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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교회관을 읽고

시골농군 2009. 9. 23. 13:11

칼빈의 교회관을 읽고

 

이 글은 오토 베버가 프린스톤 神學校에서 1966년 워필드 講義에서 강의한 原稿이다. 이글에서 베버는 칼빈주의적 敎會觀을 明確하게 說明하고 있다. 오늘날의 韓國敎會의 長老敎 牧師들이나 平信徒들의 槪念속에서의 敎會觀은 正統 칼빈 주의적이지는 못하다.

敎會를 “신앙인의 공동체(Communio Sanctorum)”로 강조하는 것은 루터교에서 온 개념이다. 오토 베버는 칼빈의 교회 이해가 루터교의 교회관과는 다르다고 하는 것을 잘 설명한다. 칼빈에 의하면 교회는 “신앙인의 공동체”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백성을 위하여 制定하신 기구(institution)임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主權을 강조하는 칼빈은 하나님을 믿고 信仰告白을 하는 신앙하는 主體인 사람에 역점을 두는 “신앙인의 공동체”의 개념보다,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시고, 사람들에게 신앙하도록 말씀을 주시며, 그의 백성을 다스리시고 保存하시기 위하여 制定하신 機具로서의 교회 개념이 先行함을 말한다. 칼빈은 敎會 理解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이요, 말씀 중심임을 알수 있다.

칼빈 자신이 어떤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것으로 宗敎改革을 생각하지 않았다. 칼빈은 秩序와 傳統을 尊重했다. 그의 교회관은 두가지 중요한 개념 즉 그리스도의 다스리심과 신자들의 脂體됨이라는 개념으로 전개된다. 칼빈의 교회론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바로 말씀을 올바로 전하는 說敎이다. 그리고 그의 교회는 ‘職分을 中心한 교회(Amtskirche)이다. 칼빈은 ‘萬人祭祀長論’을 언급한 적이 거의 없다. 1541년, 1561년의 敎會 憲法에 보면 칼빈은 네가지 형태의 職分을 말한다. 즉 牧師(pastores), 敎師(doctores), 長老(presbyteri), 執事(diaconi)이다. 그리고 칼빈은 牧師職을 敎人의 共同體보다 優先하는 것으로 본다. 또한 칼빈의 聖禮論의 特徵은 그가 두 聖禮의 共通된 性質을 發見하려고 試圖한 데에 있다고 하겠다. 칼빈은 이 두 성례를 하나님의 言約의 徵表로 이해한다.

오늘날의 韓國 長老敎會를 바라다 보면서 改革主義 혹은 칼빈主義的이냐는 물음에 선뜻 “그렇다”라는 답을 할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대답은 더 할 수가 없음을 느끼게 된다. 칼빈주의 교회인 長老敎會에서 그런 대답을 할 수 없다면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 이런 물음을 심각하게 물어야할 必要性을 느낀다. 長老敎의 政治와 組織은 한국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본래 장로정치제도가 없는 각 敎派 敎會에서도 장로교회의 조직과 제도가 채용되어 있지만 장로교회의根本的인 意味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물론 칼빈주의가 기독교를 전부 포괄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聖經的이고 가장 初代 敎會에 가깝기 때문에 우리는 칼빈주의를 따를 수 밖에 없다. 물론 칼빈 당시의 狀況이나 선교사들이 피선교국인 한국에 복음을 전할 상황이나 오늘날의 상황과의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글은 칼빈의 당대적 상황과 관련시키면서 그의 교회관을 잘 설명했다고 보여진다.

神學과 信仰을 우리는 分離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신학은 분명히 교회를 위해서 存在해야 하고, 신앙은 또한 이 교회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여기에서 교회는 可見的 敎會와 非可見的 敎會로 나누어지지만 어떠한 맥락에서든지 우리는 교회를 떠나서 신앙과 신학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敎會의 本質“에 대하여 다시금 진한 회의와 가슴깊은 뉘우침을 갖을 수 밖에 없었다.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나 자신에게 투여된 ”비본질적이어도 成長한 하면 된다“는 思考 方式을 바라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직과 나의 위치에 대한 자부심과 소명감을 새롭게 다짐해 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의식을 오늘의 상황과 여건에 관련시키는 과제를 남겨두게 되고 다시금 그것과 씨름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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