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외국인교회/요한복음 설교자료실

요한복음 1:29-31 / 제 목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시골농군 2009. 11. 8. 17:00

요한복음 1:29-31 / 제 목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이스라엘 백성은 요한을 그들이 수백년 동안 기다려온 메시아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모여든 많은 무리에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다만 주의 길을 예비하러온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다.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분의 신들메 풀기에 감당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인간의 운명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보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보았습니다.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따 먹었고 여기서 인간의 원죄가 시작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하자 하나님께서 불 뱀을 보내어 백성들을 물게 하셔서 이들을 많이 죽게 하였습니다.

이 때 백성들이 모세에게 와서 간구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할 때에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고 백성들로 하여금 쳐다보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미신이야, 보기는 뭘 봐 하고 바라보지 않은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본 사람들은 다 고침을 받고 살아 났습니다.

장대에 달린 놋뱀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모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 3:14-15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

다시 말하면 모세가 만든 놋뱀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모형이란 말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놋뱀을 바라보았을때 저들이 구원을 받은 것처럼 지금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바라보면 영생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출 32장을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더디 내려오자 참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반지, 금고리 등을 거두어 금송아지를 만들어 신으로 섬긴 기록이 나옵니다.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송아지를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황금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돈이면 모든 것이 된다는 사고방식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보고 있습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권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자연히 권력을 추구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요한의 사명

요한의 사명은 오직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는 주의 길을 예비하면서 그의 길을 평탄케 하려 보내심을 받은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세례요한이 증거하기를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의 증거한 어린양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로 걸어가신 예수는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몸을 찢으시고 피를 쏟아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고 간다는 말은 취하다. 제거하다. 무거운 짐들을 운반하고 장애물을 들어올려 치워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어린양 같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고 자기를 돌아보며 자각하고 자복, 자숙하는 성도의 모습을 보이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단순히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죄악을 담당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요 3:17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예시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아사셀 어린양입니다.(레 16:6-22)

사람들이 범죄하면 평상시에는 짐승을 잡아 속죄의 제사를 드립니다.

제물에 사용되는 짐승은 소, 양, 염소, 비둘기 등입니다.

제물에 사용되는 짐승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희생제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매년 한차레씩 7월 10일에 드리는 속죄일의 제사는 다르게 드렸습니다.

두 염소를 취하여 제비를 뽑습니다.

하나는 여호와를 위하여 속죄를 드립니다.

하나는 제비를 뽑되(레 16:8) 아사셀을 뽑습니다.

이 아사셀을 위해서 뽑힌 산 염소에게는 아론 제사장이 머리에 안수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냅니다.

이 염소가 그들의 모든 죄와 허물과 불의를 지고 광야에 이르면 그 염소를 광야에 내놓는 것입니다.

아사셀은 ‘내어 놓음’을 뜻합니다.

이 아사셀 염소는 하나의 예표요, 상징입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죄인으로 정죄되어 십자가 형틀을 짊어지시고 골고다로 걸어가신 고독하고도 애처러운 예수님의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악을 그 몸에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둘째, 유월절 어린양입니다.(출 12:1-28)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는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정월 10일에 흠이 없고 1년된 어린양으로 수컷을 구별하여 준비했다가 정월 14일 해질 무렵에 잡아서 피는 문설주 좌우와 인방에 바르고 고기는 밤에 무교병과 쓴나물과 함께 아울러 막은 것입니다.

이 유월절 어린양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고전 5:7에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4일전에 선택된 양은 4천년 전에 예시하여 주신 예수의 모형이요, 그 양을 해질 때에 잡는 것은 예수의 죽으심이 말세의 시작이요 해가 빛을 잃고 어두움이 임함을 나타냄이었습니다.

밤에 양고기를 먹고 양의 피가 뿌려진 문안에 있는 자마다 재앙이 임하지 않음같이 말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안에 있는 자마다 구원받음을 가르쳐 줍니다.

셋째,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입니다.(사 53:7-12)

이사야 53장은 고난의 예수를 잘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심문을 받으실 때 잠잠하심과(마 26:63), 십자가를 지시고 가심은(눅 26:26-67) 털 깍는 자 앞에 잠잠한 양과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아사셀 어린양과 같이 버려짐을 당하시고 유월저 양과 같이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주의 고난은 나를 위함이요, 나 때문에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형벌을 받을 자처럼, 죽임을 당할 자처럼 자기를 돌아보면서 기도하는 성도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증거도 요한과 같아야 합니다.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골고다로 가신 예수,

그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무덤에 장사지낸바가 되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고 승천하셨다가 다시 오실 예수를 증거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