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외국인교회/요한복음 설교자료실

요한복음 3:5-8 / 물과 성령으로

시골농군 2010. 1. 29. 16:33

요한복음 3:5-8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서 종교적으로 성숙한 사람이고 산헤드린 공회의 한 멤버로서 사회적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존경받는 지성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관리할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갖춘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왜냐하면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영적인 갈급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위대한 질문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생인 줄 아나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함께 행하시지 않았다면 당신이 행한 표적과 이적은 모두 불가능한 것입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질문이 이것입니다.
"예수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왜냐하면 예수님은 AD와 BC를 나눈 분이고 동서양을 합쳐 예수님만큼 인류에게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을 한 사람이 성경에 또 한 사람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신약 성경 13권을 쓸 만큼 지성이 있고 학문적 훈련을 받았습니다.
또한 자기가 믿는 대로 행동하는 혁명가적 기질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울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던 중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난 뒤 눈이 멀고 쓰러집니다.
이때 사울이 니고데모와 똑 같은 질문을 합니다.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그에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그때부터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고 그의 인생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니고데모의 질문에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속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거듭남’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기독교 사상을 ‘거듭남’이라는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거듭남은 하나님 나라의 열쇠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고 깨닫고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거듭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 말을 당시 유대인 지성의 최고봉이었던 니고데모가 못 알아 들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은 니고데모가 알고 있는 모든 개념에는 없는 전혀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주어진 말이 아니라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 거듭났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이 새롭게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진짜 거듭났는가?
기독교 집안에서 꾸준히 신앙생활을 해오던 사람은 나이 든 뒤에 예수를 만나는 사람에 비해 믿기가 어렵습니다.
예수와 전혀 상관없는 무신론적 배경에서 자란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면 복음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이 예수를 잘 믿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를 잘 믿지 않습니다.
이미 율법과 종교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기독교 핵심 진리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맴돌며 자신이 하나님을 잘 믿고 성경 잘 알고 교회에 익숙하다고 자랑하며 삽니다.
이런 사람이 니고데모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네가 지금까지 생각하고 믿어온 것은 진짜 신앙이 아니다”라고 충격적인 말씀을 합니다.
니고데모는 이 말을 알아듣고 당황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정말 거듭났습니까?
우리는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듭남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태어남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육체적으로 태어남입니다.
니고데모나 우리는 첫번째 탄생에는 굉장히 익숙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 났습니다.
그리고 남자나 여자인 성이 있고 육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인이 되면 결혼을 하고 부모가 나를 낳아주었듯이 자식을 낳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며 죽음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이 탄생, 출생, 결혼, 죽음의 개념을 잘 압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네가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고 하시니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두 번째 탄생인 거듭남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경험해 본 적이 없고, 아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탄생은 영적 탄생입니다.
원어로 보면 거듭남에는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 뜻은 ‘처음부터’입니다. ‘시작’, 새롭게 완전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다시’라는 뜻입니다. 한 번 한 것을 다시 반복했을 때입니다.
세 번째 아주 중요한 뜻인데 ‘위로부터’라는 말입니다.
거듭남은 위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땅에서 태어났지만 하늘에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진짜 탄생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래로부터 태어나는 것, 형이하학적인 것은 쉽게 이해합니다.
그러나 영으로 태어나는 것,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은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세 가지 뜻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하고 완벽하게 다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생, 거듭난 다는 뜻입니다.

행위로는 구원 받지 못한다
거듭남이라는 개념은 일반 다른 종교나 철학에 없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에만 있는 독특한 개념입니다.
모든 종교는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내가 열심히 하고, 어떤 의식을 드리고 선행, 수련을 하고, 도를 닦으라고 하지 근본적으로 다시 거듭 태어나서 만들어진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율법을 주장하는 종교는 더욱 이 개념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것은 출발 자체가 잘못됐으니 그것을 다 없애고 다시 시작하라”고 하니까 힘듭니다.
하고 있는 것을 조금 더 잘하라고 하는 것은 쉽지만 근본부터 잘못됐으니 다시 하라니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거짓 종교와 참 종교, 거짓 믿음과 참 믿음의 갈림길을 발견합니다.
구약 종교, 율법에 대해 선입관이 많은 니고데모는 이 말씀에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태어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5절에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거듭남의 핵심은 물과 성령입니다.
우리의 행위나 선행, 노력, 종교적 습관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성령에 의해 태어나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은 선택받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그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발견하고 사랑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내가 하나님을 모를 때 이미 나는 택함을 받았고, 사랑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믿음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 데 없는 자” 로 시작되는 찬송이 있습니다.
신앙은 이런 의미에서 은혜요, 감동입니다.
율법과 내 노력과 의지로 했다면 자랑할 것이 많고 주장할 것이 많지만 내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거듭남이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성령께서 나를 감싸주시고 내게 역사하시고 나를 인도해주셔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다.
물과 성령이라고 할 때 ‘과’는 ‘그리고’의 뜻도 있지만 ‘즉’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물 같은 성령’이라는 겁니다.
또 하나 물은 말씀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내가 거듭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났으면 그 거듭남은 진짜입니다.
물은 씻는다는 의미에서 ‘회개’라는 말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 번째는 부모로부터 육적인 탄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두 번째는 탄생은 회개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성령으로 임하셔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내 죄를 다 씻고 말씀으로 새롭게 해주시고 어미 닭이 계란을 품어 병아리가 부화하듯이 성령으로 내가 다시 태어남으로 새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이 안에 내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