통제하고 목표만을 지향한다면 통제를 싫어하는 미래의 인간들에게는 거부감을 줄 것이다. 재택산업이 발달하면서 미래인의 생활반경은 통제가 없는 가정을 중심으로 좁아질 것이며 화상 회의가 발달하듯이 화상 예배가 발달하게 될 수도 있다. 존재의 교회를 반대하는 것들이 눈에 띄게 드러나면서 기존의 교회가 매래사회에 적합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교회의 조직은 전통적 구조에서 새로운 미래형 구조로 혁신되어야 할 것이고 끊임없이 교회 조직의 갱신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미래 사회에 교회가 빨리 하면 할수록 좋을 것이다.

5. 교회의 일치와 에큐메니즘의 활성화

‘에큐메니칼’운동은 1900년대 들어와서 활성화 되었다. 최근에는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을 앞두고 뚜렷하게 부상되고 있으며 새로운 형태로의 연합으로 발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세계관은 아직도 분리,경쟁을 추구하는 제2물결에서 제3물결-연결.협력으로의 변환과정일 뿐이고 상당한 부분의 혼란을 겪으며 나아가고 있다. 이제 한국 교회가 새로운 통합과 연합을 모색하는 것은 변화하는 사회에서의 필연적인 요소이며 교회가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일 수도 있다. 20세기 들어와서 세계적으로 교회의 통합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가고 있고 이런 움직임은 한국 교회에도 영향을 주어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려는 준비작업을 시도하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교회 연합은 새로운 생명체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고 미래를 위한 교회의 필연적 기능을 하여야 할 것이다.

6. 교회 마케팅 이론의 발달

미래 교회의 교인은 다양성을 인정받기를 원할 것이다. 다양한 것을 기대하는 세대를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매래 교회는 적극적인 마케팅을 해야 할 것이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판단하고 이해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 하는 것이다. 하이벨스 목사의 예배 형식의 변형이나, 빈야드 교회에서의 ‘성령의 제3의 물결 운동’을 적극 적으로 추진하는 것들. 이런 것들이 신세대 미래의 교인들울 교회로 모을수 있는 적당한 방법인 것이다. 물론 모든 교회의 기본 상향, 즉 예배의 내향 즉 보이는 교회나 힘의 단결, 외향 즉 실제적 교회인 교회의 사명은 지녀야 하며 이것이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인 것이다. 일반 영리 단체가 고객에게 민감해 있듯이 비영리 단체의 경우 더욱 그러해야 하는 것이다.교회의 보수적인 면만을 강조하다가 교회는 시대에 뒤쳐진 결과를 가져왔고 이젠 교회에서도 마케팅 이론의 강화와 적용이 필요하게 되었다. 미래의 교회는 또한 교회마다 각기 특징을 살려 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만 할 것이고, 고객의 범위도 또한 모든 사람으로 넓혀야 한다. 그리고 교회주의의 시장조사도 또한 전략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여러가지 고려가 있어야 할 이유는 이제 가정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이미 성장하는 교회는 이런 마케팅을 철저하게 적용한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다. 미래에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벗어나서 성경에 배치되는 것 외에는 신자들을 따르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고 이제 앞으론 보편적으로 이런 마케팅이 한국 교회에 도입,적용되어야 하고 그럴 필요가 있을 것이다.

7. 영성적 기능의 부활

1990년대의 마지막 몇년은 사람들에게 영성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과학 만능주의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오히려 타락과 고갈을 그치지 않고 그래서 영성적 방향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21세기에는 이런 것들이 더 발달할 것이다.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교회에 희망을 걸 것이고, 미래 교회는 당연히 충분한 영성을 기본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영성의 의미는 “하나님 면전에서 완전하게 되는 것만을 추구하는 감각에서 해방된 영혼의 내적인 수련과 관련되는 모든 것이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영성이란 영혼의 본성과 내적인 생활과 관련된 내용인 것이다. 영성 신

학적 측면에서 볼때 미래 교회는 주관적 영성이 더 강조될 전망인데 이러한 전망들은 과학기술 그리고 산업이 발전하는 것과 비례해서 야기되는 예측이다. 사람들이 기대했던 과학이나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고 기능적 대행물을 찾으면서 그들은 필요에 따라 종교를 찾게 되며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물론 과학은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인간의 삶을 향상시켜 주기도 하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소유하고 싶어하고 소유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관심이 이런 과학적인 것에만 의존할 수는 없기 때문에 또다른 관심을 찾게되는 것이다. 인간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과학으로는 분별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과학이 과학을 논할 수 없을 때 인간은 신령한 것 영적인 것을 사모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한국 교회는 ‘영성’이라고 하면 오해를 먼저 하는데 기독교의 영성이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와 깊은 하나님 체험, 즉 하나님과의 깊은 깊은 관계성의 형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성은 기도와 영적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미래교회는 지금 서구교회가 그러하듯이 영상적 교회로 탈바꿈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성을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합일과 그래서 세상에서의 강한 사랑의 실천과 헌신의 삶이 되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더더욱 사회의 영적인 갱신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 미래교회에 영성적 기능의 부활은 새로운 교회의 갱신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길을 재공할 것이다.

8. 디아코니아의 발달

목회의 그 패러다임의 상당한 변화가 미래에 요구될 것이다. 미래목회는 분명히 내향성보다는 외향성을 요구하게 될것이고 목회자는 결국 사회에 관심을 아니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목회의 내용은 디아코니아의 발달일 것이다. 디아코니아는 ‘봉사,구제’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초대교회부터 분명히 교회의 한 목적이었음을 알 수있다. “교회가 있는 곳에 디아코니아가 있다.”라고 불리울 만큼 디아코니아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며 교회의 목적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디아코니아로 집중해야 하며 미래교회 역시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몇 십년 동안 한국교회의 놀라운 성장에

비해 지금의 둔화되고 감소되는 현상은 교회의 선교 정책과 목회의 관심에 심각한 변화를 주고 있다.이제 한국교회는 수나 양의 개념에서 ‘봉사’라는 질의 개념으로 목회 패러다임을 변경해야 할 것이며 이런 변형은 개혁의 방향으로 까지 연결될 것이다. 최근 들어 한국교회가 사회에 대하여 교회가 책임적일 것이며 한국교회가 사회복지에 디아코니아를 위해 세워졌음을알 수있고 칼빈과 같은 개혁가들도 디아코니아는 강조 할 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교회의 디아코니아를 위해서 교회는 이제 직제에 대한 바른 이해와 직원의 디아코니아를 위한 훈련과 투입이 필요한 때이다. 교회가 사회를 섬길 때 하나님께 대한 신앙도 일치되는 것이다. 차츰 미래사회가 교회에 뭔가를 기대 할 수도 있게되는 것이다. 미래사회가 교회에 요청한는 것 한가지가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디아코니아에 관심이 증대될 것이며 미래교회의 디아코니아는 미래사회에 많은 발전을 줄 수 있을것이다.

9. 교회정치의 민주화

한국사회가 지방화 시대를 맞이 하면서 가장 크게 변한것이 있다면 중아집권적 사고에서 지방분권적 사고로의 전환이다.또한 교회도 이러한 지방분권적 사고가 발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당회의 결정은 막대한 힘을 소유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당회의 일방적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예가 늘고 있다. 교회의 정777치와권위는 상당히 구약적이다. 18:13-27에 의지하여 구체적으로 나뉘었음을 알 수 있지만 사회의 민주적 분위기와 정치의 발전은 한국교회의 정치와 민주화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직분은 진급하는 것이 아니지만 한국교회의 직분은 진급도 한다. 목사,장로를 높은 직분이라고 이해하는 이유도 직분을 계급적으로 이해하니까 생기는 오해이다. 미래 사회에 교회가 정치 제도 적으로 앞서기 위해서는 한국교회의 직제의 계급적 차별성과 관료적 개념이 사라져야 할 것이다. 미래사회를 앞두고 한국교회는 정치 뿐아니라 목회의 모든 부분에서까지 민주적 사고와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10. 여성의 교회 정치 참여의 증대

분열과 경쟁은 갖가지 차별을 낳게 하였고 특별히 남성과 여성의 차별성을 야기하게 했다. 기존의 사회에서의 기업이나 교회에서의 정치나 직제는 주로 남성을 위한 것들이 많았고 이러한 성차별의 극

복이 또한 미래사회 교회의 한 가지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모호해지고 있는 최근의 신세대들 사이에 이런 영향력으로 인해서 여성의 사회 참여와 기업에서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고 정치에서도 또한 여성의 사회참여도 확대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제껏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하지만 대한 예수교 장로회가 여성안수를 허락함으로써 한국교회에서 여성의 교회 참여가 상당히 많은 영향력을 받게 될 것이다. 확실히 미래에서는 한국교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의 실제적 참여도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성경에서는 여성의 정당한 참여를 분명히 이야기 하고 있다. 여성의 정치 참여의 증대는 교회의 관심의 변화로 화대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외향적이고 힘이 있는 남성목회자들의 역할이 요청되는 것이었다.하지만 이제 여성의 힘이 필요한 때 이고, 여성의 교회에서의 지가 향상된 것은 사회 변화에의 물결의 영향도 많이 있다. 이제 남성들은 여성들을 동역자의 관점에서 재발견 하여야 하는 것이다.

11. 목회구조의 대 변혁

빠른 인간교류, 속도감의 증대, 정보의 발달,등으로 새로운 목회구조가 출현할 것이다. 이제껏 영향을 주어왔던 심방구조로는 방대한 지역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기존의 목회의 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목회구조를 계획하여야 할 것이다.

1)성장 구조에서 성숙 구조로

한국교회는 일반적으로 성장 구조를 택하고 있었다. 그래서 교회조직이 중심은 구역이고 목회의 중심은 심방이었다. 물론 미래 교회에서도 성장된 구역의 기능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더더욱 평신도의 훈련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의 정치구조도 성장구조로 고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선교와 디아코니아등 교회의 본질적 목적 성취는 멀어지고 그래서 이제 미래사회에 적응력을 갖춘 교회의 구조는 성장구조를 탈피하고 스스로 변역하는 일들이 요구 되어져야 한다. 미래교회가 성숙구조로 전환되어야 한는 이유는 미래의 환경이 성장구조로서는 미래사회에 적을력을 상실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하여서 성장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을 통한 성장을 모색하는 일이다.

2)개인 목회에서 ‘팀’목회로

미래사회의 또 다른 변화는 다양성의 근대화이다. 미래교회는 다양성을 포용하면서 통일성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일치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팀 목회’가 연구시되고 있는데 여기에서 ’팀‘이란 목회자와 교회의 직원 나아가서는 평신도가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성이 극대화가 될 때 교회의 팀이 활성화 되어 일어날 것이다. 팀 목회는 수평적 구조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기본이다. 한국적 모델의 팀의 구조는 수평적 기능과 수직적 사고가 함께 작용한는 십자가 형 이어야 한다.

3)불럭화 조직

정보화 시대로 인해 민간의 사고 구조는 정보로 변하고 지역화 될 것이다. 이런 시대를 맞이하여 교회는 교회의 구조를 블록화 정보화 할 필요가 있다. 세계는 지금 크고 작은 블록들로 이루어가지고 있고 새로운 세계를 열려고 준비한다. 미래인은 블록화를 지향하게 되고, 그래서 교회도 이처럼 블록화를 지향하여서 다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들은 서로가 연결되어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미래인들은 네트위크를 가지게 될 것이고, (네트워크는 자발적 협동체계이다.) 네트워크는 규정을 짓지않고 형식적 조직을 취하고 있지 않으면서 진행된다. 그러므로 미래인에게는 조직보다는 네트워크가 더 발달할 것이다. 미래교회의 네트워크도 다양하게 발전해야 할 것이다. 미래교회는 사람들이 관심있어 하는 교회와 교회사이의 네트워크를 그리고 교회내의 다양한 블록의 네트워크를 통해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구조를 곧 요청하게 될 것이다.

4)교회구조의 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으로

최근의 국가 행정구조의 개편에 따라 우리의 사고 구조가 지방분권적으로 변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당회의 일방적 결정이나 지시를 거부하는 증상을 보이고 있으면서 교회가 중앙 집권적 구조에서 벗어나 지방분권적 구조로 탈바꿈 해야 함을 보이고 있다. 이런 지방분권적 구조는 정보화로 말미암아 가속화 될 것이 틀림없고 정보화는 또한 미래교회의 구조적변화를 유도해나가는 원인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교회지도력은 남성에게만 집중되어 있었고 군대식의 계급구조가 익숙해 보이지만 차츰 네트워크 형의 교회가 출현 하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지도력과 교회구조가 출현 할 때가 됬다. 결국 미래 교회는 계급적 구조조차도 탈피하고 기능적이고 보조적인 구조를 가져야 미래사회에 적응 할 수있을 것이다.

제 6 장 미래 사회와 한국 교회

미래는 단정할 수 없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추측하는 것 뿐이다. 미래의 목회 방법론 역시 절대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단지 대비 예측하는 것 뿐이다. 21세기라는 새로운 1000을 준비허는 교회가 되기 위해 실제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1.국경이 없는 시대의 한국 교회

세계화 시대를 흔히 국경이 없는 시대라고 한다.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지구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었고 실제로 지구는 하나일 수밖에 없는 운명적 공동체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본래 하나로 만든 세계는 인간이 범죄함으로 인해 깨어지기 시작했고 수많은 선이 생기고 장벽이 만들어지게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자신의 권익을 위하여 선을 긋고 이익의 선이 되게 한다. 3․8선은 구시대 이념의 상징이 되어 남북을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모든 선을 없애고 모든 장벽을 파괴하려 오셨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파벽의 증인이며 파선의 사도가 되어야 한다.지금 우리나라의 여권을 가지고 어느 나라든지 입국할 수 있는 국경이 없는 세계화의 시대를 한국 교회는 복음 전파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한국 교회가 많은 선교사와 재정을 지원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선교에 대한 열정이 정책을 따라오지 못해서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미래 전망적 선교를 위해서 미래 선교는 효율성 있는 선교 정책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요랜 경험을 가진 세계적 선교기관의 노하우를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피선교지에 대한 문화적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고 이제 경쟁선교에서 협력선교로 전환되어야 하고 전반적으로 자세를 낮추는 겸손함도 또한 필요할 것이다.

2. 통일 시대의 한국 교회

통일은 우리민족의 정치적 과제일 뿐 아니라 선교적 과제이다. 통일이 없이는 우리 사회에나 교회에 진정한 평안이나 참 복음이 있을 수 없다. 한반도의 통일은 여러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선교 차원의 선교는 일방적으로의 흡수나 점령이 아니라 상이점을 극소화하는 작업이어야할 것이다. 한국의 통일은 분명히 시간적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때에 통일 후의 한국 교회를 위한 연구가 다각적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남과 북 사이에 필요한 것은 반세기 이상 지속된 분리와 갈등이 가져온 서로의 격차를 최소화하는 일이다. 서로의 교파적, 문화적, 개인적 차이를 용납하고 극복해 나가는 것만이 교회 연합을 가능하게 할것이다. 그래서 각자의 문화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교회가 교단과 문화의 벽을 넘지 못하고 선교사를 파송해서 비난을 들었던 것처럼 통일 후에도 그러한다면 더 많은 갈등만을 야기할 가능성이 잠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섬김의 요소로 그들의 경제적, 종교적 우월을 삼아야 되고, 그래서 대등한 상대로 접근해야 한다. 통일은 한국 교회에 많은 문제의 해결도 줄 것이지만 동시에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올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도 예상하고 교회는 그 대비책을 미리 강구하여야 한다.

3. 환태평양 시대의 한국 교회

우리가 사는 이시대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이다. 미래라는 시간은 더욱 불확실한 시대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불확실한 시간을 확실한 시간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한 가지 또 예측이 가능한 것은 세계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옮겨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주요 쇠퇴와 동북아시아의 부상에 많은 학자들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 주요 항구가 옮겨지고(뉴욕에서 로스엔젤레스로), 아시아의 각 나라들이 빠르게 경제 성장을 하는 것 등 많은 현상들을 통해서 세계의 중심이 태평양으로 될 준비를 하는 것들을 알 수 있다. 미래 세계를 동북 아시아의 나라들이 주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미래학자들이 지배적 견해이다.

토플러는 구체적으로 동북아시아의 쌀을 먹는 민족이 세계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지중해 중심의 세계 시대는 유럽이,대서양 중심의 세계 시대는 미국이, 그리고 태평양 중심 시대에는 동북 아시아가 세계를 지배하리라는 것이다. 현재의 태평양 지역의 경제 성장은 산업혁명시대보다 속도가 5배나 빠르다. 한국은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 중에서 가장 장래성이 밝지 못한 나라였다. 자원을 중시 여기던 시대에 한국에는 거의 자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또한 1950년의 한국 전쟁 동안의 극심한 피해도 또한 한국 경제에 어려움을 주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20세기말에 와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이다. 계속되어진 경제성장으로 앞으로 미래에 까지도 한국이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래 세계에서의 한국 교회는 분명히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교회에 대해 책일질 위치에 있을 것이다. 이런 미래 세계를 위해 한국 교회는 지금 준비하고 21세기를 위해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은 인구 대국인 중국과 경제 대국인 일본에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어져 있지만 한국은 신앙 대국으로서 미래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다. 한국 교회는 분명히 세계 교회의 중심으로서의 위치를 지키기 위하여 준비해야하고 또한 그 위치를 잃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4. 부흥과 쇠퇴의 기로에 선 한국 교회

한국 교회가 이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유럽 교회가 걸었던 그 길을 가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 한국 교인들이 많다. 그러나 사회적 환경이나 종교적 심성이 유럽과 같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 단정하는 일은 금물일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의 과제는 유럽의 교회와 같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쇠퇴하지 않는 성장하는 교회가 되게 하는 것이다.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 교회는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비전을 포괄해야 하며 언제든지 선교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며 어떤 일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를 잘 계산해야 한다. 그리고 반대 의사에 대해서 감수할 줄도 알아야 하며, 미래를 위해 현재부터 행동을 시작하는 이런 몇가지 것들이 필요하다. 교회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또한 몇가지가 필요한데 첫째 친교(fellowship), 둘째 예배와 기도(worship and prayer), 셋째 영의 자유(the liberty of the spirit), 넷째 잃어버린 자에 대한 돌봄(a care for the lost),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성장을 위해 쇠퇴의 원인을 제거하는 연구가 필요하고, 한국에는 3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미래 전망에 대해 열중하고 있지만, 한국 교회는 이런 연구에 좀처럼 투자하지 않고 막연하게 미래의 희망을 기다리고만 있다. 이제 한국 교회에도 미래 연구를 위한 활발함들이 필요하고 또한 미래 교회의 목회 패러다임을 정립해 나가는 선견지명이 요구된다. 불확실한 미래 사회에 적응하고 미래 현상을 극복하는 데 미래 교회가 아무런 예비없이 목적을 성취할 수 만은 없다.

5. 21세기를 위한 신학교육

지금까지의 신학 교육은 교역자들을 양성하는 도구로서의 폐쇄적 의미밖에 없었다. 최근 들어서 사회 변동에 새롭게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신학적 패러다임을 창조하기 위해서 신학은 발버둥치고 있다. 시대적인 긴급성을 목도하면서 한국의 신학교육은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신학교육이야 말로 사회를 알고, 사회를 안아야 하는 학문이다. 세계안의 세계를 위한, 그리고 세계롸 더불어 가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신학은 존재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교회와 신학은 세계의 변화에 민감해야 하며 세계변화를 수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초보 목회자들은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고 심방을 열심히 하면 목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목회에서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21세기라는 불확실한 시간에 이런 것들만을 가지고 뛰어든다면 상당한 당혹감을 맛볼 것이다. 이제 신학생들은 새로운 천년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며, 또한 새로운 신학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발달하는 이동성과 임시성은 교회에서 기존에 목회자가 가지고 있던 패러다임을 무용하게 만들고 전혀 새로운 목회의 패러다임을 요청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 현상의 변화와 더불어 미래 신학 교육은 교인들의 요청도 또한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목회자가 가장 많이 시간을 쏟는 부분은 심방이지만 미래 사회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심방이 목회에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화가 우리의 것은 버리고 세계의 것을 무작위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세계화 시대의 한국 신학은 우리의 것을 세계적 신학으로 만드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21세기를 위해 신학 교육에 필요한 과목들은 대충 이와 같다. 영어와 제 2외국어, 컴퓨터, 통계학, 환경과 윤리, 영성훈련, 교차 문화 교육, 마케팅, 여성신학과 여교육자 양성, 목회실습 강화, 사회문제. 어찌보면 사회의 구조는 전문화되어 발전하는 데 목회만은 비전문적으로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전세기적 사고를 전환하여 미래형 지도자 양성에 관심을 가중해야 할 것이다.그래서 앞으로는 신앙과 영성을 겸비한 ‘인간 형성’이 보완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전문직 형성’차원의 신학 교육이 지급보다는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모두 목회자가 되어 교회를 섬기는 것보다는 전문화 시대에 목회의 전문가로서 보람있게 일하며 사역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작업들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신학교육의 전문화가 가능해 지기 위해서 신학대학교와 일반대학교의 횡적 연관성이 긴밀하게 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도는 다양한 미래 사회를 위한 목회자들의 사역이해에 도움을 줄 것이고 연합하고 조화하는 새로운 물결의 이해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미래사회를 향한 새 패러다임을 다양하게 제시 할 수 있고 변동에 적응력을 가질 수 있도록 계속 새롭고 다양하게 변화되어야 한다. 한국 신학교욱의 지원자의 하락으로 질적 양적 하락이 야기되는데 이러한 때 일수록 신학교육의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 양질의 교육이 가능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한국 신학이 외래 신학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한국적 신학이 세계화 할 수 있도록 우리의 신학을 발전학 알려야 한다.

6. 12세기를 준비하는 교회

한국교회는 21세기라는 새로운 시간이 닥치면 무엇이든 될 것이라는 크로노스적 자세가 아니라 카이로스적 자세로 준비해야 한다. 많은 서구의 교회들이 21세기의 목회 패러다임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교회는 “이것이 우리 교회의 21세기 목회이다”라고 제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21세기를 향하는 메타교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미래교회는 더 많이 좋은 제자를 만들기 위해 헌신해야 할 것이고 건물 크기보다는 결신자의 양에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교회는 가르치는 장소보다 돌보는 장소로 알려지게 될 것이고 목사는 평신도를 통한 사역을 장려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평신도 사역은 그룹의 지도력을 포괄하게 될 것이고 기회가 주어지면 평신도는 목회에 도움을 주는 투자를 하게된다. 목사와 교인은 상호목회의 유익을 위해 성령에 의지하게 될 것이다. 미래 준비를 위해 교회는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알아야 되는데 첫째 교회가 케리그마, 디아코니아, 코이노니아 같은 본질적 사명을 갖고 있는것을 교회는 알아야 된다. 둘째는 변하는 시대를 맞이 하면서 사고 유형과 생활 양식이 다양해질 사람들을 알아야 하고 셋째는 교회에 민감한 영향을 주는 사회를 알아야한다. 넷째 앞으로 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줄 미래를 알아야 한다. 미래사회의 변화에 따라 교회는 변화해야하는 당위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준비에 비례한다. 세계적 교회가 되기 위해 다양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고 준비한 사람과 교회에게 미래는 자신있게 맞이할 만한 것일 것이고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 미래는 그야말로 불 확실하고 쓴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준비한 자에게 미래는 미래는 불 화실한 시간이 아니라 확실한 시간이며 오히려 설렘과 대망의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