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세례예식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 세례식을 제정하셨다(마 28:19; 막 16:16).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다. 다시 말하면 삼위일체 하나님
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세례의 형식에 대하여 규정하려 하지 않으셨지만, 회가 그 필요
성을 느꼈을 때 이 제정의 말씀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현재의 형식은 2세기
초 이전에 사용되었던 것이다. 신교에서는 공인된 목사에 의해 삼위일체 하
나님의 이름으로 시행되는 세례를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데 반하여, 로
마 천주교는 세례를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간주함으로 어린 아이
가 위독할 때는 신부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도 특히 조산원에게도 세례를 베
풀도록 허락하고 있다.
침례교회는 세례의 합당한 양식이 침례(浸禮)라고 말할 뿐 아니라, 심지어
는 침례가 세례의 본질에 속한다고 주장하며, 다른 어떤 방법으로 시행된
세례는 세례가 아니라고 한다. 또 그들은 세례의 근본적인 관념이 그리스도
의 죽음과 부활관념(롬 6:3-6; 골 2:12)이라고 주장하며, 세례는 침례에
의해서만 상징적으로 표시되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성결이
세례의 상징에 있어 본질적인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다(겔 36:25; 요
3:25,26; 행 22:16; 딛 3:5; 히 10:22; 벧전 3:21). 또한 세례는 침수(浸水)
와 마찬가지로 물을 뿌리는 형식이나 붓는 형식에 의해서도 상징될 수 있는
것이다(레 14:7; 민 8:7; 겔 36:25; 히 9:19-22, 10:22). 따라서 세례의 양식
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는 침수의 형식에 의해 집례
될 수 있으며, 붓는 형식이나 뿌리는 형식에 의해서도 집례될 수 있는 것이
다. 그러나 침례파는 신약이 침례에 의한 세례만을 정당시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증명할 수는 없다.
예수께서는 세례의 어떤 형식을 제정하지 않으셨고 성경은 결코 어떤 특별
한 양식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예수께서 사용하신 Baptize란 말은 꼭 "담
그다"란 뜻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씻어 정결케하다'란 뜻을 의미하는 것
이다. 신약에서 우리는 침례에 의한 세례라고 확증할만한 예를 한 번도 찾아
볼 수 없다.
세례 요한에게 운집한 무리들과 오순절에 회심한 3천명도 침수에 의해 세
례를 받은 것이 아닌듯 하다. 또한 이 양식은 행 9:18, 10:47, 16:33,34에
언급된 경우에서도 사용된 것 같지 않다.
2. 세례의 합당한 대상
세례는 성인과 영아 혹은 유아에게 수여된다.
⑴ 성인 세례
세례는 신자와 그의 후손을 위해 시도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세
례 제정의 말씀을 주로 성인 세례를 심중에 두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왜냐
하면 제자들이 그들의 선교사업을 성인들에게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
수님의 교훈은 신앙고백이 세례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막 16:16). 오순절 베드로의 말씀을 받아들인 자들은 세례를 받았다(행
2:41, 8:37, 16:31-34). 그러므로 교회는 세례를 받고자 하는 모든 성인들에
게 신앙고백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한 고백이 이루어지면 그 진실성을 의심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한 교회는 그 고백을 표면적 가치로 받아들여야 한다.
⑵ 유아 세례(영아 세례)
침례교회는 유아 세례의 정당성을 부인하는데 그 이유는 유아들이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며, 신약에 유아에게 세례를 주라는 명령이 없으며 그런
세례의 단순한 예를 기록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유아 세례가
비성경적이라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①유아 세례의 성경적 증거
유아 세례는 성경의 단일한 구절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성경적 사상의 산
물이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그것이 국가적 국면이긴 했지만, 주로
영적인 언약이었다(롬 4:16-18; 갈 3:8,9,14). 이러한 언약은 아직도 유효
하며, 본질상 현시대의 새 언약과 동일한 것이다(롬 4:13-18; 갈 3:15-18;
히 6:13-18). 유아들은 언약의 혜택에 참여하였으며, 할례의 표를 받았으
며, 이스라엘 회중의 한 부분으로 계산되었다(대하 20:13; 욜 2;16). 할례
는 신약에 와서 언약에 들어가는 표와 증표로써 세례와 대치된다(행
2:39; 골 2:11,12).
새 언약은 옛 언약보다 은혜로운 것으로 성경(사 54:13; 렘 31:34; 히
8:11)에 나타나 있으므로, 새 언약은 유아를 좀처럼 배제하지 않는다. 이는
마 19:14; 행 2:39; 고전 7:14 등의 구절들의 견해와도 역시 다르다. 뿐만
아니라, 전 가족이 세례를 받았는데 이는 유아를 제외했다는 것이 아니다(행
16:15, 16:33; 고전 1:16).
②유아 세례의 근거와 작용
개혁파 노선의 어떤 학자는 유아가 가정적 중생에 근거해서 세례를 받는다
고 주장하며, 또 어떤 사람은 유아는 중생의 약속을 포함하는 하나님의 총
포괄적, 언약적 약속에 근거해서 세례를 받는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 후자의
견해가 보다 받아들일만한 가치가 있다. 언약적 약속은 유아 세례의 확실한
객관적 근거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유아 세례가 어떻게 영적 생명을 강하
게 하기 위한 은혜의 방편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일
어나는데, 그 대답은 유아들이 세례받을 때 중생되었다고 하면 세례는 그
시행시에 중생의 생명을 강하게 하는 것이며, 세례의 의미가 보다 명백히 이
해된 후에는 믿음이 더 견고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의 작용이
세례의 시행 순간에만 필연적으로 제한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료원 : 합동신학교 서배현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